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brain of this universe
우리는 우주의 두뇌다. 우리는 철저하게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을 죽지 않고 계속 살게끔 하는 메카니 즘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작동된다. 태어나자 마자 건강한 아기는 큰 소리를 울음을 터트려 엄마의 모성애를 자극하고 엄마로 하여금 젖을 물리게 한다. 태어나서 서너달은 주로 우는 것으로 엄마의 관심을 끌지만 어느 정도 뇌가 성장하면 엄마 또 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본능적으로 웃음을 짓게 된다. 어미는 그 웃음을 매우 귀엽게 받아들이고 모성애는 더욱 더 커져만 간다. 아이는 자기가 웃고 재롱을 떨면 어미가 더욱더 관심을 가진 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더욱 더 귀여운 짓을 한 다. 돌을 지나면 관심을 받기위해 떼를 쓸 줄 알게 된다. 더 이상 귀여운 짓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본능적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결국 단 한가지 다. 울건 웃건 떼를 쓰건 화를 내건 그것은 다 관심을 끌려는 행동이며 그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행동 양식이다. 이 후부터는 그 부모의 성격이나 가족 역동과 주변 환 경 그리고 또 다른 양육자들의 여러가지 요인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관심끌기 행동이 발달하게 된다. 이것은 유치원을 지나고 초등학교를 지나 중 고등학교가 지나도 지속 된다. 처음에는 부모하고만 이어지던 관계가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확 되된다. 그리하고여 터득한 사회성 역시 기본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관심 끌기요 남과 연결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 동안 쌓아온 관심끌기 행동양식이 성격으로 고착화된다. 다 살기위한 몸부림 이다. 연인들끼리의 싸움이나 부부간의 접시가 날아다니는 부부싸움도 그렇고 술주 정도 손지검도 그렇고 결국 관심끌기요 생존 방식의 고착이요 행태다. 아침 마당의 결론은 언제나 관심을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폭력적인 산적같 이 생긴 사람도 상담원이 이야기를 해보면 어려서의 관심 부족에 대한 불만 표출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관심 끌기를 통한 생존 방식을 어느정도 터득할 때쯤 되면, 우리는 이성에 눈 을 뜨게 되고 사랑의 열병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매우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그 어 느 누구도 사랑의 감정 앞에서는 냉정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인간이 그랬다 면 인류를 벌써 멸망했다. 솔직히 말하면 사랑의 감정은 결국 번식을 위한 본능이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절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 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사랑이 식고 바람을 피고 집안에 피바람이 돌고 이혼하 고 또 다른 배우자를 찾고... 결국 우리를 죽을 때까지 웃고 울리는 이 감정은 사실 나 를 위한 것이라고 보다 인류 전체를 위한 본능이라 해야 함이 맞다. 사랑의 달콤함은 인류를 위한 고된 노역, 즉 출산 육아 양육의 고통을 잊고 극복하게 끔, 그리고 때로는 착각하게 끔 하는 마약이다. 우리 뇌에는 자연적으로 마약이 분비되고 있음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동물도 비슷하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조금더 고차원적인 본능이 있어 그 것이 우리를 웃고 울게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 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유명해지고 싶어하고 명예나 권력을 얻고 싶어하고 돈을 모 으고 싶어하는데, 그런 본능의 기저에는 죽기전에 무언가를 남겨 놓고 싶은 뿌리깊은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자식을 남기는 것은 기본이요, 돈을 모아서 남기려 한다던지 족보를 만들어 이름을 남기려 한다던지 예술작품을 남기려 한다던지, 뛰어난 업적을 남기려 한다던지 하는 것이다. 심지어 남들 보다 더 많이 살인을 해서 이름을 남겨 보 려는 이들도 있다. 교보문고에 쌓여있는 그 수많은 책들은 모두 무언가를 남기고 싶 어하는 욕구의 집합이다. 음악을 만들고 조각을 하고 책을 쓰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
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려하고 1등을 하고 싶어하고 하는 그런 욕구들이 다 마 찬가지다. 내 몸은 죽어도 없어지지 않을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은 자손 을 번식시켜는 욕구만큼이나 강렬한데 이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질이다. 소위 우리 가 꿈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스타가 되고 싶다던지 대통령이 되고 싶다던지 노벨상 을 타고 싶다던지 부처가 되고 싶다던지 깨달음을 얻고 싶다던지 하는 것 모두가 영 원하고자 하는 욕구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일 때 우리는 불안하게 된다. 이런 욕구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의 하루하루를 이어 나가게 하는 것이 밥이 아니라 꿈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질 없어보이는 꿈 때문에 오 늘의 힘듦을 벼텨 낸다. 그것은 자신도 미쳐 깨닫지 못한 영원성을 향한 근본적이고 가장 강렬한 욕구 때문이다. 만약 이런 욕구가 없어지는 상태는 대개 우울증이나 불 안증이나 정신병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밥을 먹을 힘이 있더라도 자식을 낳을 생식 능력이 있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게 하는 강렬한 신호에 휩싸이게 하여 삶을 더 이상 연명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이유 가 없어지는 것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종교는 무엇이냐? 없어지면 한 줌 재가 될 자신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달램과 의지하 고픈 마음요 영원을 향한 몸부림이다. 철학은 무엇이냐? 철학의 궁국적 목적은 어차 피 죽을 인생 왜 태어나서 왜 이렇게 살려고 발버퉁 치고 죽어도 살고 싶어하는 그 이 유를 알아내고자 함인데 그것 역시 남들보다 더 근사한 이유를 찾아내서 남들에게 인 정받고 이름을 남겨보고자 하는 욕구가 기본 바탕이 되어 있다. 그것은 나 또한 역시 마찬가지다. 죽어서 천당을 가든 지옥을 가든 아니면 불교에서 말하듯 윤회를 하든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든 우리는 영원또는 불멸이 가능할 만한 일말의 가능성을 잡아 보고자 정말 발버둥을 친다.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의 시작을 찾아 낼 수 있는가? 혹자는 영혼은 몸밖에 있 다고 이야기 하기까지 한다. 현대의 신경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도 도대체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뇌의 어느 부분에서 발생하는지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동물과 차별된 인간의 고차원적인 의지의 출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단언컨데 뇌과학 이 아무리 발전해서 신경 다발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시발점을 결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현대물리학이 원자를 끝까지 쪼갰을 때 결국 불확실적인 파동과 입자 의 공존을 발견했을 뿐인 이유와 같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의 의지는 영원성에서 나온다. 영원하고자 하느 그 무언가가 우리 의지의 시발점이다. 그리고 빛이 동시에 파동으로 또는 입자로 존재할 수 있듯이 영원성(나는 영원의 의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은 동시에 '우리'로나 '나'로 서 나의 뇌로서 나의 생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영원성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 것은 공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로서 나로서 너로서 지구로서 우주로서 존재하고 있 다. 그리고 계속 영원하려 한다. 영원의 의지의 가장 큰 목적은 영원함 그 자체이다. 파동이 입자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듯이 영원의 의지는 우주를 통해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주는 없어질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우주가 존재하지 않았던 빅뱅 이전의 시절은 정말 존재하나? 우주의 나이가 200억 광년이라 면 200억 광년 전에는 무엇이었나? 無였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無는 없다. 태초에 有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논증한 적이 있지만, 무는 파동조차 없는 것이며 유가 될 씨앗조차 없는 것인데 태초에 무가 있었 다면 지금도 無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무에서 유를 창조 했다면 그 누군가가 있는 것 자체가 무가 아니므로 무는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태초에는 有였다. 무는 없기 때
문에 그 有는 계속 有여야만 하고 계속 有가 되려고 하는 바로 그것이 영원성이다. 영 원성은 동시에 물질로서 존재한다. 영원성이 영원성으로만 있는 것을 空이라고 한다. 공은 무와 다르다. 공은 영원성이라는 의지가 있는 상태이므로 무가 아니다. 그러나 공은 공으로만 존재할 수 없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있 는 것은 無이지만 無로는 될 수 없으므로 有로서 존재하는데 그 존재 방식이 물질이 다. 공은 물질로서 존재한다. 즉 영원성은 물질로서 존재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즉 시색 색즉시공이다. 색이 없는 공은 있을 수가 없다. 유는 동시에 공이요 색이다. 이때 물질의 특징은 유한성인데 그 유한성을 극복하면서 영원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하 며 번식해야 한다. 번식은 유한한 물질이 영원하기 위해 방법이다. 영원하고자 함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파워다. 우주를 만들고 생명을 잉태해낸 힘이 다.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 힘은 별을 만들 고 지구를 만들고 박테리아를 만들고 그것을 진화시켜 원숭이를 만들고 인간을 만들 어낸 힘이다. 아니 그렇게 존재한다. 시간의 개념은 유한한 물질계에 속하는 인간의 개념이지만 영원성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 100억년전에 박테리아가 만들어진 시대 와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금시대가 영원의 관점에서는 찰나요 동시다. 영원성은 동시에 태초에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영원하고자 하 는 의지는 결국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인간은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영원성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없이는 영원성의 존재방식 이 완벽하지 않다.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이 분명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바로 그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하고 환희를 느끼고 행복해하고 무엇보다도 꿈꾸고 의지를 가지고 더 나은 무엇인가를 하 려 한다는 것이다. 동물과 인간의 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이 동물에 비해 대뇌 피 질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있다는 것인데 대뇌 피질의 기능이 바로 의지와 연관된 기능 이다. 외계인이 있다면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 인간만이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꿈꾸고 바랄 수 있다. 생명은 우주의 두뇌다. 그리고 인간은 그 두뇌의 대뇌 피질이다. 영원성은 우주로 존 재하고 있고 그 우주 속에서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그 인간이 꿈을 꾸고 있다. 무엇인가를 소망하고 있다. 열망하고 있다. 영원성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온 우주가 나를 통해 웃고 울고 사랑하고 행복해 하고 꿈을 꾸고 때로는 분노하고 절망 하고 불안해한다. 다만 물질은 변화로서 영원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육신은 시간이 되면 없어진다. 그 리고 자식이 태어나고 자손이 번성한다. 물질에 속한 우리는 영원을 갈망하다 그 만 큼 강렬한 의지로 없어지려고도 한다. 그리고 남을 없애려 한다. 파괴의 본능은 영원 의 본능만큼 강력하다. 물질은 없어짐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파괴도 영원성의 한 존재 방식이다. 중요하고 보다 더 근본적인 파워는 파괴가 아니라 영원 하고자 함이다. 모든 문화권에서 선으로 생각하는 가치인 사랑, 우정, 배려, 희생등과 같은 가치들은 영원성에 부합하는 가치들이다. 증오, 분노, 미움등과 같은 가치들은 유한성의 속성이다. 모든 문화권에서는 영원성에 부합하는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생 각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법률이나 관습등과 같은 제도를 통해 보호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언제나 선이 악을 이긴다는 믿음을 소중히 여긴다. 결국 천사가 악마를 이기는 것은 진리이다. 결국 영원성이 나를 움직인다고 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지구를 위해 우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지금 당장 행복해 하는 것이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환호하고 환 희감을 느낌고 기뻐하는 것이며 영원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 영원의 가
치중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장 최상의 가치는 역시 사랑이다. 지금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는 순간 온 우주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요 내가 기뻐하는 순간 온 우주가 기 뻐하는 것이다. 나는 우주의 두뇌요 우주의 눈이요 우주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요 내가 소중하고 남이 소중하고 이 모든 것들이 참 소중하 게 느껴질 것이다. 내 육신은 없어지더라도 너무나도 당연히 나는 그 영원성의 한 부 분으로 영원할 것이며 영원성은 물질로서만으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무엇인가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내가 결국 우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청난 비밀 한가지. 영원성의 그 어마어마한 파워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다 름아닌 바로 나라는 것이다. 만약 나의 꿈이 영원성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나의 의지 와 바램과 꿈은 세상을 움직이고 우주를 움직일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포기만 하 지 않는다면. 나의 이 소중한 꿈은 이 우주의 꿈이요 영원의 꿈이요 영원 그 자체이 다. 사랑하고 기뻐하고 환호하고 행복해하고 꿈꾸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할 수 있는 우주의 영원을 축복하고 지속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핵심이다. 나만의 방식과 나만의 창조와 나만의 사랑으로 우주를 꿈꾸 자.
글 : 이승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