A Bag

  • Ma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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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rds: 1,569
  • Pages: 5
가방

“야, 오랜만이다?” “그래, 한 3 년쯤 됐냐?” “우리 얼굴좀 자주 봐야 되는데 그동안 뭐 했나 모르겠다.” “뭐 너도 그렇고, 나도 하는 일이 바빠서, 이젠 여유좀 생겼으니 이렇게 얼굴도 보고, 좋네.” 영석은 낮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이다. 화기애애한 대화들이 이어지고, 만나지 못한 시간동 안 서로 무엇을 했는지 계속 대화가 오간다. 그렇게 1 시간여의 대화후, 영석은 오줌이 마려워졌고,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에서는 술집 주인의 센스인 모양인지, 라디오가 나오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마침 뉴스를 해주고 있다. 경제 뉴스, 경제 뉴스, 또 경제 뉴스. 경제가 어려운 탓인지 뉴스에서는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하는 뉴스만 잔뜩이다. 이런 짜증나는 뉴스들뿐이라니. 그렇게 경제 뉴스들이 나오다가 간만에 신선한 소식이 하나 나온다. “오늘로서 갈색 가방 살인마의 살인이 9 건으로 늘었습니다. S 시 한 골목에서 젊은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요. 이 갈색 가방 살인마는 가방 안에 메스 같은 의학 도구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질문에 답하지 못 하면 죽이 는 사이코 살인마입니다. 현장에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의 갈색 가방을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이 여자에게 살아 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질문에 답하지 못 했다... 란 말이 현장에서 발견된 쪽지에 적혀 있었습니다... 수상 한 갈색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이가 보이면 언제든 경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야, 저 놈의 살인마들은 어떻게 그치는 법이 없어? 이 놈이 잡혀 들어가면 저 놈이 나오고, 그 놈이 또 잡혀 들어가면 또 어떤 놈이 나오네. 영석은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대변보는 칸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온다. 자기 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얼굴이 까무잡잡한 남자다. 그가 나오더니 화장실 창문가에 들고 있던 가방을 툭 하고 놓는 다. 영석은 그 가방에 눈길이 간다. 가방의 색은 갈색이다. 순간 영석은 섬뜩해진다. 안 그래도 지금 살인마의 가방이 갈색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기 눈앞에 곧 갈색 가방을 가진 남자가 등장하다니 이건 기막힌 우연이 아닌가. 무서운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남자의 시선을 피하고 볼 일 을 다 보고 나서 손을 씻고 나가려고 한다. 그 때 그 남자가 영석을 부른다. “이봐 자네.” 영석은 갑자기 남자가 자신을 부르자 놀라서 어깨를 움찔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예?” 영석이 남자를 돌아보고, 영석은 남자가 싸늘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본다. 보통 사람의 눈같지 않은 감정이 없는 듯한 눈이 자신을 보고 있다. “이 건물 2 층이 뭐 하는 데야?” “예?” “이 건물 2 층이 어딘지 아냐고. 말 못 알아들어?” “아니... 압니다. 이 건물 2 층은 아마... 어떤 나라 대사관 아닙니까?” “아... 그래. 질문에 답을 잘 해주는군.” 질문? 영석은 이 말을 어디선가 들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해 내자 영석은 등골이 오 싹해진다. 그런 영석을 신경 쓰지 않고, 남자는 계속 영석에게 말을 건다.

“어느 나라 대사관인데?” 영석은 어느 나라인지 생각해내려고 애를 쓴다. 아까 친구 녀석이 식당이 대사관 밑에 있다니 이건 참 이상한 구조라면 서 뭐라고 했었는데, 그 때 분명 어느 나라인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영석은 하나하나 친구가 했던 이야기를 생각 해보려고 한다. 점점 힌트가 채워진다. 섬나라이고, 잘 사는 나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뭐라고 했던 것 같 은데. 영석은 생각하던 중에, 섬뜩한 걸 봐버린다. 그 남자가 자신의 갈색 가방을 열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석은 몇 초 내로 답을 내지 못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애써 다른 힌트를 생각해내려고 애쓴다. 그렇게 애써보자 머 릿속에 전광석화처럼 한 단어가 나타난다. 엘리자베스 2 세. “영국이에요. 영국.” 가방을 열려던 남자가 영석을 돌아본다. 잠시간 그렇게 무표정으로 영석을 쳐다만 보고 있다. 영석은 침을 한번 꿀꺽 삼 킨다. 무표정으로 영석을 보던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확 펴지며 씨익 웃는다. “그래? 제대로 왔네.” “예?” “제대로 왔다고. 그나저나 대사관 밑에 식당이 있다니 참 재밌군.” “그...그러게요.” 앞에 있는 남자가 기분이 좋아졌다는 생각에 영석도 조금은 안도한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저 가방이 열렸을 거고 자 신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여전히 기분은 섬뜩하긴 해도 여하튼 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남자도 한층 분위 기가 밝아진 것 같아 보인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자네는 뭐 하는 사람인가? 이렇게 화장실에서 본 것도 인연인데 잠깐 얘기나 하지.” 영석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 대화한다. “아, 전 조그만 피씨방을 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 장사는 잘 되시나?” “장사요? 뭐... 요즘은 다들 사정이 안 좋잖습니까...” “그래. 그런데 사실 그런 것도 다 외국 놈들 때문이란 거 아나?” “외국 놈들 때문이요?” “그래, 뭐 미국 영국 이런 것들이 무너지니까, 이 한국, 이 나라도 이렇게 무너지는 거 아니야? 여하튼 영국, 혹은 미국 것들이 죽일 놈이야. 그것들은 범죄자가 아닌 사람들도 수배하는 녀석들이니.”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석은 굳이 이 사람 말에 반론을 달아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 른다. “그...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이야, 이 사람 말이 통하네. 이거 화장실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남자가 껄껄 웃는다. 영석도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함께 껄껄 웃는다. 분위기가 그래도 살인이 날 분위기는 아니다 싶어 조금은 안심을 한다. 그 때 화장실의 라디오에서는 이런 좋은 분위기에 초를 뿌릴 참인지 DJ 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러분, 요즘 갈색 가방 살인마, 이런 녀석 때문에 밤에 다니기 무서우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얼른 어느 분이 이 분을 잡아서 좀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야 할 텐데요. 솔직히 화나죠?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도 정당치 않은데 계속 살인을 하 고 다니다니...”

영석은 말을 잃는다. 이건 어떻게 된 조화이기에, 마침 분위기가 좋아져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지금 이런 이야기가 저 라디오에서 나오는 걸까. 화장실에 라디오를 단 술집 주인의 과도한 센스가 사무치게 미울 뿐이다. 영 석은 흘끔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의 표정은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 있다. 아까 이 사람 말이 통하네 하며 웃던 그런 웃 음은 이미 얼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남자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영석에게 한 마디 한 다. “자넨 어떻게 생각해?” “예?” “저런 살인마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 영석은 이 상황이 너무도 부담스러웠고, 차라리 도망쳐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이 녀 석이 내 얼굴을 봤으니 도망친다고 마음 편히 살긴 힘들 것 같았다. 어떤 대답이라도 해야 한다. “저...” “그거 왜 이렇게 굼떠? 뭐라고 말을 해봐!” “예? 그...” 영석은 잠시 생각한다. 살인마다. 살인마니깐 분명 살인마에 대해 좋은 쪽으로 이야기해줘야겠지. 이렇게 말 하는 건 내 양심이 허락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여기서 목숨을 건지고 봐야지. 이런 말을 해서 가끔 죄책감을 들어도 사 는 게 중요하잖아. “전 살인마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석은 말 한다. 그러나 그 말을 하고 나자 이상하게도 남자의 표정은 더 화가 난 듯 하다. “뭐 살인마들이 좋아? 자네 뭐야?” 뭐? “살인마들은 정당한 이유도 없이 살인하는 것들이야. 정당한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다니. 위대한 일이라면 조금의 희 생은 필요한 법이지만, 살인마들이 하는 일이 위대한 일인가? 저것들은 찔끔찔끔 하나씩 사람을 죽이는 쥐새끼 같은 놈 들이야. 그런 놈이 있으니깐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욕을 먹는 거야. 그런 놈들이 좋아? 이거 죽일 놈이네?” 남자는 말을 그치고 영석을 노려본다. 영석은 혼란스럽다. 살인마한테 살인마들은 좋은 것 같다고 이야기 했더니, 도리어 화를 내다니. 하긴 원래 살인마들의 머릿속은 보통 사람들이랑 다르니깐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싶어 오히려 후회가 된다. 제기랄, 살인마의 입장에서 생각했어야 하는데, 살인마의 입장에서. 이제 살인마가 화났으니 자신이 살아날 방법은 없다 싶어서, 영석은 불안하다. 그 때 남자가 갑자기 또 가방을 열려고 한다. 그러자 영석은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싶어서 무릎을 꿇고 남자에게 빌기 시작한다. “살려주세요!” “뭐야 이건?” “살려주세요! 잘못 했습니다. 살인마는 좋지 않아요. 용서해 주세요. 갈색 가방 살인마님! 용서를...” “뭐?” 남자는 영석의 말을 듣고 자신의 갈색 가방을 잠시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영석은 그 웃음의 의미를 잘 몰라 잠시 어리둥절 한다. 남자가 계속 웃다가 한마디 한다.

“자네 내가 갈색 가방 살인마라고 생각 한거야?” “예?” “이런... 가방 색깔만 같다고 이런 오해를 받나?” “예???” 영석은 놀라서 고개를 든다. “아 이거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군. 난 갈색 가방 살인마가 아니야. 그냥 갈색 가방을 가지고 온 사람일 뿐이지. 자넨 좀 이상하군. 자넨 갈색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면 다 살인마라고 할 건가?” “아니 그래도 아까 질문을....” “아니 그건 정말 몰라서 물었던 거야. 내가 영국 대사관을 찾아야 되는데, 내가 워낙에 길치라 여기 2 층이 영국 대사관 이 맞나 순간 헷갈렸거든. 그나저나 자네 정말 웃기군. 내가 그런 쥐새끼같은 살인마라니.” 영석은 그때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영석은 그때서야 자리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자신의 꼴이 웃겼는지 웃는다. “그러네요. 이거 죄송합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들어맞다 보니깐.” “그래 자네가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던 것 같기도 해. 내가 자네한테 말 걸어서 수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네. 여하튼 난 여기서 동료들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은 다 끝나고 동료들이랑 어디를 멀리 가야 되서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이 식당에서 밥도 안 먹는데 어디 있기도 좀 그렇잖아? 그래서 화장실에서 있는 중이야. 물 론 밖에서 기다리면 되지만 너무 추워서. 그런데 마침 자네가 들어와서 동료들이 나한테 이 건물 앞에 도착했다고 연락 을 주기 전까지 만이라도 잠깐 말상대가 필요했던 걸세.” “그랬군요. 그런데 자꾸 가방을 열려고 하셔서.” “아... 그거야 가방 안에 좀 중요한 게 들어있어서 잘 있나 확인하려고 한 거지. 그것 때문에 또 움찔움찔 거렸군?” “예.” “하하하 그래, 그런데 자네...” 남자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난 살인마 같은 것들을 제일 싫어해. 그 녀석들이 하는 일이 위대한 일은 아니잖은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살인마인가 싶어서 아부한거지?” “그렇죠. 누가 살인마가 좋다고 생각하겠어요.” “그래. 그래야지, 그게 옳은 생각이야.” 그 때 진동이 울린다. 남자가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아, 도착했어? 딱 3 시 1 분전에 잘 맞췄네. 알았어.” 남자가 휴대폰을 다시 품속에 넣고, 영석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즐거웠네. 난 이만 가봐야겠어. 뭐 또 볼 수 있다면 다음 생애에서 보자고.” 남자가 급하게 화장실을 빠져 나간다. 영석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긴장이 풀려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다. 휴, 정말 눈앞에 살인마가 있는 줄 알았네. 여하튼 아닌 게 참 다행이지. 아닌 게. 그렇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 보자, 남자가 갈색 가방을 두고 간 것을 발견한다. 순간 영석의 머릿속에 이런 호기심이 든다.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을 까? 중요한 게 들어있다고 했는데. 어차피 한번 보는 건데 상관없겠지. 영석은 가방을 연다. 그리고 그 안엔...

다음날 아침 뉴스 “어제 오후 3 시, 영국 대사관이 있는 건물 1 층의 식당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의 용의자들로서는 최근 영국 정보부로부터 수배 명단에 오른 친아랍계 단체인 WLA(We Love Arab)이 지목되고 있으며 이들 중 한국계 아랍 인인 C 씨만이 신원이 확인된 상태입니다. C 씨는 식당 화장실에 폭탄을 설치하고 3 시 직전에 대사관 건물 앞에서 대기 하던 동료들과 그 곳을 급하게 빠져 나간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습니다. 2 층에 있던 대사관 직원 전원과 식당에서 밥 을 먹던 사람들은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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