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Divine Design

  • Uploaded by: Z. Wen
  • 0
  • 0
  • June 2020
  • PDF

This document was uploaded by user and they confirmed that they have the permission to share it. If you are author or own the copyright of this book, please report to us by using this DMCA report form. Report DMCA


Overview

Download & View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Divine Design as PDF for free.

More details

  • Words: 47,641
  • Pages: 275
o

o

o I

God', Cumplementary Rule, for .\lcn & \l:"oml"n

I GTY.org

e~o/C.~ ltlA Ai~~ ~

하나님의완벽한디자인 God’s complementary Roles for men & women

존 맥아더 지음

GTY.org

서진희 옮김

GTY.org

하나님의완벽한디자인 God’s complementary Roles for men & women

GTY.org

Divine Design Copyright 2006 by John MacArthur, Jr. Victor is a registered trademark of Cook Communications Ministries, Colorado Springs, Colorado 80918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05 by Peter's House 281 Yangpyung-Dong 4-Ga, Youngdeungpo-Ku, Seoul Korea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초판 1쇄 발행일 2007년 10월 25일

저 자 | 존 맥아더 발행처 | 베드로서원 발행인 | 한순진 대 표 | 한영진 등록번호 : 제318-2005-000043호·등록일자 : 1988. 6. 3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4가 281 삼부르네상스한강 1307호 Tel. 02)333-7316, Fax. 333-7317 www.petershouse.co.kr E-mail : [email protected] 베드로서원은 기독교문화 창달을 위해 좋은 책 만들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파본 및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ISBN 978-89-7419-248-8 값 10,000원

미주사역 PETER’ S HOUSE 49 Candlewood Way, Buena Park, CA 90621 ☎ (562)483-1711. Cell. (714)350-4211 E-mail : [email protected]

GTY.org

contents

1부 _ 하나님의 디자인에 대한 공격 1. 피조물이 타락함 ... 18 2. 권위와 복종 ... 42

2부 _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결혼과 가정 3.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결혼 ... 70 4. 직장에서 탁월한 아내 ... 96 5. 또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 123

3부 _ 교회를 만드신 하나님의 디자인 6.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남자들 ... 164 7. 여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 193 8. 섬김의 성품 ... 225 9.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 259

GTY.org

서론

남자와 여자가 서로 디자인부터 다르다는 사실은 성경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게다가 굳이 성경에 익숙하지 않더 라도 실제생활에서 남녀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넘도록 남녀차이를 거부 해왔거나, 또는 남녀의 역할을 바꾸려는 사회적 실험을 주도했거나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주 놀라운 것이다. 그런 사회적 실 험들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 문화가 많 이 손상되었다. 그러나 20세기를 마무리 하는 이 시점에 날카롭고, 정직하며, 용감한 사람들이 남녀의 차이를 관찰하고 입을 열어 말하 기 시작했다.

R 기사 : 20세기 초에 전 소련연방공화국에서 남녀의 역할과 관련

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된 근본적 변화를 사회 전체적으로 시도한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통은 변화되기를 거부했고, 결국 그들은 그런 시도가 옳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LA 타임즈의 1면에 는“많은 러시아 여자들이 풀타임 주부가 되는 것을 진정으로 자유롭 게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라는 기사가 실렸었다.

여론조사를 실시해본 결과 많은 러시아인들(남자, 여자 포함)이 대부분의 러시아 여자들이 할 수만 있다면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들 을 키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류드밀라(Lyudmila)는 그녀의 어머니처럼 두 가지 의무를 하며 살지는 않겠다고 이미 결심했다. 다른 러시아 여자들이 집안일만 돌 보는 것과는 달리 그녀의 어머니는 사탕공장에서 풀타임으로 20년 동안 힘들게 일했다.“엄마는 직장생활을 만족스럽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라고 류드밀라는 말했다.“나는 결혼하고 나서도 직 장생활을 계속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 가족들과 함 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너무 많이 뺏깁니다. 내 친구들 중에 대부분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선두적인 여론조사기관인‘러시아 여론 및 시장조사센터’ 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학자인 발렌티나 보드 로바(Valentina V. Bodrova)는“요즘 젊은 여성들은 여자들이 집 에서 가족을 돌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라고 말했다.

R 기사 : 1992년 1월 20일자 타임지의 표지에는‘왜 남자와 여자 는 서로 다른가? 그것은 단지 후천적인 양육의 요인 때문만은 아니

7 GTY.org

다. 최근 여러 가지 연구는 남자와 여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라는 제목이 실렸다. 이 제목에는 놀라운 진실을 폭로하는 오로라가 담겨있다. 그러나 사실 그 진실은 객관적인 사람 들에게는 상식에 불과하다. 아래 기자의 서두가 말해주는 것처럼 말 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인류가 직면한 베일에 싸인 비밀을 알아내기 위 해 값비싼 장비들과 아주 복잡한 방법들을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멜리사 하인즈(Melissa Hines)는 그렇지 않다. U.C.L.A 행동주의 과학자인 멜리사 하인즈는 경찰차, 링컨 로그(공작용 나뭇조각들), 바비인형들로 가득한 장난감 상자를 이용해서 인류에 관한 가장 오 래된 수수께끼 한 가지를 풀어보려고 했다. 하인즈와 그녀의 동료들 은 남녀의 차이점의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 2.5세에서 8세 된 아이 들을 서로 어울려 놀게 한 후 그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 에 집중하는지, 어떻게 선택하고 결정하는지를 전부 비디오테이프 에 담았다. 남자 어린이들도 여자 어린이들도 하인즈의 실험실에 있는 모든 장난감들을 다 가지고 놀기는 했지만, 특히 남자아이들은 스포츠카, 소방차, 링컨 로그들에 관심을 보였고, 여자아이들은 인형들, 소꿉 놀이에 관심을 보였다. 그녀의 실험은 부모들이 (적지 않은 유치원 교사들도) 이미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재확인시켜 주는 것에 불과했다.

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페미니스트 혁명 시대인 1970년대에는 남자와 여자가 선천적으 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었으며, 하물며 그 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풍토였다. 그 당시에는 남성우월 주의가 무너지고 남녀평등의 논쟁이 점점 가속화 되면서 조만간에 세상이 완전히 평등해지고, 일부 신체적인 차이를 제외하고 나면 남 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양성화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생물학 은 뒤죽박죽된 잘못된 기대들을 재미있는 방법으로 풀어나갔다. 성 별에 따른 타고난 차이점들에 대한 증거들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 려 더 많이 드러날 뿐이었다.

한 때는 부모들이 딸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아들들에게 뜨개질 을 시켜보려고 무던히 애썼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은 여 전히 인형집을 좋아하고, 남자아이들은 여전히 나뭇가지를 쌓아 요 새를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기 좋아했다.

R 기사 : 앤 모이어(Anne Moir)와 데이비드 지젤(David Jessel) 이 쓴『두뇌의 성: 남자와 여자의 실제적인 차이』 (Brain Sex: The Real Difference Between Men and Women)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붙은 두뇌의 심리학에 관한 책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선천적인 차이 점들에 대한 경험적인 증거들을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모이어는 70년대의 철저한 페미니즘적인 분위기에서 옥스퍼드대학에 대학원 생으로서 유전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고, 그때 이 주제에 관심을 갖 게 되었다. 그녀는 어떤 과학자들이 남자 여자의 차이점을 별로 중요

9 GTY.org

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차이점들을 드러내기를 두 려워하면서 정치적으로 처세하려고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나 모이어 박사는 수년 동안 수많은 증거들을 관찰했고, 그것을 어떤 뉴 스리포터에게 보고했다. 그들의 협력과 노력이 빚어낸 그 책은 아주 심도 있게 아래와 같은 서론으로 시작된다.

남자는 여자와는 다르다. 그들은 동일한 종이라는 점에서, 즉 인 간이라는 점에서 동일할 뿐이다. 남자와 여자가 성향, 기술, 행동 면 에서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류사회를 생물학적인 거짓, 과학 적인 거짓의 바탕 위에 세우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것은 그들의 두뇌가 다르기 때문이다. 두뇌는 생명체의 가장 주된 명령기관이며 감정을 주관하는 기관이 다. 남자와 여자는 두뇌의 구조가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정보를 처 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가 남녀 간에 개념의 차 이, 우선순위의 차이, 행동의 차이를 낳게 된다.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난 10년에 걸쳐 과학적인 연구가 엄청나게 이루어졌다. 박사들, 과학자들, 심 리학자들, 사회학자들이 각각 별도로 연구해서 그 연구한 결과를 한 데 모아 하나의 일관성 있는 놀라운 그림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남녀성별의 비대칭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동일하며 서로 대체될 수 있다고 여겼 던 허무한 전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남녀가 모든 면에서 다 같 은 것은 아니다.

1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R 기사 :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또 다른 책으 로는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2년 동안 올라 있었던 데보라 태넨(Deborah Tannen)이 쓴『남자를 토라지게 하는 말, 여자를 화 나게 하는 말』 (You Just Don’ t Understand: Women and Men in Conversation, 한언출판사, 2001)이 있다. 태넨은 이 책을 쓰기에 앞서 먼저 다른 책을 썼는데, 그 책은 전체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성별의 차이에 대해 다루고 있는 곳은 단 한 개의 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후 그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터뷰, 기고, 강 의를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는데 그런 요청들 중에 90%가 남자와 여 자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 도 그것에 대해 좀 더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태넨은 그것에 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성별과 언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말들 을 하고 있다. 나도 그들 중에 끼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런 차이점 을 무시하는 것은 그런 차이들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중요한 것을 은폐한다고 해서 그것 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 고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게 만든다. 남자와 여자가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여자들에게 상처를 준 다. 그 이유는 여자들을 남성위주의 기준으로 대하게 되기 때문이 다. 그것은 또한 남자에게도 상처를 준다.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에 게 말할 때 비록 선의를 가지고 말을 했더라도 남자에게 말할 때와

11 GTY.org

똑같은 방식으로 말했다가 상대방에게서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돌아오거나 때로 화를 내고 분개하기까지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 문이다. 그럴 때 남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게 된다. … 그러나 우리 가 남자와 여자 사이의 다른 점을 인식하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런 점들을 고려하게 될 것이며, 서로를 배려하고 맞춰줄 것이며, 서로 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R 기사 :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떤 젊은 엄마는 페미니즘 운동이 다 른 어떤 것들보다 여자들과 어린이들을 도와주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책을 썼다. 물론 페미니즘이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남자들 도 그다지 예외는 아니다. 그녀는 아래와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러분들의 딸이 사용하는 학교 교과서들을(공립학교) 쭉 훑어 보면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자들이 하고 있는 일을 높여주고 인정해 주는 내용이 한 마디도 없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성들의 사회적 공헌에 대한 내용은… 문화에 대한 서술 부분에서 매우 주의 깊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빠져있다. 그런 식으로 남녀평등은 우리 사회에 여성이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또한 여자들이 남자들처럼 행동하기를 거부할 때 이 사회가 여성들의 그러한 거부권을 승인해줄 필요가 없고, 여성을 보 호해줄 필요가 없다고 변명하는 이론적인 근거가 되었다. 성별 또는 가정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일단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 공적인 부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세계인 일상생활에

1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파고들게 되고, 우리는 즉각 그 영향을 느끼게 된다.

월간 애틀랜틱에 실린 어떤 글에서는 그러한 영향들에 대해 아주 섬뜩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글의 결론은 다음과 같 다.“과거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인들은 가정생활을 대상으로 거대한 실험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부모세대보다 심리적으 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나라를 후퇴하게 한 첫 세대들이다.”

R 기사 : 우리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에 그동안 미국 사회에 몰래 틈타고 들어온 가정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거부했던 많 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감동적인 연설을 들었 다. 전 부통령 단 퀘일(Dan Quayle)의 아내인 마릴린 퀘일(Marilyn Quayle)은 그녀의 연설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여성들이 가정을 떠나야만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로 가정이 그렇게 부담을 주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 습니다. 때로 나는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운동의 그럴싸한 약속 들을 믿었다가 실망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여성성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치 않다는 것을 보고 실망한 것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어머니 가 되는 것, 아내가 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어머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의 삶은 소수의 남자들 또는 여자들이 전문분야에서 어떤 것을 성취함으로서 얻는 결과에 못지않은 멋진 결과를 우리에게 가

13 GTY.org

져다줍니다. 또한 남자들이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 로워진 것이 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남녀구분을 흐리게 하는 것에 반대해왔고, 그런 것을 주제로 책도 많이 썼다(오래 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렇게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한 책들 중에 어떤 것들은 여성들과 페 미니즘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또 어떤 책들은 남자와 여자에 대 한 성경의 가르침과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삶이 어땠는지에 대해 아 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책들은 막상 그것을 오늘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지 침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와는 달리 이 책은 부담스러운 학술적인 내용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해주는 내용이 아니다. 이 책은 남자 또는 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모든 중 요한 성경말씀들을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는 당신이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전체적인 그림을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또한 실제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려 주려고 노력했다. 또한 독자들은 남자 여자의 역할에 관한 성경의 교훈을 위협하고 있는 최근의 흐름과 경향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례가 보여주듯이 교회는 점점 더 세상에 물들어가고 있으며, 오늘날의 시

1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대적 흐름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부 지도자들과 작가들은 오늘 날의 사고에 동조하려고 성경진리들을 재정의 해서 그런 원리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 경진리들을 다른 원리들로 대체해서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피조물인 인간들을 타락 시켰다는 해석으로부터 시작해서 권위와 순종(여기서 순종을 의미하 는 submission의 영어적인 의미는‘자기가 최종결정권을 갖지 않고 상대방이 고려해 보도록 또는 승인하도록 계획, 제안, 아이디어, 관 점 등을 상대방에게 제시해주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기꺼이 최종 결 정권을 양보하는 것, 항상 기꺼이 상대방을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 는’ 이라는 의미로서 주인과 종 사이의 비인격적인 순종과는 달리 자 발적인 겸양으로 창조질서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 역자 주)의 원리와 같은 특정 성경 교리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 제1부에서는 이 러한 공격들을 살펴볼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디자인하신 하나 님의 디자인에 대한 여러 가지 공격들도 살펴볼 것이다. 제2부에서 는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디자인을 살펴볼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 안 에서 살아가는 것과 성령 충만한 것이 어떻게 만족스런 결혼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주는지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가정을 돌 보는 책임보다도 개인의 성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 아내로서 여성들이 겪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생각해볼 것이다. 그 외 에도 믿지 않는 자들과 결혼한 사람들, 과부가 된 사람들, 이혼한 사

15 GTY.org

람들, 또는 혼자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도 별도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앞에서 이끄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뒤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이 어떤 자격을 요구하는 지를 포함해서 남자와 여자의 교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하나님의 디 자인을 살펴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남자 여자와 관련된 가정생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 고 있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내가 쓴『성경 말씀이 성취되는 가정』 (The Fulfilled Family)과『성경이 자녀양육에 대해 말해주는 것』 (What the Bible Says About Parenting) 이 두 책에서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과거에 이미 실패한 사회 전반적인 실험을 뒤로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를 알아볼 것이며, 또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 누릴 깊은 만족과 하나님의 놀라운 디자인을 알아볼 것이다.

1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I부 하나님의디자인에대한공격 피조물이 타락함 권위와 복종

GTY.org

God’s complementary Roles for men & women

1장 피조물이 타락함

1989년 12월 4일자 타임지 표지가“여성들이 90년대를 맞이하 다; 80년대 여성들은 뭐든지 하려고 했다. 이제 그들은 원하던 모든 것들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페미니즘의 미래는 있는가?” 라 고 선포했던 것처럼 여성들은 새로운 10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 었다. 표지 글에서 작가 클로디아 윌리스(Claudia Wallis)는“현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 혁명인 페미니스트 운동은 정말 죽었는가? 아니면 옴짝달싹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것 인가?” 라고 쓰고 있다. 윌리스는 페미니스트 운동이 죽지 않았고 다 만 과도기를 거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여성 운동의 근본적인 요소들은 1980년대에 평등권 개정안 방어 에 실패한 후 퇴보를 거듭하면서 그 자체적인 목소리를 상실했고, 페

1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미니스트들은 그들이 내걸었던 다른 주장들도 온건하게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물며 여권운동을 주도하며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베티 프리댄(Betty Friedan)조차도 핵가족(가정)을 좋아한다고 선 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권운동 극단론자들과 그들이 주장했던 결혼폐지와 여성동성애 주의 찬양과 같은 기이한 주장들은 한 때 많은 관심을 받고 미국 사 회에 큰 손상을 주었지만,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남자, 그리고 결혼』 (Men and Marriage)의 작가인 죠 지 길더(George Gilder)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비록 페미니스트적인 정책들과 여성동성애를 인정하려는 정치 적 움직임이 거부되기는 했지만, 미국 문화는 여권운동 뒤에 가려진 모호한 이념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성의 자유 또는 성적인 자유주 의의 원리와 신조들(남성성과 여성성, 성에 따른 역할 구분, 이성을 대상으로 한 일부일처제라는 도덕적인 규범을 상실하게 만든 신조 들)은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미국 내에 대중적인 사고로 자리 잡았 다. 미국의 대부분의 학교들과 대학들이 그런 자유주의 가치들을 가 르쳤으며, 미디어에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선포했다. 하물며 페미니 즘과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조차도 성적인 자유의식이 득 세했다.”

불행히도 교회에서도 그런 가치들 중 일부를 받아들이고 있다. 신

19 GTY.org

자들은 점점 더 분별력을 잃고 페미니스트들의 먹이로 전락하고 있 다. 나는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과 학교들이 성경적인 진리에 기초한 교리들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는 것과 하물며 신학교들조차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주의 기독교 내에는 세 속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에 버금가는‘성경적인 평등을 위한 그리스 도인들의 모임’ 이라고 불리는 조직이 있는데 그 조직에서는 남자들 에게 가정의 지도자, 교회의 지도자라는 독특한 역할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반대한다. 존 파이퍼(John Piper)와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그들의 저서『성경의 남성상과 여성상 회복하기』 (Recovering Biblical Manhood and Womanhood)의 서론 부분에 서‘성경적인 평등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을 아래와 같이 묘사 하고 있다.

“그들은 세속적인 페미니스트들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성경의 권 위와 진리 됨을 부인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뿐 아니라 그들의 주장 을 뒤받침 할 만한 새로운 성경해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 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개인적인 헌신과 성경진리에 대한 신앙고백 을 통해 그들 스스로를 복음주의적인 신앙인들로 분명하게 규정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들은 세부적이고 열정적이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 결과는 복음주의교회들에서

2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남녀역할이 불명확해졌다는 것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무엇이 그 들의 역할이 되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논란은 점점 더 강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전혀 약 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어려움이 끝날 무렵에는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들과 복음주의 교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들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페미니스트들의 이상을 주류사회에서 제거하려 고 시도했지만, 교회는 페미니스트들의 이상이 교회에 틈타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페미니 스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한 것은 인류의 나이만큼이나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에덴동산의 이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녀를 첫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다. 그녀가 사탄의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아담의 권위에서 빠져나와 혼자 독립적으로 행동 했으며, 인류를 죄로 인도했다. 사탄의 목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디자인을 망가뜨리는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눈이 가려져서 하나님을 공격하려는 사탄의 책략에 동조하는 것이 비극인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는 가 장 강력한 수호자가 되어야 할 교회가 페미니스트 군대의 행진에 발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고 사는 사람들은 교회가 사회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 을 수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남자들과 여자들을 어떤 위치에 있게 만드셨는지

21 GTY.org

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디자인이 얼마 나 놀라운지를 다시 분명하게 살펴보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하나님이 남자들과 여자들의 역할을 각각 어떻게 디자인하셨는지 를 알아보려면, 먼저 창세기 1~3장을 알아야 한다. 1~3장은 앞으 로 우리가 다룰 내용에 대한 기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동료

창세기 1장 27~28절에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 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 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 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라. 첫째는 하나님이 남 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남자만 하나

2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하나님처럼 이성을 가지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사고하고, 느끼고,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거룩하거나 죄를 짓 지 않는 존재로 창조된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완전하게 모든 면에서 하나님처럼 창조된 것은 아니었다. 아담과 이브에게는 전지 전능함, 불변하심, 무소부재하심 등과 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특 성은 없었다. 그들은 단지 사람일 뿐이며 신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파우슨(J. David Pawson) 작가는 남자 여자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지만 남자와 여자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상기 시켜주고 있다.“실린더 헤드와 크랭크케이스는 재료, 사이즈, 무게, 비용 면에서 동일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서로 대체될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 둘 다에게 만물을 다스리라는 명령 을 주셨다는 것이다. 28절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축복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남 자와 여자는 청지기 임무를 함께 감당하는 동료였다. 하나님은 아담 과 이브 두 사람에게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다.

23 GTY.org

완전한 관계

창세기 2장 7절은 남자의 창조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 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이 책에서 다루려는 내용상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하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이 하나님이 남자를 먼 저 창조하셨고 남자를 창조하신 방법도 여자를 창조했던 방법과 상 당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 18~23절은 창세기 1장 27~28절의 연장으로서 사람 창조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자는 에덴동 산에서 살면서 동산을 경작하라는 명령과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 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창 2:15~17).“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하나님은 아담이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그를 돕는 배필로서 이브를 창조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 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1~22). 아내를 본 아담은“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고 말했다. 아담은 이브를 보자마자 이브가 완벽한 동역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에게 서 불경한 것이나 허물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그녀의

2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성품이나 태도가 죄가 없는 순수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브에게 는 비판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아담에게는 상대방을 비판하려 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2장은“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 워하지 아니하니라” (24~25절)고 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들은 아 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악한, 불순한, 부정한 생각이 없는 온전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기 때문에 남자에게 여자와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아담이 여자에게‘이브’ (여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사실은 여자에 대한 아담의 권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구약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권위가 부여될 때 특권도 함께 부여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본래의 관계는 아주 순수하고 완벽 했기 때문에 이브에 대한 그의 지휘권은 그녀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나타났으며, 아담에 대한 그녀의 순종도 깊은 사랑으로 나타났다. 그 들 사이에 상처를 줄만한 이기심이나 자기주장은 없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돌보심 아래서 그들은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목 적을 온전히 수행하면서 아담은 이브를 위해, 이브는 아담을 위해 살 았다. 트리니티 에반젤리칼 디바이니티 신학교 교수인 레이몬드 오트런 드(Raymond C. Ortlund Jr.)는 이 두 가지 이야기의 패러독스를 아래와 같이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25 GTY.org

아담과 이브는 동등했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브 는 영적으로 아담과 동등했다. 그리고“그에게 돕는 배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동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를“돕는 자” 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았다. 그 들의 남성성과 여성성은 단지 각각의 역할에 맞는 특성일 뿐이다. 남자는 남자다움의 특징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리드하고 이끄는 일을 하도록 지음 받았고, 여자는 여자다움의 특징을 가지고 하나님 을 위해 돕는 일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의 생각에 끼워 맞추기 위해 창세기 2장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특히‘돕는 배필’ 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 석하는가? 장로교회에서 성직을 받은 아이다 브쟝쏭 스펜서(Aida Besoncon Spencer)는 히브리어‘neged’ 는‘앞에서’또는‘~가 보 이는 곳에’ 라고 번역될 수 있으며, 우월성 또는 평등함을 내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오트런드(Ortlund)는‘neged’ 는‘아담에게 가장 적절한 딱 맞는 베필’ 이라는 뜻이기 때문에‘딱 맞는’ 으로 번역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우리나라 성경에는 그냥‘돕는 배필’ 로번 역되어 있지만, 영어로는 suitable helper로 되어 있으며, suitable helper의 원래의 뜻은 아담에게‘잘 맞는 배필’ 이라는 뜻이다. : 역 자 주). 스펜서는“하나님은 여자를 아담‘앞에 있도록’또는 아담에 게‘보이도록’창조하셨고”그것은 모든 관계 면에서 아담과 동등하 다는 것을 상징(만약 우월하지 않았다면)하는 것이라고 담대하게 결

2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론을 내리고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여자 가 돕는 배필이기는 하지만 다스리는 위치에서 돕는 자였다고까지 주장한다. 하나님은 이브를 아담보다 우월하게 창조하지 않았으며, 아담의 노예로 창조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이 완전한 관계를 맺도록 하셨다. 남자는 머리로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었고, 그 녀는 기꺼이 그에게 순종했다. 아담은 모든 면에서 이브를 자기와 하 나로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디자인한 영화롭고 완벽한 연합이었 다.

죄와 저주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디자인에 아주 끔찍한 일이 일 어났다. 창세기 3장 1~7절에는 죄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 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 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 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 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 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

27 GTY.org

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 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 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 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 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뱀은 지도자로 지음 받은 아담과 직접 부딪히기를 피하고 그 대신 추종자로 지음 받은 여자에게 접근했다. 사탄은 이브에게 하나님께 서 먹지 말라고 금한 금단의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며, 오히 려 그것을 먹기만 하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4~5절). 사탄은 그녀를 유혹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하 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담에게 자기와 동일한 죄를 짓도록 설득했고, 그렇게 함으로서 사탄은 아담의 리더십을 공격하는데 성 공했다. 이브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사 탄의 유혹 앞에서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죄를 지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을 뿐만 아니라 이브가 그 의 리더십을 강탈하는 것에 동조했고,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이 그 에게 주신 리더로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에 실패했다. 남자와 여자 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그들의 역할을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의 부부관계는 더 이 상 과거처럼 완벽한 모습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오트런드는 이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성별에 따른 역할을 바

2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꾼다는 것만큼 충격적인 일이 또 있겠는가? 하나님은 창세에 남녀의 역할이 바뀐 것을 정죄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이름으 로 전도를 하려고 하면서 과연 남녀의 역할을 바꾸는 것을 제도화하 는 것이 맞는 일인가?”

저주의 요소들

아담과 이브의 죄는 저주를 불러왔고, 그 저주는 삶의 가장 기본적 인 요소들에 영향을 주었다.

R 죽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 리라 하시니라” (창 2:17). R 잉태의 고통 : 아기를 갖는 놀라운 기쁨이 잉태의 고통으로 인 해 다소 그늘지게 되었다(창 3:16). R 힘든 일 : 남자는 고생스럽게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저주 를 받았다(창 3:17~19). R 부부관계의 불화 : 이브가 뱀의 유혹 앞에서 남편과 상의하지 않은 것과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하나님은 이브에게“너는 남편 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 3:16)는 선포를 했다. 나는 그 저주가 부부관계의 불화에 대한 예고라고 생각한다. 그 불 화는 남편은 아내를 강압적으로 다스리려고 하며, 아내는 남편의 마 음을 지배하고 주도하려는 갈망을 가짐으로서 생겨나는 불화이다

29 GTY.org

『 ( 여자와 하나님의 말씀』 (Women and the Word of God)에서 수산 포(Susan Foh)가 제시한 해석이다).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요” 에서‘다스리다(rule)’ 의 히브리 원 어는‘군림하다’ 는 의미이며, 70인역 성경에서‘다스리다’ 는 말은 ‘공식적인 지위로 올라간다’ 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자에게 “한 때 너는 아담을 도와주는 동료로서 함께 팀을 이루어 세상을 잘 다스렸지만, 그러나 이제부터는 남자가 너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 게 되었다” 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의 지휘권에 대 한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이 아니었다. 성경은‘다스린다’ 는 것이 무 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교리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고 있지 만, 독재적인 권위주의가 새로 등장한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 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에서‘원한다(desire)’ 는 말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타락 이전에 아담이 이브에게 원했던 성적 인 것이거나 심리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도‘원 한다’ 라는 동일한 히브리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3장에서 나 왔던‘원한다’ 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그 말은 아랍어 어근에서 왔 고, 그 아랍어 어근은‘경쟁하다, 억지로 강요하다, 억지로 시키다, 주관하려고 하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창세기 4장 7절에는 하나님 은 가인에게“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고 경고하고 있다. 죄는 가인을 다스리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이 그 죄 를 다스리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성경구절과 창세기 3장 16절이 언

3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어 면에서 그리고 주제 면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볼 때 창세기 3장 16 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볼 수 있다.“너는 너의 남편을 다스리고 싶 어 할 것이지만 남편이 너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이브에 대한 저주 는 여자들의 갈망이 이제부터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리더십을 강탈하 고 싶어 하지만 남자들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리더 십을 지키고 여자들의 그런 갈망에 저항할 것이라는 것이다.

저주의 결과

타락과 저주로 인해 여자의 아름다운 순종과 남자의 사랑을 바탕 으로 한 권위가 심하게 왜곡되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전쟁 의 시작이며, 여성해방운동과 남성우월주의가 탄생한 거점이다. 여 자들에게는 남자의 권위를 강탈하려는 죄악된 경향이 있고, 남자들 은 여자들을 자기의 발아래 두려는 죄악된 경향이 있다. 남자가 여자 를 그런 식으로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포는 하나님이 인 류를 저주하신 저주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구원받기 전에 남자들과 여자들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을 섬기는 것이다. 그런 본 성은 남녀가 조화로운 관계를 맺게 하기보다 관계를 파괴시키기만 한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만이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관계에 창조의 질서와 순종의 조화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남녀관계가 심하게 왜곡된 것은 주로 남자들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대의 대부분의 문화에서 여자들은 하인보

31 GTY.org

다 겨우 조금 더 나은 대접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에서도 여자들을 무시하는 그런 행동들을 여전히 곳곳에서 볼 수 있 다. 기원전 2세기의 로마의 정치가였던 마르카우스 카토(Marcius Cato)는“당신의 아내가 간음하다가 들통이 났다면 그녀를 죽여도 당신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간음을 하다가 아내 에게 들켜도 그녀는 감히 당신에게 손가락 하나도 댈 수 없으며 그것 은 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저주로 인해 생 겨난 남성우월주의의 무자비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이 남편들과 아내들에게 원래 주셨던 책임들과 역할들이 심히 왜곡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짐작컨대 하물며 여자들이 권리가 많이 향상된 오늘날의 몇몇 사 회에서도 여자들을 남자들의 성적인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성적인 쾌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의 남자들은 자기 자 신을 동물보다 약간 더 나은 존재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근원, 목적, 책임에 있어서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함) 그는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자신의 즐거움과 유익을 위해 이용하는 경 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페미니즘의 형태로 저주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은 잔인함, 잔혹함, 권력에 대한 집착, 거만함, 마초적인 무례함 등 타락한 남자 들의 가장 나쁜 특징들을 흉내 내면서 창조의 질서를 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인 인간에 대한 사탄의 공격이 가정을 타 락시켰지만, 죄는 가정파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질적이고 불화의 원

3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인이 되는 악한 영향력을 세상에 널리 퍼트렸다. 창세기는 존속살해 (4:8), 일부다처제(4:19, 23), 성과 관련된 악한 생각들과 말들 (9:22), 간음(16:1~4), 동성애(19:4~11), 간통과 강간 (34:1~2), 근친상간(38:13~18), 매춘(38:24), 성적 유혹 (39:7~12)에 대한 기록들로 가득하다. 이런 것들은 전부 결혼과 가 정의 신성함과 조화를 직접 공격하고 있다. 사탄은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도 흔들리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이 가정이기 때문이다. 저주가 인류에게 임하되 인간관계의 핵심인 가정에 임한 것이다. 가정이라 는 제도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생산적인, 의미 있는, 행복한 삶을 살 도록 서로를 돕는데 가장 필요하다. 그러나 거룩한 창조 질서에 대적 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열중하고 자기 자신을 섬 기는 삶에서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으려고 하게 되었다. 미국 문화 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성적인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라고만 권하지 만, 사람들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난잡한 성적인 생활과 신실 하지 않은 결혼생활, 부부 스와핑, 동성애, 수간 등과 같은 것을 통해 성적인 자유를 누리려고 한다. 그러한 거짓과 속임의 미끼에 걸려들 때 사람들은 사탄에게 넘어가, 하나님이 그러한 죄의 결과로 공히 선 포한 파멸과 질병을 겪게 되며, 인생에서 의미 있고, 진실 되고, 모든 만족을 주는 인간관계들을 파괴하게 된다.

33 GTY.org

페미니즘의 교회 침투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의 디자인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명 확하지만, 사탄의 또 다른 공격은 비교적 포착하기가 어렵다. 역사적 으로 볼 때 사탄은 하나님의 계획을 위조한 종교적인 시스템을 개발 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했다. 그런 종교적인 시스템들 중에 어떤 것들 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역할에 대한 하나님의 디자인을 뒤집는 것들 이었다. 특히 영지주의 이단은 세속적 페미니즘에 깊은 영향을 주었 을 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페미니즘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대에 존재했던 페미니즘의 뿌리들

최근에 나온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고대 영지주의를 새롭게 포장 하여 재탄생시킨 것에 불과하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약성경 을 전공하고 있는 피터 존스(Peter Jones) 교수는“영지주의란 고대 의 동방종교들의 신비주의가 서방의 그리스의 합리주의 문화와 만나 서 생겨난 거짓된 안티 갓(anti-God) 종교들 전체를 광의적으로 일 컫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영지주의는 직관과 신비적인 경험들을 받 아들였다. 그들은 직관과 신비적인 경험들은 간절히 찾는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지식이며 성경진리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주장했 다. 영지주의는 성경이 세속적이며, 이 땅에 속한 것이며, 불완전하 다고 했다.

3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오늘날 영지주의 종교는“뉴에이지” 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고 있지만, 뉴에이지에는 과거 영지주의와는 다른 좀 더 새로운 것 이 있다. 고대 영지주의는 그 중심에 신비주의가 있었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육의 세계는 원래는 의도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육의 제한에서 벗어나 영적인 생명이라는 신비로운 자유의 세계를 누려야 하는 존재이다. 그런 주장은 이단적인 이원론 철학의 주장과 전혀 다 를 바가 없다. 그것은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가정하고 있다. 고대 영지주의는 육적인 세계는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창조주 하나님의 실수로 인해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자 들은 그들의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사기꾼이며, 진리로 가장했으며, 불가지의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서 하나님을 격하 하려고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종교로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님이 천 지창조 때 인간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어느 정도는 실 수 때문인 면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은 이미 신성하지만 악한 육에 갇혀 있어서 육의 제한을 받는 것뿐이라고 편 한 데로 믿으면서, 지식을 쌓고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들 안 에 있는 신성이 자유롭게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 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를 이룰 수 있는 길은 구약에서 벗어나는 길 이었다. 고대 영지주의는 하나님을 모독했고 성경진리를 거부했을 뿐만 아 니라 여성의 역할을 왜곡시켰다. 예를 들면, 이브가 신성한 영을 받 은 여자로서 아담을 구원했다고 주장했다. 창조 그리고 죄와 관련된 기록들도 왜곡시켜 영지주의 문헌에는 하늘의 이브는 지혜의 어머니

35 GTY.org

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녀가 동산에 있는 뱀에게로 들어가 뱀이 아담 과 이브에게 구원의 진정한 길을 가르쳤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뱀 은 유혹하는 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뱀은 또한 구원자, 즉 하나님을 진정으로 반영해주는 진정한 그리스도라고 말 하고 있다. 영지주의 문헌에 있는 모든 기록들은 구속 역사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은 악하며, 동산에 있었던 뱀이 진정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을 반영해주는 신약의 그리스도도 창조 주와 마찬가지로 악하다. 영지주의는 또한 진정한 그리스도는 절대 로 죽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원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사람이 영광스럽고 기적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기이해와 자아실현이 진 정한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존스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영지주의 신자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을 때‘구원’ 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즉, 자기 자신이 거룩한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 내면에 왕국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즉 무엇이 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가 인간적인 전통이나, 인간이 만든 것들이나, 피조세계나 신의 법에도 제한을 받지 않는 그런 거룩한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 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기 구원이 따라오게 되는데, 자기 구원 중에 어떤 것들은 성경의 윤리적 규범을 거부하며 남녀 성별에 대한 성경 의 기록들을 뒤집는 것이다.”

3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영지주의에서는 남녀 성별에 따른 역할이 서로 완전히 대체될 수 있다. 고대 영지주의 문헌인‘거룩한 계시자’ 에는“나는 양성이다. 나는 어머니이며 동시에 아버지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양성은 모 든 성별구분을 전부 없애버리는 것으로서 처음부터 그 목표가 사탄 적이다. 융학파에 속한 분석가이며 공공연한 페미니스트인 준 싱거 (June Singer)는“남녀 양성은 한 사람의 인간이 가진‘남성적인 면’ 과‘여성적인 면’ 을 합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영지주의에 대한 그녀의 책에서 그녀가 어떻게 남녀 양성과 영지주의를 서로 연 결시키고 있는지를 주목하라.“남녀 양성은 좀 더 의식 있는 행동이 며, 그러므로 온전한 것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 녀 양성은 우리를 형성하는 모든 면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봄으로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또 재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의 의식의 범위를 더 넓히고 의식의 질을 더 높이고 있다.”영지주의 의 이상은 성별을 없애는 것이다. 성별에 따른 차이를 근본적으로 거 부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성별과 그에 따른 역할에 완전히 혼 란을 가져오는 것이다. 영지주의의 핵심과 뉴에이지 운동은 여성의 힘이 구원의 핵심이라 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뉴에이지는 여신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셜리 맥클레인(Shirley MacLaine)은 그녀의 책『내면으로 들어가 기』 (Going Within)를“사차이, 마더, 캐슬린, 벨라, 그리고 그 외에 내면에 있는 영적인 여성성을 추구하는 모든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바치고 있다. 남자는 물질과 악에 해당하는 반면에 여자는 영과 선에 해당하는 것이다.

37 GTY.org

이 이단은 기독교를 믿는다고 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나는 내 안에 신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나는 그녀를 열 렬히 사랑합니다” 라고 로마 가톨릭 신학자 캐롤 크라이스트(Carol Chirst)는 말하고 있다. 남부 침례교회 신자이자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Al Gore)는“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을 믿으며, 모든 종교적인 믿음들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고 대의 이방 여신숭배가 전 세계와 개인의 구원을 가져다주는데 도움 이 되기를 바란다” 라고 말하고 있다. 피터 존스(Peter Jones)는 그가 쓴 다음과 같은 글에서 뉴에이지 이론의 목표를 잘 보여주고 있다.“양성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길 은 성별의 상호 대체와 뉴에이지 페미니즘을 통해 남자 여자를 구분 하는 전통을 파괴시키는 것이다.”그는 그 예로서 1992년에 출판된 뉴에이지 작가 샬린 스프레트낙(Charlene Spretnak’ s)의 책『여성 영성의 정치』 (The Politics of Women’ s Spirituality)를 제시하고 있다. 그 책은“여신숭배라는 이방종교를 바탕으로 태어난 페미니스 트 운동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었던 남성우월주의를 뒤엎고 유대 크 리스천 종교에 종말을 가져왔다.” 『미국의 페미니즘화』 (The Eeminization of America)를 쓴 작가 엘리노 렌즈(Elinor Lenz)와 바바라 마이어호프(Barbara Myerhoff)는 여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기념하고 있다.

“페미니즘적인 영성은 현대판 신비주의이며, 자기정의(selfdefinition)와 전 우주적인 힘의 통합이다. 페미니즘적 영성의 권위

3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는 개인의 내면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영성은 몸과 영혼이 서로 분 리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능적이고, 세속적이 며, 정욕적인 요소들과 영적인 경외, 자기절제의 요소들이 서로 한 데 어울려 있다. 그것은 과정과 통합의 종교로서 우리 시대의 신앙이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는 역동적이고, 다원론적이며,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사 람들이 초자연적이고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같은 신에게서가 아니라 인간 공동체에서 인생의 의미 있는 것들과 일관성 있는 것들을 발견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신들이 죽어 없어지고 새로 운 영성이 그들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세 번째 오심 (third coming)’ 을 기대할 수 있다. 세 번째 오심은 인간으로서 우 리에게 있는 공통된 것들을 서로 나눔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영적으 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거룩한 창조의 신비, 자연세계와도 영적으로 연결됨으로서 우리 각 개인이 더욱 높은 곳에 도달하도록 도와줄 것 이다.”

슬프게도 분별력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지옥의 삼키는 것과 같은 이 이단의 희생자들이 되었다. 교회는 이 파괴적인 이단의 힘을 억제 시키는 대신 오히려 그들에게 편승했다. 달라스 침례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데이비드 에이어스(David J. Ayers)는“새로운 영적인 운동 으로서 이런 양상의 페미니즘의 번성은 페미니즘이 퇴보하는 과정에 서 드러나는 일부 국한된 마지막 몸부림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한 주장은 페미니즘 세계에서 중요한 사회적 논제로 자리 잡았

39 GTY.org

으며, 복음주의자들을 포함한 기독교 내에서도 그러한 주장이 점점 더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과거 몇 백 년 동안 서구 사회는 프랑스 혁명 이면에 존재했던 가 장 강력한 힘이었던 인본주의, 평등주의, 성무차별주의, 무계급주의 철학의 엄청난 공격을 받아왔다. 사탄은 정부, 가정, 학교, 하물며 교 회 등 인간의 모든 활동 분야에서 하나님이 세운 정당한 권위들을 서 서히 파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구분들을 흐리게 하고 허물며 그 권위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일을 뒤 에서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다. 우리는 신적인 권위나 신의 간섭을 받 지 않고 인간의 최고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무신론적인, 진화론적인 주장의 희생자들이 되어가고 있다. 철학은 자기 파괴적이다. 왜냐하 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하고 각자 마음에 원하는 대 로 살아간다면 아무도 질서 있게 유익하게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 다. 불행히도 많은 교회들이 이 인본주의 철학의 먹이로 전락해버렸 고, 지금은 여성들과 동성애자들에게 성직을 부여할 것과 페미니즘 과 동성애에 대한 주장을 기꺼이 수용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원본의 내용들 중에 현대 평등주의에 완전히 반대되는 기록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것이 아니라거나 또는 서기관들, 예언자 들, 사도들, 성경 편집자들이 중간에 끼어들어 성경을 왜곡한 것이라 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성경 해설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완전하 신 말씀으로 성경의 절대 권위에 비중을 두기보다 현대의 인본주의

4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철학에 근거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그런 교회는 혼동, 무질서, 부도덕, 배교의 폭풍에 뛰어들고 있으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도록 만들고 있다. 우리는 그런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 상할 수 있다. 베드로 사도도 그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 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 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 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벧후 2:1~3)

1세기에 사도 바울도 이러한 이단들을 만났다. 앞으로 다루게 될 내용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 시대의 거짓 가르침에 어떻게 맞섰으며, 남자들과 여자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디자인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는 지를 살펴볼 것이다.

41 GTY.org

2장 권위와 복종

성경의 저자들 중에 사도 바울만큼 많은 공격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관련해서 가장 신 랄한 공격은 세속의 페미니스트들에게서가 아니라 복음주의 페미니 스트들에게서 왔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편향적인 사고를 가르칠 때가 많은 남성우 월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달라스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성경적인 남 성상과 여성상을 위한 공의회’의장인 웨인 하우스(Dr. H. Wayne House)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전통적인 해설보다 현대적인, 무신론적인, 인류학적으로 도출된

4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해설의 모델이 더 좋다는 이유로 우리는 죄가 한 남자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바울의 주장을 무시할 수 있는가? 우리는 바울이 원 죄에 대한 개념을 율법학자의 이론에서 도입해왔다는 것 때문에 죄 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부할 것인가? 물론,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아니요!’ 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 페미니스트들이 제출한 사례들 에 근거해서 그들의 주장의 핵심을 도출해보면 위의 가정들은 페미 니스트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경우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경의 모든 내용이 믿을만한 것인지, 변함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지에 관한 것이 되며 남녀 중에 한 쪽이 다른 한 쪽 에게 복종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 된다.”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 를 알아보는 것은 좋은 통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문제는“성경을 읽을 때 소설을 읽을 때와 동일한 방법과 관점을 사용해서 성경에 기 록된 문장의 의미나, 문법, 원문 요소들을 해석한 후 성경말씀이 일 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한다면, 그 성경말씀이 오류라 는 것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부정은 억측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방식으로 가장 공격을 많이 받는 성경말씀 중에 하나는 고린도 전서 11장 3~16절이다. 그리고 3절에 나오는‘머리’ 라는 말에 대한 전통적인 해설은‘~을 다스리는 권세’ 이다.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 이 그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 말을 다시 정의해야

43 GTY.org

한다. 그러면 이 말씀을 살펴보자.

고린도의 페미니즘 고린도교회는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동일한 문제를 가 지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 여자의 역할과 남녀관계에 대한 잘못된 오 해였다. 그들의 이러한 혼동은 신약시대에 로마제국에 만연해 있었 던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로마의 풍자 시인인 유베날리스(Juvenalis)에 의하면 남자들만 가는 멧돼지 사냥에 여자 들이“손에 창을 들고, 가슴을 드러내고 함께 갔다.”그는 또 이렇게 쓰고 있다“헬멧을 쓴, 여성성을 공개적으로 버린, 강인한 사냥기술 에서 기쁨을 찾는 여자들에게서 어떤 정숙함을 기대할 수 있겠는 가?” 고린도에서 여자들은 자신들을 남자들과 동일하게 대접해주기를 요구했다. 오늘날 많은 여자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결혼해서 아이들 을 낳고 키우는 것을 그들을 구속하는 부당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몸매를 망칠까봐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분노했다. 그들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자녀들을 돌보기를 거부하고, 남편과 집을 떠나 다른 남 자들과 살았으며, 남자들이 입는 옷을 입고, 남자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전통적으로 남자들만의 영역이었던 직업에 종사하려고 했으 며, 일반적으로 여성에게서 볼 수 있는 모든 표시들을 던져 버렸다. 고린도에서는 사회적으로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은 여성들이 가장

4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먼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여성들은 대부분 아주 천한 노예 또 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 대우를 받았으며, 남자들은 원한다면 아내를 사거나, 서로 바꾸거나 또는 버릴 수도 있었다. 많은 유대인 여성들 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이혼하기가 아주 쉬웠고, 이혼은 그 저 평범한 것에 불과했으며, 이혼을 할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남 편 쪽에서 먼저 이혼을 제의했다. 어떤 유대인 남자들은 여자들을 아 주 낮게 평가해서 하물며 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기도문에도“노예, 이방인, 여자” 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문구가 있을 정도였 다. 그런 문화 가운데서 바울은 여자의 순종에 대한 고린도 성도들의 질문과 관련된 설교를 하고 있다. 그는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하는 것 은 단지 권위와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원리를 반영해주는 것일 뿐이라는 말부터 시작하고 있다.

버릴 수 없는 요소들 권위와 순종은 모든 피조물들의 특성뿐만 아니라 창조주의 특성을 나타내 보여준다. 바울은“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 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 11:3)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구 속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우리는 영원히 잃어버린바 되었을 것이다. 만약 개인들이 구주 그리스도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45 GTY.org

풍성하신 은혜를 거절하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여 자들이 남자들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가정과 사회 전체가 파괴될 것이다. 신성한 것에서나 인간적인 것에서나 순종과 권위는 하나님 의 질서, 하나님의 디자인과 관련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 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남녀관계의 권위와 순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가르치기에 앞서(엡 5:22),“그리스도를 경외 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1)는 말로 남녀가 지켜야 할 일반적인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복종하라’ 는 말은 그리스어로‘hupotasso’ 이며, 이 말은 원래 군대 용어로서‘~(어떤 사람)의 하위 계급이 되 다, 정렬하다’ 는 의미이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의 권리를 다른 사람 에게 양도한다는 말이다. 또 이 말은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수 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고전 16:16)” 고 했을 때 사용했던 말이다. 베드로는 우리에게“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 되” (벧전 2:13)라고 명령했다. 국가는 다스리는 자들, 군인들, 경찰 들, 그리고 기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없이는 운영될 수 없 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일반 시민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 다. 그러나 국가가 와해되어 무정부상태에 빠지지 않으려면 법과 질 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 내부적으로 우리는“지도자들에게 순종 (obey)해야 하며 그들에게 순종(submit)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 (히 13:17). 정부 지도자들이 일반 백성

4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들보다 우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 지도자들도 일반 그리 스도인들보다 더 우월하지 않다. 그러나 교회를 포함하여 어떤 기관 도 권위와 순종이 없이는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가정도 그 가정의 각 멤버들이 자기주장만 한다면 그 기 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하나님은 가정의 권위 체계를 세울 때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그리고 부모를 자녀의 머리로 세웠다. ‘머리’ 는 전체 몸에서 다스리는 부분이기 때문에 바울은 머리를 상징으로 사용해서 권위를 묘사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과 에베소서 5장 23절에 나오는‘머리’라는 말은 그리스원어로 ‘kephale’ 이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kephale’ 라 는 말을‘위에 있는 권위’ 로 이해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에 어떤 페 미니스트들과 학자들은 남녀평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그 말이 ‘근원’또는‘원천’ 을 의미한다고 제안했다. 이 작가들은 의문의 여지가 많은 어떤 고전희랍시대의 문서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1세기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kephale’ 를‘위 에 있는 권위’ 로 사용했다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견해를 받아들이는 지도적인 페미니스트는 캐더린 클라크 크로저 (Catherine Clark Kroeger)이다. 그녀는 그녀의 글에서 그녀를 지 지하는 사람들은‘kephale’ 가‘위에 있는 권위’ 를 의미할 가능성에 가장 비중을 적게 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웨인 그루뎀 (Wayne Grudem)은 그의 탁월한 저서『머리의 의미: 최근에 이루 어진 연구들에 대한 답』 (The Meaning of Kephale: A Response to

47 GTY.org

Recent Studies)에서 그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그러한 소위“고전들” 이 기원후 4세기나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임을 밝혀냈다.“결국 ‘kephale’ 와 관련한 그들의 연구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신 약시대 전이나 또는 신약시대의 모든 희랍문헌들에서‘kephale’ 를 ‘근원’ 이라는 말로 사용했다는 예가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남녀평 등의 예가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그리고 그는‘kephale’ 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사용될 때 항상 위에 있는 권위를 의미했다는 것을 계속 입증해 보여주고 있다.

권위에 대한 해명 고린도 성도들이 머리의 원리를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바울은 머 리의 권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세 가지 예를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권위

“그리스도는 모든 남자들의 머리이다.”또한 그리스도는 피 값으 로 사시고 구속하신 교회의 구주로서 교회의 머리이다. 그러나 그의 거룩한 권위 안에서 그리스도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들의 머리이다. 예수님은“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라고 선포했다. 예수님의 권세에 기꺼이 순종하 는 자들이 교회이며, 예수님의 권세를 대적하는 자들은 세상이다.

4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남자의 권위

그 다음에 바울은“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고전 11:3)라고 기록하 고 있다. 이것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종종 자기 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의지한다(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그들은 남편들이 아 내들에 대해 더 높은 권위를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순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갈라디아 서 3장 28절을 사용한다. 그러나 두 말할 것도 없이 일반적인 상황에 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순종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들의 주장 을 펴는데 있어서 갈라디아서 3장 28절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말씀을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 기능적인 평등을 입증하 는“엄밀한 시험” 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이 신 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바울이 가르쳤던 모든 교훈들과 정반대되는 말을 한 것이며, 이를 볼 때 갈라디아서 3장 28절은“그가 가장 깊이 영감을 받아서 한 말” 이고 다른 가르침들은 그가 개종하기 전에 가졌 던 유대인 랍비식의 편견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후문맥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 은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기능적인 평등에 대해 반대도 지지도 하 지 않았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6~22절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의 언약과 모세의 율법과의 역사적 관계, 그리고 아브라함의 언약이 모세의 율 법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살펴본 후에 그 두 개의 언약들이 개인에게

49 GTY.org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의 회심 전 과 회심 후의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회심 전에 그는 율법의 노예 였다. 그러나 회심 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자가 되었다. 바 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결과를 말해주면서 믿 는 자가 새롭게 발견하게 될 자유의 세 가지 면을 설명해준다.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26절), 다른 믿는 자들과 하나가 된 다(28절), 그리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된다(29절). 이 책을 쓴 중요한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의 두 번째 면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바울은“너희는 유대인 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8절)고 말하고 있다. 로버트 소시(Dr. Rovert L. Saucy)는 이 중요한 성경말씀에 대해 깊은 통찰과 해설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성경말씀에 대한 해설에 도움이 되는 질문은‘그리스도 안에 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구별은 무엇인가?’ 이다. 사도 바울의 말을 참고로 해서 그의 말을 다르게 표현해보면“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들은 전부 하나이기 때문에” 라고 쓸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공유할 수 있는“하나” 가 도대체 무엇인가? 우 리는 이런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남자와 여자 의 기능적인 질서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기능적인 질서의 문제라 기보다는 사도 바울이 대조시킨 다른 두 가지‘유대인과 헬라인’ , ‘종과 자유인’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영

5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적인 신분에 관한 것이다. 인간사회의 기능적인 질서의 문제를 이 성경말씀과 연결시키는 것은 문맥상의 전후관계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그 의미를 제대로 살려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교회에서 남녀 사이의 질서 폐지에 대한 근 거로 삼을 수 없다. 그것은 믿는 부모와 자녀들 사이의 질서 또는 믿 는 백성과 지도자들 사이의 질서를 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냐 하면 믿는 자들은 전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거나, 아니면 교회 조직에서 탈퇴한 자들이거나 둘 중의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하나 된다는 것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차이점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종과 주인 사이의 기능적 차이점을 없애버리는 것도 아니다(고전 7:20~24 참조). 그 런데 왜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는 하나 됨이 기능적 차이점을 없애 는 것이라고 하는가? 소시는 그런 해설이‘male(남자)’와 ‘female(여자)’ 라는 일반적인 말의 사용이 그것을 좀 더 강화시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남녀의 기능적인 역할에 대한 바울의 모든 글에 는‘남자’ 와‘여자’또는‘남편’ 과‘아내’ 라는 말들이 등장한다. 그 는“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남자와 여자의 기능적인 관계에 대해 말하려고 한 것이라면,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처럼 그가 늘 사용했던 말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 나 여자나라고 할 때‘male, female’ 이라는 말보다‘man, woman’ 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 시대에는 신분과 성별에 따른 구분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분

51 GTY.org

명한 선을 그었고 높은 장벽을 세웠다. 그러한 신분 구분에서 중요한 개념은 특정한 사람들,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유대인, 자유인, 남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가치 있고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 나 복음은 이러한 교만한 생각을 전부 무너뜨린다. 그리스도에게 속 한 사람들 사이에는 더 이상 그러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 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이다.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인종 적, 사회적, 성적인 차별이 없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유대인들, 이방인들, 노예들, 자유인들, 남자들, 여자들이 엄연히 존재했다. 사람들에게는 인종적 으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서로 다른 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 러나 바울은 주님 앞에서 사람들의 영적인 가치, 특권, 존귀함으로 따져볼 때 영적으로는 아무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종, 사회적인 신분, 성별 또는 다른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차이들에 바탕 을 둔 편견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의 교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믿는 자들은“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전부 하나이다.”하나님은 영적인 축복들, 자원들, 약속들을 모 든 믿는 자들에게 균등하게 주셨다. 기독교는 믿는 여자들을 믿는 남자들과 영적으로 완전히 평등한 존재로 여겨줌으로서 고대 세계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신분으로 여성들을 높여주었다. 하나님은 가정과 교회를 다스리는 문제와 관 련해서 남자들을 머리로 세우기는 했지만, 영적인 소유나 특권과 관 련해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전혀 차별을 두지 않으셨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능력, 지식, 성숙함, 영성과 관련해서 남자들

5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과 여자들 사이에 아무런 구분을 두지 않은 이유이다. 사실, 어떤 여 자들은 그러한 영역들에서 어떤 남자들보다 분명 더 뛰어나다. 그러 나 하나님은 남자들에게 타고난 우월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서와 상호보완이라는 목적을 위해‘남자는 권위, 여자는 순종’ 이라는 원리 를 세우셨다. 피고용인이 고용주보다 더 지식이 많고 더 기술이 뛰어 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은 비록 경영자들이 유능하지 않더라도 피고 용자들이 경영자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고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 가운데 가장 영적인 사람들로 선택된 자들 이다. 물론 교회 지도자가 아닌 보통 신자들 중에서 지도자들보다 더 영적인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도 지도자의 지위에 있 지 않은 사람들은 지도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교회에 남자들보다 더 뛰어난 신학교 학생, 신학자, 설교자인 여자 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여자들이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디자인을 수용한다면, 남자들의 리더십에 순종해야 하며 그것을 강탈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권위

권위와 순종이 세 번째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그리스도의 머 리이신 하나님이다” (고전 11:3).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자 기를 내어주는 것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요 4:34, 5:30, 6:38, 고전 3:23, 15:24~28 참조). 그리스도는 성육신 전에나, 성육신으 로 이 땅에 사신 동안에나, 그 후에도 절대로 아버지 하나님보다 열

53 GTY.org

등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서 주님은 하나님 을 향한 사랑으로 자기를 겸손히 낮추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계 획을 완수하시기 위해 구주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이시고 아버지 하나 님께 복종하셨다. 권위와 순종의 세 가지 면들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 리스도께 순종해야 하며,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하나 를 거부하면 저절로 다른 두 가지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원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 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과 믿는 자들이 그리스 도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예에서 볼 때 권위와 순종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며, 독재적인 폭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사랑으로 아들을 보내셨지 강압적으로 보내지 않았다. 아들은 사랑으로 아버지께 순종했지,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순종하지 않았 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너무나 사랑해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 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으로 다스리지 독재적인 폭정으 로 다스리지 않는다. 그 사랑 때문에 교회도 그리스도께 사랑으로 순 종한다. 이처럼 남자들은 그리고 남편들은 권세를 사용할 때 사랑 안 에서 사용해야 한다. 그들에게 그런 권위가 주어진 것은 남자들 또는 남편들이 여자들 또는 아내들보다 더 가치가 있거나 더 능력이 있어 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지혜로운 디자인과 사랑으로 인한 것이 다. 그러한 사랑 때문에 여자들은 사랑으로 남자 또는 남편의 권위에

5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순종하는 것이다.

중요함의 상징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권위와 순종의 원리를 적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 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 니라” (고전 11:4~6)

여기서 바울은 믿는 사람들의 활동들 중에 주님 앞에서 은밀히 하 는 활동들과 그 외에 분명한 증거가 필요할 때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 으로 해야 하는 활동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기도’ 는하 나님께 말하되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이 며,‘예언’ 은 사람들에게 말하되 하나님에 관해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는 수직적인 관계(인간과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사람과 사람) 관계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믿는 자들이 섬기는 사역의 가장 주된 대표적인 영역들이다.

55 GTY.org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 5절에서 여자들이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 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교회 전체 성도들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여자들이 가르치고, 설교하고, 지도력을 발휘 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여자들이 대중 앞에서 성경말 씀을 읽거나 간증을 하는 것을 제한하는 교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바울은 교회의 공적인 예배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교회가 아닌 다른 장소들에서 기도하거나 또는 예언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14장 34절과 디모데후서 2장 12절 에 나오는 명확한 지시들과도 일치한다. 성경해설자 그로사이드(F. W. Grosheid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언자들의 일이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렇다 고 해서 예언자들이 반드시 교회 내에서만 예언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성경은 다른 가능성들을 말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 21장 11절이다. 사도행전 21장 11절에 보면 아가보가 전체 성도들이 모인 곳에서 예언을 했 다고 되어 있지는 않다. 따라서 11장에서 바울이 (여자들이) 대중 앞에서 기도와 예언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기보다 성도들의 다른 모 임들에서 그렇게 하도록 말했다는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신약은 공공의 장소에서 여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는 것, 하물며 남자에게 전도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여자들이 지도자가 아닌 입장에서 믿는 자들 또

5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는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또 자녀들 을 가르치는 것과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는 것도 금지하지 않는다(딛 2:3~4, 딤전 5:16). 여자들도 빌립의 네 명의 딸들처럼 예언의 은 사를 받을 수도 있다(행 21:9).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들이 있는 교회 모임에서는 예언을 해서는 안 된다. 여자들은 하나님의 계시하는 경계 안에서, 그리고 순종하는 가운 데 기도나 예언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명 령에 대해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고 반발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 은 매우 중요하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기도하거나 예언을 할 때 항상 남자와 여자 사이에 적절한 선을 유지하면서 해야 한다. 모든 남자들 은 주님께 또는 주님을 위해 말할 때 남자로서 말해야 하며, 모든 여 자들은 주님께 또는 주님을 위해 말할 때 여자로서 말해야 한다. 하 나님은 남녀 구분과 남녀 역할이 모호해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것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 4~6절에서 문화적인 예를 제시 했을 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남자가 기도할 때 머리에 무 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 이라 고 말했다.“머리에 무엇을 쓰고” 라는 말에는“머리(의 자리)에서 물 러나는”의미가 있으며, 그것은 주로 수건을 의미한다. 고린도 성도 들 중에 남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것이지 만 여자에게는 그것이 적절한 것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 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고린도 사회에서 남자들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기도하거나 또는 예언하는 것은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되어 있었던 여자들에 대

57 GTY.org

한 권위를 표시했다. 결과적으로 남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적 절한 남녀관계를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에 남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 는 것은 수치였다. 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바울 시대에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많은 상징들이 사용되었는데, 특 히 아내가 남편에 대해 순종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수많은 상 징들이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대개는 머리에 수건을 쓰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고린도의 문화는 그리스 로마 세계 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상징으로서 수건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오늘날 많은 중동 국가들에서 결혼한 여자들이 머리에 차도르(두건)를 쓰는 이유는 자기의 아름다 움과 매력을 남편에게만 바치며 다른 남자들에게는 보이지 않겠다는 표시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1세기 고린도 문화에서는 사역을 섬길 때나 또는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남편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헌신과 순종을 나타내 보이기 위 한 방법이었다. 고린도 교회의 어떤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기도하거 나 예언을 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페미니즘 운동이 고린도교회의 일부 여자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여자들은 저항 과 독립의 표시로 머리에 수건을 써야 마땅한 때에 그렇게 하기를 거 부했다. 사실 바울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했던 여자를“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다” (5절)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창녀 또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만이 머리를 밀었다. 그리스도인

5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여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그런 방식으로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사실 을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오늘날 믿는 여자들 중에 외모를 아 주 세속적으로 하고 다니는 여자들을 떠올려보면 상상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 또는 안 쓰는 것 자체와 관련해 서 옳고 그른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역할들에 대해 반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고린도교회 여자들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 지 않고 기도하고 예언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반발했다 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의 초점은 여자들이 남자들에 게 순종하는 것에 대한 원리였지 그런 순종의 상징이나 표시를 하느 냐 안 하느냐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고린도 사회에서 순종을 표시하는 관습 적인 상징이었던 반면, 남자가 머리라는 것은 관습이 아니라 하나님 이 세우신 명령과 창조질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순종의 상징이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 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 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59 GTY.org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 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 라” (고전 11:7~10)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자는 도덕적, 정신적, 영적으 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남자에게 주권을 행 사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영역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남자는 특히 하나님의 형상 중에서도 다스리는 자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지 만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다(창 2:7). 그리고 이브는 아담의 일부를 취하여 나중에 창조되었다(창 2:21~22). 이처럼 남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통치권과 권위를 부여받았고, 그것 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다. 창세기 3장 16절을 보면, 사람의 타 락 이후 남자의 통치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 으로 하나님을 떠난 남자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순종의 대상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반면“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다.”남자가 하나님의 권세와 뜻을 더 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듯이 여자는 남자의 권위를 더욱 분명 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가 없을 때는 남자를 대신하여 다스리는 자가 된다. 그녀는 남자를 대신하여 다스리거나 또는 남자의 뜻을 수행한다. 마치 남자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청지기 로서 다스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대신 수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자 도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지만 남자처럼 직접 하나

6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님의 영광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직접적인 영광이며 남자에게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바울의 핵심 은 남자는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을 창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 보여주는 존재인 반면, 여자는 남자 비슷한 피조물을 창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창 2:21~22). 구원 받고 참 만족을 누리는 은혜에 있어서는 여자도 남자만큼 하 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 상을 따라 지음 받았고, 그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회복된 다. 우리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게 될 때 여자들도 남 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처럼 될 것이다(고전 13:12). 그러나 이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에서 여자의 역할은 하나님이 통치권을 부 여받은 남자의 지시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 진리를 좀 더 방어하기 위해“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 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고전 11:8)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가 아담으로부터 창조되기 전에 먼저 아담이 지음을 받았고 이 땅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받았다. 아담은 여자에게 이름을 지어주었 다.“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창 2:23, 딤 전 2:11~13 참조). 여자는 남자에게서 지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남자를 위해 지음 받았다.“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 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9). 여자가 남자보다 지적 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기능적으로 열등한 것은 아니다. 그러

61 GTY.org

나 여자는 남자와는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여자의 역할은 남자의 리더십, 보호, 돌봄에 따르는 것이며“남자를 위한 돕는 배필” (창 2:20)이 되어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장 10절에서 바울은 자기가 인용했던 지역관습에 근거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여기서 바울은 여자 들의 머리의 수건을“권위의 상징” 으로 보고 있으며, 그것은“권위” 또는“정당한 힘” 을 의미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여자의 머리를 수건으로 덮는 것은 그녀가 순종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 은 그녀에게 기도할 그리고 예배할 권세와 권리를 부여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왜 바울은 여자들에게“천사들 때문에”이러한 상 징인 수건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바울이 말한“천사들” 은거 룩한 천사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이며, 그 천사 들의 가장 큰 특징은 즉각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바치는 것이다. 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은 엄청난 힘을 가진 피조 물이지만 그런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피 조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천사들은 창조질서에 순종하는 가 장 좋은 예이다. 이들 메신저들은 교회를 보호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수호자들이 며, 영구적으로 교회를 지키고 있다. 그러므로 여자가 문화적으로 순 종의 표시를 갖추는 것이 합당하며 그렇게 해서 모든 피조물들 중에 가장 순종적인 천사들의 마음을 거슬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독특하게 만드신 것을 직접 목

6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격한 자들로서 창조 때부터 존재했기 때문에(욥 38:7) 천사들은 창 조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 힘들어 한다.

균형 있는 진리 만약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거나 저버리도록 남자들을 설 득할 수 없다면, 분명히 말씀을 잘못 해석하도록 하거나 또는 하나님 이 의도하지 않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말씀을 적용하도록 유혹할 것 이다. 따라서 바울은 남자가 여자들에 대한 그들의 권위를 남용하거 나 오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자들에게 남녀가 평등한 것과 상호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 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 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고전 11:11~12).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용되도록 부여되었다. 남자는 여자와 동일한 피조물로서 타고날 때부터 여자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며, 주어진 권위를 독재적으로 또 는 이기적으로 사용할 권리가 없다. 남자의 남성우월주의는 페미니 즘만큼이나 비성경적이다. 둘 다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것들이 다. 우리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배웠던 것처럼 모든 믿는 자들 은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주님 안에 있으며 주님 안에서 동등하다.

63 GTY.org

그들의 역할은 기능적인 면에서 다를 뿐이지 영성 또는 중요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고 말했던 것이다. 남 자들과 여자들은 모든 면에서 상호 보완의 관계이다. 그러나 특히 주 님의 일을 할 때 그들은 함께 거룩한 팀을 이루고 일해야 한다. 그들 은 서로를 섬기며 함께 힘을 합쳐 섬기는 일을 해야 한다. 남자의 권 위가 남자를 여자와 상관없는 독립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며, 여자의 순종이 그녀를 무조건 의존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둘 중에 아무도 상대방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으며, 그들은 서로를 의 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남자에게서 첫 여자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그 때부터 모든 남자들은 여자를 통해 태어났다(고전 11:12).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롭고 은혜로운 조화이며 균형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선생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이 남자로서 형성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다. 자녀들을 낳고, 양육하 는 역할은 여자들을 남자들보다 신분이 낮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게 해준다(딤전 2:15). 여자들은 어머니들로서 미래의 세대가 될 남 자들을 훈련하고 개발해주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 다. 이제 막 세상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남자는 독특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어머니를 의지하면서 모든 인격과 성격 등이 형성된다. 그리고 성인 시기 전체에 걸쳐서도 결혼을 했건, 혼 자이건 남자는 본인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자들을 많이 의지 하며 살아간다. 결혼을 한 남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아내를 사 랑으로 기꺼이 의지하지 않는 한 주님에 대해 신실할 수 없다. 주님

6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의 일을 할 때 남자들은 하나님이 교회 내에서 책임을 맡기신 여자들 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신실할 수 없다. 그들은 완벽한 보완의 관계이다. 한 쪽은 머리, 지도자, 공급자이고, 다른 한 쪽은 도와주는 자, 지지자, 동료이다.

자연의 질서를 반영하기 권위와 순종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창조 의 세계에서도 볼 수 있다. 남자에 대한 순종의 상징으로 여자의 머 리에 수건을 쓰는 문화적 관습은 자연의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바 로 그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 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 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고전 11:14~15)고 말하고 있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분명하게 서로 다른 생리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머리카락이 자라는 과정이다. 머 리카락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자란다. 형성, 성장, 멈춤, 그리고 난 후에는 뽑혀나간다. 남자의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머리카락의 성장 사이클의 속도를 촉진시킨다. 따라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세 번째 단계에 더 빨리 도달한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토로겐은 각각의 단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여자들의 머리카락이 남자

65 GTY.org

들보다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자란다. 그래서 여자들은 세 번째 단계 까지 가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머리가 거의 없다. 이러한 생 리기능은 세계의 대부분의 문화들에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머리카 락을 길게 기른다는 것을 반영해주고 있다. 아름다운 머리는 여자의“영광” 이며 여자의 부드러움과 온유함을 나타내 보여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고린도에서 여자들이 썼던 수건은 남자에 대한 순종의 상징이었으며 또 하나님의 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여자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여자의 헤어스타일에서 나타나는 분명한 여성성과 자기가 속한 사회적 관습에 민감한 것에 서 그 영광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자연과 인간사회의 관습은 남자에게 권위의 역할이 주어진 것과 여자에게 순종의 역할이 주어 졌다는 원리를 반영해주고 있으며, 하나님이 주신 그 원리는 세상 어 디를 가나 거의 대부분 볼 수 있다. 물론 수건이나 모자를 쓰는 것이 순종의 상징이 아닌 문화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굳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여성들 의 머리카락과 옷은 분명하게 여성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하나님 이 생리기능 면에서나 역할 면에서나 관계 면에서 남자와 여자를 분 명하게 구분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신분을 혼동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남자들이 남자답기를 원하신다. 남자답 다는 말은 책임감이 있고 사랑으로 권위를 행사할 줄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자들이 여자답기를 원하신다. 여자답다는 말은 책임감 있고 또 사랑으로 순종할 줄 안다는 것이다. 바울이 문화와 관련시켜서 설명했던 가르침의 핵심은 우리가 사회

6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가 요구하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상징에 맞추어 가야 한다는 것 이다(그런 상징들이 성경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러한 상징 들은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여자가 여성을 상징하는 것들을 거부하는지는 또는 남자가 유약하거나 남성다움의 상징을 거부하는 지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예배장소에서 성별에 따른 역할과 기능을 혼란하게 해서는 절대 로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하 나님이 동성애와 여장남자들을“미워하시는”이유이다). 그리고 이 것은 예배를 섬기는 천사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고전 11:10). 남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눈에 드러나는 방식으로 인식되 어야 한다(예배실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자와 예배실 뒤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성별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여성에게 있어서 이 것은 남자가 전체 회중을 통치하는 역할을 맡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교회에서 자기에게 주 어진 역할을 다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권위에 순종한다는 것을 인정 하고 받아들인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디자인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디자인을 무시하려고 하거나 하나님의 디 자인을 자기들의 주장에 맞게 수정하려고 했다. 그 후 거의 모든 세 대에 걸쳐 거의 모든 교회들에서 그와 동일한 일들이 일어났다. 바울 은 남녀에 대한 교훈을 줄 때“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

67 GTY.org

라도” (고전 11:16)라고 말함으로서 그의 가르침에 반대할 자들이 있 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기가 했던“여자는 남 자에게 순종해야 한다” 는 말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 (고전 11:3), 여성사회의 감성(고전 11:4~6), 창조 질서와 목적, 천 사들에 대한 고려, 자연적인 생리현상에 따른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 기 때문이다(고전 11:13~15).

6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2부 하나님이디자인하신결혼과가정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결혼 직장에서 탁월한 아내 또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GTY.org

God’s complementary Roles for men & women

3장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결혼

1992년 대통령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을 때 전 미국 부통령 댄 퀘일(Dan Quayle)이 미혼모를 지지하는 당시 굉장히 인기 있었던 텔레비전 프로를 만든 프로듀서를 고발함으로서 미국 내 최고 뉴스 거리가 되었다. 그가 했던 말들로 말미암아“가정의 가치” 가 전 국민 의 관심거리가 되었고, 어디에서나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으며, 미 국 가정의 상태에 대한 많은 분석이 이루어졌다. 한 가지 분명한 것 은 남편이 혼자서 식구를 먹여 살리고 아내는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 며 아이들을 키우는 전통적인 가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 부간의 불신, 성적인 타락, 동성애, 낙태, 여성의 성적인 자유풍조, 성적인 비행, 성무차별 혁명(sexual revolution, 여권운동이나 성적 자유풍조로 나타남)이 전부 전통적인 가정 형태가 사라지는데 기여

7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했다. 지난 25년에 걸쳐 일부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결혼과 가정 이 크게 바뀌거나, 아니면 근본적으로 결혼이나 가정이라는 제도 자 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소위 계몽된”생각은 결혼 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데 실패했으며, 남자들과 여자들이 생산 적이고 만족스런 삶을 살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이 더 이상 필 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데 실패하지 않았다. 단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 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뿐이며, 결혼을 한 사람들 중에 절반은 성공적 인 결혼생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고 하기보다 포기하고 결혼생 활을 접는다. 세속의 사상가들도 20년 전부터 이러한 사회적 경향을 관찰하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관습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포드 자동차나 제너럴 모터스 자동차에서 생산해낸 자동차들 중에 50~75%가 생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초기 단계에서 그 수명이 다해버린다면 과감한 조 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회 관습들을 다룰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성공률이 50% 이 하인)을 대체할 방법을 찾기 위해 장님처럼 더듬거린다. 단지 사람 에 따라 앞이 캄캄한 상태가 좀 더 심하거나 좀 덜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동거하는 것, 깊이 사귀는 것, 유 아원 종일반과 초등학생 방과 후 교실에 아이들을 맡기는 것, 결혼

71 GTY.org

과 이혼을 반복하는 것, 여권신장을 위한 여성해방운동, 죄의식을 주지 않는 새로운 이혼법, 이 모든 것들이 미래에 남자 여자 간의 관 계가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를 알지 못해 우리를 소경처럼 더듬거리 게 만드는 것들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예견하고 대처하려면 남자인 나도 현재보다 더 대담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실제로 사회의 표면에 떠오른 결혼의 형태는 과거 실패한 사회적 인 실험들에게 오히려 감사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악화된 형태의 결 혼이었다. 1992년 6월 8일호 뉴스위크 잡지에서 조 클레인(Joe Klein)은 이러한 슬픈 사실들 중 최근의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미국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의식적으로든 아니든)“오지 (Ozzie)와 헤리에트(Harriet,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정의 모 델)(아니면 핵가족의 행복한 이미지)에 반대되는 것으로 여기고, 뭔 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오늘날 미국 전체 가정들 중에 오직 1/3만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두 가정 중에 한 가정이 이혼하 는 이혼율이 계속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남녀가 결혼하지 않은 상 태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이 1970년대의 세 배에 달하고 있다. 이 수 치는“선진국들”중에서 최고 수치이다. 가정과 관련된 구역질나게 혐오스러운 갖가지 기능장애들이 아동폭행, 범죄, 신체장애, 복지기 금의존, 그 외에 여러 가지 병리현상들로 범람하는 오늘날의 흐름들

7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댄 퀘일(Dan Quayle)이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것 은 지나친 선전광고의 범람과 그로인한 허영과 낭비가 베푸는 삶보 다 더 중요하며, 상대편을 소유하는 것이 상대편의 일부가 되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마치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소비주의적 향연이 마치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국민으 로서 우리가 서로 공유하는 가장 심오한 의식처럼 보일 정도다. 미국을 완전히 잠식한 재앙은 미국 가정들이 상호교류가 줄어들 면서 더 조용해졌고, 더 멀리 서로 흩어져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적인 혁명으로 인해 생긴 상처들에 관한 보고 자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한 자료들은 신뢰할만한 것이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에서 일하 고 있는 학자인 칼 진스마이스터(Karl Zinsmeister)는“그 데이터 를 보면 정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혼, 편부 또는 편모가정들, 계부 또는 계모 가정들 중에 건강한 가정은 하나도 없다. 과거 어느 때에도, 또 어느 곳에서도 이런 선례를 찾아볼 수 없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 수치는 가히 압도적이다. 붕괴된 가정들과 모든 사회문제들 사이에는 아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칼 진스마이스터가 수집한 연 구에 따르면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80% 이상이 파괴된 가정의 청소년들이다. 자살을 하는 십대 청소년들의 4명 중 3명은“부모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다.”1988년 더글라스 스미스(Douglas A. Smith)와 로저 자로라(G. Roger Jaroura)의

73 GTY.org

연구는 십대 자녀를 둔 편부모 가정의 비율은 폭력범죄율, 강력범죄 율과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이것이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면 앞으로 20년 동안 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나빠질지 과연 상 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20세기가 다가오기 한 참 전에 사도 바울은 앞으로 세상이 다음과 같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 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 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 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 3:1~4, 13)

바울이 말한 마지막 날들의 특징들 중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사 람들이 심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 리고 그것은 실제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특징들이다. 즐거움 거리 를 찾는 우리의 사회적 경향은 사람들을 온갖 종류의 환상에 빠지게 만든다. 완벽한 로맨스와 성적인 관계에 대한 환상, 완벽한 라이프스 타일, 완벽한 몸매,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것들은 결국 우리 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다.

7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왜냐하면 실제 현실은 우리의 기대를 따라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들에서 발생된 최악의 부산물 낙진이 결혼관계에 떨어졌 다. 남녀 두 사람이 서로의 기대치를 따라갈 수 없을 때 그들은 결혼 관계 외의 남녀 간의 이차적인 관계, 이차적인 경험, 이차적인 것들 을 기대하며 헛된 만족을 꿈꾸고 찾는다. 그러나 그 길은 자기 파괴 와 허무의 길이다. 바울이 언급한 또 다른 두 가지의 범죄들은 가정을 직접 붕괴시킨 다.“부모를 거역하며” “무정하며” 라는 말은“가족 간의 사랑이 없 는” 이라는 뜻이다. 사랑이 결핍된 가정과 불순종은 권위에 대한 적절 한 관점과 존경심이 결핍된 자녀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청소년비행, 자살, 청소년 정신질환자의 상승에서 그 결과를 보고 있다.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녀 의 관계, 형제들과 자매들의 관계를 약화시킨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 단위이기 때문에 가정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 회는 그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가정이 파괴되면 단계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방 향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바로 지금이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 선 포하는 것을 선포하고 또 그것을 삶으로 보여줘야 할 때이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의미와 행복과 만 족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다. 우리가 그 기준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려면 우리는 반드시 달라져 야만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둡고 부패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도 록 부르셨다. 우리의 책임은 삶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75 GTY.org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고, 새로 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것이다” (엡 4:1, 24). 우리는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없고, 세상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으며,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말할 수 없고, 세상이 목표를 세우는 것처럼 세울 수 없다. 우 리는 반드시 세상과는 달라야 한다. 인간사회의 궁극적인 희망은 잃 어버린바 된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모습을 보고 예수 그리스 도에게로 나오는 것이다. 사도 바울과 에베소교회는 이교도적인 의례와 전통에 젖어있는 사 회문화에 직면했다. 그리스에서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은 특히 힘들 었다. 남자들이 첩을 몇 명씩 두는 것이 보통이었고, 아내의 역할은 합법적인 자식을 낳아주는 것과 집을 지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창녀와 창남이 만연해 있었다. 남편들은 대개 첩들과 창녀들 을 대상으로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했고, 반면 아내들은 남편 들의 권유로 남자 노예들이나 여자 노예들을 대상으로 성적인 만족 을 채울 때가 많았다. 몸을 파는 것, 동성애, 그리고 그 외에 난잡하 고 변태적인 성생활로 말미암아 어린이 매춘이 성행했다. 로마사회 도 그에 못지않게 타락했다. 결혼관계는 법적으로 인정된 매춘보다 약간 나은 정도였으며 이혼도 쉽게 이루어졌다. 그러한 비도덕적인 세속적 환경에서 바울은 에베소 신자들에게 하 나님의 본래의 신성하고 고상한 결혼의 기준을 따라 살도록 권하고 있다.“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7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 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3~25).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거룩해야 하며, 확고해야 하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같아야 한다. 그러한 관계가 실제 삶에 이루어지려면 그리스도가 부부관계의 중 심이 되어야 한다. 결혼원리들이 구속받지 않은 자들에게도 어느 정 도 유익은 줄 수 있지만 그러나 제한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결혼원리의 힘과 잠 재력을 충분히 알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때만이 서로에게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능력 있 고 효율성이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엡 5:22). 가정의 구성원들이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모습이 될 때만이(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 롬 8:29) 가정 전체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모습이 될 수 있다.

아내들을 위한 거룩한 지시들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태도와 책임에 대해 다루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많은 가정들에서 에베소서 5장 22~23절을 가지고 아내들을 공격하는데 사용할 때가 많다. 에베소 서 2장 22절의“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 라” 를 액자에 걸어놓는 가정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가정들에서는 남

77 GTY.org

편들이 아내에게“순종하시오!” 라고 소리치면서 아내를 꼼짝 못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순종하라” 는 이 동사가 부드럽게 유화 된 표현이라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 말이 원 래 그리스 성경 원문에는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말의 의미는 21 절 말씀에 함축되어 있다. 바울은 남녀 모두에게 그리스도를 경외함 으로 서로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했고, 그리고 난 후에 아내들이 남편 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그 첫 번째 예로 들고 있다. 우리는 앞 장에서“순종하는 것” 이 사람이 자기 권리를 상대방에 게 양도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것은 누가 누구보다 더 중요하거나 가 치 있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단지 기꺼이 순종을 하려 는 마음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아내들에게 있어서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의 개인적인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특별히 지도자로서 세움 받은 다른 믿는 자들의 지도력을 따르는 것처럼 이 경우에는 남편이 그런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아내들에게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또는 종들 이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처럼(엡 6:1, 5) 남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남편들은 아내들을 노예처럼 대해서는 안 되 며, 함부로 명령조로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 된다. 남편들은 아내 를 자기와 동등하게 여겨야 하며, 하나님이 남편에게 아내를 돌보고, 보호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책임을 맡기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아내도 남편에게 기꺼이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책 임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부부가 얼마나 친밀하고 생동감 있는 관계

7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를 맺고 있는지를 반영해줄 뿐만 아니라 아내가 남편에 대해 주인의 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반영해준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소유되어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서로에게 순종하는 것이 고린도전서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그 서신에서 바울은 부부 사이에 육체적인 관계와 책임들도 일방적인 것이 되어 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 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 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 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엡 7:3~4). 더도 덜도 아니고 남편이 아내를 소유한 만큼 아내도 남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남 편은 아내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아내도 남편보다 열등하지 않다. 다 만 그들은 서로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2절과 일맥상통하는 말로서“아내들아 남 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골 3:18)는 말을 했 다. 바울은 빌레몬서 8장에서도 법적으로 서로 묶여있다는 뜻으로 ‘마땅하니라’ 는 그리스어‘aneko’ 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가 다른 사람에게 순종의 자세를 취할 때 그것이 상호적인 순종이든 지 또는 기능적인 권위이든지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남편에게 적절하게 순종하는 아내는 결국 주님께 순종하는 것 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남편은 아 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다(엡 5:23). 명령을 내리는 것은 머리이지 몸

79 GTY.org

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 몸이 머리에 적절하게 반응할 때 모든 기능 이 잘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몸이 머리에 제대로 반응해주지 않는다면 절름발이가 되거나, 마비가 되거나, 경련이 일어나거나 할 것이다. 이처럼 남편의 지시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아내는 가정 에 영적으로 심각한 기능장애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꺼이 사랑으로 남편의 지시에 반응하는 아내는 하나님, 남편, 가정, 교회, 그리고 그녀 자신을 영화롭게 한다. 이 외에도 아내는 그녀를 바라보 는 이 세상의 많은 시선들 앞에서 주님의 아름다운 증거자가 될 수 있다. 아내가 순종할 때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요구된다.“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순종은 바람직하지 않다. 명확 한 도덕적인 분별력, 지혜, 재빠른 위트와 판단력, 바람직한 직관력 을 가진 아내는 그 영향력이 무한하며, 아주 훌륭한 상담자가 될 수 있다.”그것은 남편을 돕는 자이자 보완해주는 자로 창조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다(창 2:18). 그리스도는“몸의 구주시며” (엡 5:23), 교회의 완전한 공급자이 시며, 보호자이시며, 머리이시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내를 포함한 가 정 전체의 공급자요 보호자가 되어야 할 남편들에게 가장 완벽한 역 할모델이다. 아내들은 남편과 협력해서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 하고 가족을 보호하는 협동공급자요, 협동보호자이다.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내는 남편 의 공급과 보호 아래서 행복하고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 님이 만드신 부부의 모습이다. 우리가 그것을 따를 때 더 행복한 가

8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정, 더 신앙심 있는 자녀들을 얻을 수 있고 또 이혼가정도 소수에 불 과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존중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거나 모독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24절은 아내가 남편에게“범사에”순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남편이 성경에 어 긋나는 것을 하라고 할 때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해 야 한다(행 5:29 참조). 그런 아내가 되려고 할 때 중요한 것은“성 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며” (엡 5:18),“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거하도록 하는 것이다” (골 3:16). 엘리자베스 엘리어트(Elisabeth Elliot)는『여성성의 정수』 (The Essence of Femininity)라는 그녀의 책에서 하나님이 아내들에게 두신 이상적인 모습을 따르는 것에 대해 아래와 같이 요약해주고 있 다.

하나님에 대해 매우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반응했던 이브 와는 달리 성모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 앞에서 앞으로 자기가 겪을 수도 있는 위험, 잃을 수도 있는 것들, 자기 자신의 미래를 주저 없 이 받아들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그리고 조건 없이 내어 주는 것이었다.“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1:38). 나는 이것이 진정한 여성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의 권리나 주장을 내려놓는 것이다. 결혼을 앞둔 신부를 생각해보라. 그녀는 결혼을 통해 자기의 독 립성, 이름, 의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신랑에게 내어주고 있다. 그

81 GTY.org

온유하고 조용한 영성을 사도 베드로는“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 이니라” 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리아 안에 있는 진정한 여 성성이었다.

남편들을 위한 거룩한 지시들 바울은 남편의 리더십과 아내의 순종에 대해 거룩한 지침을 주고 난 후에, 사랑으로 아내에게 순종해야 하는 남편의 의무를 그 다음에 설명하고 있다.“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 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5). 인간 으로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완벽하고 거룩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형상 과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할 수 있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그런 방식으로 남 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며, 그것은 네 가지 방법으로 분명하게 이루 어질 수 있다.

희생적인 사랑

그리스도는“목숨을 내어주기까지”교회를 사랑하셨다. 로마서 5 장 7~8절은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깊이에 대해 말해주 고 있다.“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8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원수, 10절)되었을 때에 그 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우리 중에 구원, 용서,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가치 없는 자들을 위해 가장 위대한 희생을 베풀어주셨다. 우리를 향 한 그리스도의 희생과 관련된 대조적인 상황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 을 정도다.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가장 사악한 모든 인간들을 위해, 가장 위대하고 장엄한 희생을 치르셨다는 것이 다. 남편들이여, 아내의 문제점들을 열거하면서 아내 사랑하기가 얼 마나 힘든지를 말하려고 하지 말라. 당신도 아내와 똑같은 죄인이며 하나도 나을 것이 없다.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셨다. 물론 당신의 아내는 죄인이다. 그러나 그런 당신도 죄인이다. 우리는 이러 한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결혼생활이 어렵다 고 말하는 남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반면 나는 자기가 아내를 너무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어떤 남 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는지” 에 대한 질문을 받고,“아니오, 그 정도는 아니겠 죠”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친구가“그렇다면, 아내를 더 사랑해주 세요” 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은 지극히 높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상은 대상 중심적 사랑을 한다. 사랑이 상대 방의 형태, 인격, 특징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사랑은 배타적이며 지 나치게 선택적인 경향이 있고 죄악 되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그리스

83 GTY.org

도인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약 2:1~13 참조). 그런 사람들은 파트너를 구할 때 외모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성격 이 어떤지, 유머나 위트가 있는지, 명성이 있는지, 또는 그 외에 긍정 적인 다른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러나 그런 사랑 은 변하기 쉽다. 그 이유는 마음에 사랑을 불러일으켰던 때의 특징들 이 사라지거나, 그런 특징들이 더 이상 마음을 끌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부부관계를 그런 종류의 사랑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르다. 첫째, 하나님은“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 (롬 2:11). 둘째, 사랑의 대상이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기 를 기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창조물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 성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 고 말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대상이 가진 특징 때문에 그 대 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적어도 그것은 이 세상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미워했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했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 력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런 사랑을 하라고 명령할 수가 있다. 그것은 사랑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신중한 선택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담긴 행동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을 담은 행동이다. 그러므로 남편들이여, 성경은 아내가 사랑받을만 하기 때문에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받을만하지 않을 때도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사랑은 끌리고 끌리지 않고의 문제 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8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당신의 마음을 더 이상 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먹 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당신의 마 음을 끄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린 것이 아니 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인지에 온전히 달려있다. 그것은 아내가 남편의 인정을 받을만한 아름다움, 친절함, 온유함, 그 외에 다른 긍정적인 특징들이나 미덕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 는 아니다. 그런 특징들이 풍성한 축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것들이 부부관계를 묶어주는 핵심은 아니라는 것이 다. 혹시 아내에게 있었던 남편의 마음을 끄는 특징들과 미덕들이 전 부 없어지더라도 남편은 여전히 아내를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 실 마음의 상처와 치유 면에서도 희생적인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한 쪽 은 남편보다 아내이기 때문에 남편의 의무가 더 크다. 그것이 그리스 도가 교회를 향해 품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모든 크리스천 남편들은 그런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바에 따르면,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는 행동 에 훨씬 가깝다(요 13:3~34, 고전 13:4~7). 세상은“감정이 식으 면 사랑도 끝나죠”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사랑’ 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것은 성경적인 사랑이 아니다. 거룩한 사 랑은 이기적이지 않는, 희생적인 행동이다. 그런 희생적인 사랑을 할 때 우리는 계산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 해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상대방이 수용하든지, 거절하든지, 감사하든지, 화를 내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상대방의 필

85 GTY.org

요를 채우기 위해 계속 사랑을 부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그의 아내를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목숨까지도 말이다. 대부 분의 남편들이 말로는 이것에 동의하겠지만(왜냐하면 남편들이 처한 상황이 대부분 목숨을 포기할 상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 나 사실 아내를 위한 희생이 말은 쉽지만 행동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편들이여, 아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리 고 아내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당신들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의견, 취향, 편한 것을 뒷전으로 미루라. 그럴 때 당신은 아내를 위해 진정으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 랑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의미를 상기하기 위해 출처가 알려지지 않은 아래의 글을 내 책상에 붙여놓았다.

당신이 잊히거나 또는 소홀히 대우받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무시 받아서 모욕감이 들고 상처를 받을 때 우리를 위해 자기를 버리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라. 당신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면서 오히려 마음에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당신의 선한 의 도가 오해받고 비난받을 때, 당신의 소망이 꺾일 때, 당신의 충고가 무시 받을 때, 당신의 의견이 놀림을 당할 때, 분을 내지 않고 또 자 기를 방어하지도 않고 오히려 인내와 사랑으로 침묵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죽는 것이다. 예수님이 영적인 무질서, 나쁜 행실, 골칫거리를 사랑과 인내로 참으신 것처럼, 허영, 어리석음, 사치, 영

8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적인 무감각을 참으신 것처럼 그런 것들을 참는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죽는 것이다. 음식, 어떤 제안, 의복, 분위기, 사회, 태 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이의제기 등에 대해 불만하지 않고 동 의해줄 때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죽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당신 자신을 드려내려고 하지 않고, 당신이 했던 선한 행동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고, 조언을 들을 때 듣기 거북하다는 표시를 하지 않고, 자기 를 들어내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랄 때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죽 는 것이다. 형제가 잘 될 때, 그리고 그의 필요가 채워질 때 성령 안 에서 그의 잘됨을 인해 진정으로 기뻐하고, 그를 시기하지도 말고, 하나님께‘왜?’ 라고 묻지도 말라. 당신의 필요가 훨씬 더 크고 당신 이 훨씬 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 에 대해 죽는 것이다. 혹시 당신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부터 충고를 받거나 질책을 받더라도 그런 말들을 받아들일 때 내적으로나 외적 으로나 하나님께 겸손히 순종할 수 있으며, 당신의 마음에 반발심이 나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죽는 것 이다.

바울은 사랑은“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고전 13:5)라고 말하고 있다. 남편들이여,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 지만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 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보다 는 당신이 아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라. 아내의 필 요와 관심을 당신 자신의 필요와 관심보다 먼저 앞세우고 아내를 위

87 GTY.org

해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라(빌 2:3~4).

순수한 사랑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할 때 이런 목표를 두고 사랑하셨다.“이 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엡 5:26~27). 이것은 순수한 사랑이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는 그 사람의 순수성을 지켜주 는 것이 당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더럽 히거나 불결하게 하면서 사랑할 수는 없다.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은 어떤 죄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는 도덕적인 죄 또는 영적인 죄가 다 포함된다. 그리 고 그리스도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단순히 정죄만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그런 것들로부터 깨끗하게 해주시려고 한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그리스도는“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요 일 1:9). 사랑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사랑 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악한 것이나 해로운 것에 이끌림 받거나 그 런 것으로 인해 타락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당신이 아내와 결 혼했다는 것은 그녀를 세상 그리고 그녀의 과거의 삶으로부터 이끌

8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어내서 그녀를 순결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녀가 과거 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말이다. 그녀가 어떤 것에 관여했든지, 어떤 죄악된 삶에 푹 빠져서 살았든지, 결혼은 그녀를 그런 삶에서 멀어지 게 하며 그녀를 순결하게 해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녀가 거룩함, 미덕, 순결함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매 일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더럽혀지거나 불결하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결하지 않는 것들이 들어올 통로가 될 만한 것들에는 빠지지 않도록 그녀를 지켜주고 또 그녀가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 이 알고 있는 것으로서 아내가 민감하게 느끼는 것에 대해 논쟁을 유 도함으로서 아내가 죄를 짓도록 하지 말라. 더 나쁜 상황은 비서나 이웃집 여자와 시시덕거리거나 연애하는 남편이다. 만약 당신이 그 렇게 행동한다면 아내는 당신에게 거부당했다고 느끼거나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도 당신과 똑같이 행동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행동은 당신 자신의 도덕적인 순수성을 망칠 뿐만 아 니라 아내의 도덕성마저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 아내가 빠질 수 있는 경솔함과 부도덕에 대한 책임은 당신에게도 있 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결혼할 신부가 강으로 가서 강물에 폭 잠기는 의식을 거행했었다. 그것은 그녀가 과거에 지었던 모든 불결한 것에 서 씻음을 받는 의식이었다. 그런 의식은 그녀가 도덕적으로 또는 사 회적으로 결함이나 흠이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었 다. 따라서 그녀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순결해진 것이다. 그러나 믿는

89 GTY.org

자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깨끗함을 받는 것은 단지 의례적으로나 또 는 상징적으로 순결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순결해지는 것이며 완벽하게 깨끗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는“곧 물로 씻어 말씀 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심으로서” (엡 5:26~27) 교회를 깨끗하게 하셨다. 구원의 은혜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됨 으로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그의 사랑 안에 영원히 거 하기 위해 준비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남편이 순결, 의로움, 고결 함을 유지하도록 아내를 도와줄 때와 동일한 목적이며 동일한 사랑 안에서이다.

돌보는 사랑

거룩한 사랑의 또 다른 면은 이것이다.“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 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엡 5:28~29). 남자들이여, 우리는 자기 몸에 많은 시간을 쓴다. 우리는 외모를 열심히 가꾸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운동을 하며, 멋진 옷을 입는다. 결국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다(고전 6:19). 단연코 우리는 몸에 상 처를 주고 싶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잘 돌본다.

9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아니, 최소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당신은 몸이 필요로 하면 그 필요들을 채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아내에게도 필요들이 있 으며, 당신은 부지런히 그런 필요들을 채워주어야 한다. 우리는 건강 할 때 행복감을 느끼며 당신이 자신을 섬기고 돌보는 것처럼 아내의 필요들을 돌보고 채울 때 그 사랑의 부산물로서 행복을 누리게 될 것 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자기 의 몸을 잘 돌보고 해를 주지 않는 것처럼 아내에게도 해를 주지 않 을 것이다. 그가“자기 몸을 잘 먹이고 소중히 하고 싶어 하는 것처 럼”그는 아내를 잘 돌보고 소중히 하고 싶어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섬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내가 새 힘을 얻는 것이 필요하면 그렇게 해주라. 격려가 필요하면 격려를 해주라.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여 공급해줘야 할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 잊지 말라. 하 나님은 당신을 아내의 보호자이며 필요를 채우는 공급자로 임명하셨 다. 혹시 아내를 돌보는 책임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면 하나님 이 당신을 공급자요 보호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상기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을 도와주실 것이다. 어떤 남편들은 아내를 요리사, 아기돌보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 섹스파트너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 아내는 당신이 잘 돌보고 소중하게 해야 할 하나님이 주신 보물이다 (잠 8:22). 에베소서 5장 29절 말씀에 나오는‘보호하다’ 는 말은 ‘몸의 온기로 따뜻하게 해준다는’뜻이다. 그처럼 남편들은 아내들에

91 GTY.org

게 안전하고, 따뜻한 피난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아내를 차갑고, 힘 들고, 잔인한 세상으로 밀어내지 말라. 골로새서 3장 19절에 나오는 남편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를 이때 즈음해서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결혼 시작부터 존재했던 사랑이 결혼 내내 지속 되어야 한다. 사랑이 쓴 뿌리로 바뀌도록 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쓴 뿌리가 부부관계를 파먹고, 주로 남편들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절대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들이 주로 쓴 뿌리가 틈타는 통로였다. “괴롭게 하지 말라” 는“쓴 뿌리를 갖지 말라”또는“쓴 뿌리를 갖 는 습관을 갖지 말라” 는 말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 말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딱 한 번만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맛이 쓴 어떤 것에 대 해 말할 때였다. 아내에게 심하게 굴지 말고, 분을 내지 말며, 아내의 허물에 대한 생각들로 마음을 가득 채우지 말라. 그녀의 마음도 당신 의 허물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남자라는 자만과 분노로 아 내를 대하지 말고 인내와 사랑의 리더십으로 아내를 대하라. 이 외에 또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아래의 말들도 우리에게 도움 을 준다.

R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성품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리고 매일의 삶 을 다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외부 사람들에게 받은 긴 장과 스트레스를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풀어버릴 수가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9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사랑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인간의 행동양식 중에 정말 이상한 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상처를 줄 때가 많다는 것이다. R 여자들이 독재자 같고 비이성적인 남자들과 결혼할 수도 있는 것처럼 남자들의 경우에도 아내가 연애기간에는 아주 유순하고 사 랑이 많아 보였지만, 결혼 후에는 완전히 달라져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남 편은 분을 내거나 화를 내지 않고 아내를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 하 나님이 남자들에게“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 고 말한 것은 일부 아 내들이 심히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된 삶 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주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보여주 는 인내와 은혜이다.

위반하지 않는 사랑(결혼맹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려면 그 는 아내를 변치 않는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바울은 창세기 2장 24 절을 인용하면서 결혼한 부부가 하나 될 것과 영구적인 관계를 맺어 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 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1). 결혼에 대한 하나님 의 기준은 변하지 않았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가장 큰 장벽은 부부 중 두 사람 또는 한 사 람이“부모를 떠나는 것” 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장성해서

93 GTY.org

결혼하면 새로운 하나의 가정이 시작된다. 자녀가 결혼을 하고 나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지만 새로 탄생한 가정을 중심 으로 권위와 책임이 새롭게 형성된다. 자녀는 부모를 사랑하고 돌봐 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녀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부모가 그들 의 삶을 간섭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었기 때 문에 자녀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남편으로서 서로에게 밀착되어야 하며, 서로 단단히 결속되어야 한다. 기존에 맺고 있던 끈 중에 하나 를 끊고 새로운 끈을 맺는 것이다. 이때 두 번째 끈이 첫 번째 끈보다 더 단단해야 하며 더 영구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장벽으로서 더 파괴적인 것은 이혼이다.“이스라엘의 하 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나는 이혼하는 것과 … 미워하노라’ ” (말 2:16).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 왜냐하면 이혼은 하나 님이 어기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의 높은 이혼율은 그리스도인들 부부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 고 소위 세상 전문가들을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유혹한다. 그 러나 그런 전문가들은 문제와 상관없이 크리스천 남편들과 아내들에 게 무조건 이혼하라고 부추길 때가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배우자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즉각 이혼하는 일이 없도록 해 야 한다. 하물며 외도의 문제가 있더라도 말이다. 그리스도는 기준을 세우셨다.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을 항상 용서하시는 것처럼 남편들 과 아내들도 항상 서로를 용서해야 한다. 비록 예수님이 배우자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 간음을 하는 경우에 는 이혼을 하도록 허락했고(마 5:31~32, 19:4~10), 또 믿지 않는

9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배우자가 떠나겠다고 하면 떠나도록 하는 것을 허용했지만(고전 7:15) 하나님은 오직 죽음만이 부부사이를 갈라놓기를 바라신다. 그 리스도의 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결혼한 부부에게 바라시는 것은 갈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교 회와 하나인 것처럼 남편도 아내와 하나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해하 는 남편은 자기 자신을 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파괴하는 남편 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 훈이 있다면 바로 이 교훈일 것이다. 바울은 계속 말하고 있다.“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 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2). 왜 순종하는, 희생하는, 순결한, 돌보는 사랑을 성경에서 그렇게 강조하는가? 그 이유는 교회의 신성 함이 결혼의 신성함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결혼 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되든지, 아니면 거부하는 것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결혼의 거룩함을 바탕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 다.“그러나 너희(남편)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엡 5:33). 이 말보다 하나님이 바라는 부부의 모습을 더 잘 보여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크리스천 남편들과 아내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갈 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다스림에 따를 때, 그리고 서로에게 순종할 때 그들은 그 열매로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95 GTY.org

4장 직장에서 탁월한 아내

최근 몇 년 사이에 페미니즘과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책들이 엄청 나게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스트인 경제 학자 실비아 앤 휴레트(Sylvia Ann Hewlett)가 쓴『덜 중요한 인생: 미국의 여성해방운동의 신비』 (A Lesser Life: The Myth of Women’ s Liberation in America)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정부차 원의 공적 지원 시스템들이 부족한 것에 대해 본질적으로 탄식하고 있다. 그 책 내용 중‘비정상적인 50년대’ 라는 소제목에서 그녀는 아 래와 같이 쓰고 있다.

1983년 5월에 나는 페이스 휘틀시(Faith Whittlesey)와 백악관 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때 그녀는 공보비서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

9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었고 여자들과 어린이들에 대한 정책들을 맡고 있었다. 나는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로서 자녀가 있는 이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나의 관심 을 말했고, 정부차원의 지원 없이 자녀를 출산하고 키우는 것이 그 들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아주 생생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휘 틀시는 주의를 기울여 듣고 응답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자녀양육에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 으며, 사실상 그 분야에 대해 이미 정책을 마음에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촉진시키고 경기를 부양해서 남자 들이 아내를 의지하지 않고 다시금 혼자 힘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해져서 그녀에게 그것이 어떤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휘틀시 는 미소를 지으며“오, 그 나머지는 쉬워요. 일단 남자들이 가족을 부양할 만큼 임금을 받게 되면 모든 여자들은 집으로 가서 우리가 자랄 때처럼 집에서 가정을 돌보게 되는 거죠” 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어머니들은 집안일을 돌보고 아버지들이 건장하게 가족 들을 먹여 살렸던 50년대로 돌아가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말 같았다.

그 시대는 페미니스트들, 경제학자들,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우리 나라 역사 중 아주 비정상적인 기간이라고 부르는 시대로 나는 설마 ‘우리 사회 또는 정부가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니 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휘틀시의 말이 옳았다. 휴레트는 독자들이 50년대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97 GTY.org

‘비정상적인’기간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한 번 자세히 살펴보자.

전통적인 가정의 성망 19세기 후반부에는 미국 여성들이 이룬 놀라운 진보를 유럽이 시 기할 정도였다. 하물며 20세기를 삼등분 했을 때 그 초반에 미국 여 성들은 아주 큰 진보를 이루어냈다. 그들은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 위스 여성들보다 훨씬 빨리 선거권을 획득했다. 높아진 경제적 지위 와 고등교육은 여자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주었다. 그 에 따라 이혼과 피임도 널리 확산되었다. 30년대 말에 미국 여성들은 유럽의 여성들을 이끄는 주도적 위치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남자들이 전쟁터로 파송되면서 미국 여자들은 국내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게 되었다. 그 결과 그 기간에 거의 5백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일터로 나아갔다. 1945년까지 미 국 여성들은 미국 역사상 전례 없이 강해졌다. 그런데 그 기간에 큰 사건들이 터졌다. 미국 정부는 1945년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공황이 10년간 지속되었고, 큰 전쟁을 다섯 번이나 치렀다. 미국인들은 이제 평상의 평온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온 남 자들에게 일자리가 부족할 것이라는 큰 두려움과 염려가 있었다. 그 래서 정부차원에서 또 경제적인 차원에서 여성들이 다시 집으로 돌

9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아갈 것을 권고했다. 어떤 여자들은 그것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다. 미국 내에 남자들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나면서 여자들은 직장에서 잘 렸고, 정부는 유아시설지원을 중단해버렸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 은 제대군인지원법(GI Bill)과 고속도로법(Highway Act)과 같은 것 을 사전에 미리 예건해서 행동함으로서 눈에 띄는 놀라운 결과를 얻 었다. 휴레트는 이 두 가지 법의 영향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대군인지원법(GI Bill)은 전쟁에서 돌아온 1천 4백만의 참전 용사들에게 대학학비를 무상으로 지급하고, 기초생활비를 지원해주 었다(부양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50%의 추가지원금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이자율에 주택대출금을 받게 해주었다(3~4%의 이자율에 30년간 대출이 되었다). 1944년 고속도로법은 도시와 도 시를 연결하는 도로 건설에 정부자금 13억을 투자하는 것이었다. 비록 제대군인지원법을 통해 남자들이 직업시장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가정을 부양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부부들에게는 아내의 기술을 썩혀야 한다는 것이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 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모든 무료 훈련에 지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부양가족들이 제대군인지원법을 통 해 어느 정도 생활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법안 은 사람들에게 일찍 결혼하는 것과 일찍 출산하는 것을 장려했다. 왜 사람들이 정부의 지원금을 마다하겠는가? 또한 고속도로법으로 건설된 도로들과 제대군인지원법으로 제공된 낮은 이자율의 주택대 출금은 수백만의 젊은 미국 부부들에게 도시근교에 위치한 집에 살

99 GTY.org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1945년에서 1955년 사이에 미국 국민총생 산이 두 배 이상이 되었다. 여성들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출산 율이 상승해서 50년대 말에 인구성장률은 유럽의 두 배가 되었다. 이 혼율도 떨어졌다. 그러나 50년대 말 즈음에 미국 가정은 낭떠러지에 서 멈췄고 40년 너머 지속될 자유낙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50년대 가 족부양의 책임을 맡은 남자들은 생활전선에서 점점 더 경쟁을 가속 화하며 계속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 나 그 과정에서 남자들은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버느라 탈진했고 상처 를 입었으며, 집에서는 아내와 자녀들로부터 고립되었다. 50년대 주부들은 완벽한 아내요, 어머니요, 알뜰한 살림꾼이어야 했다. 프로이드에서부터 스포크(아동양육이론가)에게까지 내려온, ‘자녀양육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새로운 관대한 이론의 시대에 서 주부들에게 맡겨진 유일한 책임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었다. 주 부들은 또한 더 화려하고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누려야 할 필요를 느 끼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남편이 그녀의 물질적인 꿈을 이루어줄 만큼 충분한 돈을 벌어올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나섰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그들의 삶에 점점 더 불만족하게 되었을 때 60 년대 페미니즘이 출범해서 가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남편들과 아 내들은 서로에게 긴밀하지 못한 삶에 실망했고, 이혼율은 사상 최대

10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에 달하기 시작했다. 1965년과 1975년 사이에 이혼율이 두 배가 되 었다. 자녀들은 어떤가? 뭐든지 받아주는 관대한 양육 방식의 희생 자로서 허울만 좋고 허무한 것을 추구하는 부모의 삶을 옆에서 목격 하며 자란 아이들은 반항적이 되었고, 마약을 가까이 하며, 텅 빈 마 음을 문화에 반항하는 것으로 채우려고 하게 되었다. 슬프게도 휴레트의 평가는 틀렸다. 50년대의 가정들은 여자들이 아내가 되기 위해 직장을 떠났기 때문에, 그들이 가졌던 것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이 성취할 수도 있었던 것을 놓쳤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 다). 50년대의 가정들은 스스로를 기쁘게 하려고 하는 죄인들이었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통적인 가정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미국 가정이 뭐가 잘못된 것인가? 왜 가 정이 그렇게 바람직하던 모습에서 자기 파괴적이 되었는가? 미국 가 정들은 성경적이 아니라 미국적이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산산조 각이 났다. 50년대는 어떻게 하다보니까 우연히 성경적인 겉모양을 갖춘 가정들을 세우게 된 것이었지,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세속적인 것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가정이든지 또는 어떤 나라이든지 성경적 원리를 따르면 어 느 정도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4장에서 배웠고, 실제 로 50년대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를 그리워하며 그 시대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리스도를 가정의 중심으로 삼은 사람들만이 그러한 원리들이 가진 강력하고 지속적인 힘을 깨달을 수 있다.

101 GTY.org

그리스도를 가정의 중심으로 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 날의 가정의 모습은 45년 전과는 너무나 다르다. 타임지에 따르면 “18세 이하의 자녀를 둔 여성의 68%가 직장에 다니고 있다(그런 여 성들이 전체 여성들의 28%에 불과했던 1960년대와는 아주 대조적 이다).” ‘여성 메가트렌드(Megatrends for Women)’ 는 남편이 가족 부양을 책임지고 아내가 가정을 돌보며 자녀들을 둔 전통적인 가정 은 전체 가정들 중에 10%에 불과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1970년대 에는 미국 전체 세대들의 40%가 18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부들이었 다. 1991년 즈음에는 26%로 떨어졌다. 오늘날에는 영유아를 둔 여 성들의 53%가 직장을 다니고 있다. 21세기가 다가오면, 직업시장의 50%를 여성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25세부터 54세 연령에 속한 여성들 중 80%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게 되면 집에 있는 여성들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선택 앞에 놓여 있는 오늘날 미국사회에 이상적인 가정 모델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의 삶이 이교도 사회에 분명한 간증이 되어야 하는 것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디 도서에서는 교회 신자들이 진정으로 갖춰야 할 성품적 자질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딛 2:1~10). 우리는 나중에 그 말씀을 전체적으 로 깊이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한 가지 가르침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울이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젊은 여자들을“집안일을 하도록”가르치도록 했다는 것이다(딛 2:5).

10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우리의 마음이 가는 곳은 집이어야 한다 “집안일을 하도록 하며” 라는 구절은 그리스 합성어인‘oikourgos’ 를 번역한 것이다.‘oikourgos’ 는‘oikos’ (집)이라는 말과‘ergon’ (일)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ergon’ 은 단순히 일반적인 노동 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 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고 말할 때 사용했던‘일’ 이라는 말이다. 우리 주님은 일생동 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초점을 두셨다. 그와 같이 아내도 삶의 초점을 가정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가정을 아내의 책임 영역이 되 도록 디자인하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부가 하루 24시간 집에 만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잠언 31장에 나오는 여자는 밭을 사 러가거나 또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갈 때 집을 떠났다. 그러나 그러 는 중에도 그녀는 가정을 돌보았다. 그녀는 자기의 삶을 가정에 쏟아 부었다. 그녀는 식구들을 위해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일찍 일어났다. 바울이“집안일을 하며” 라고 말할 때 굳이 그 말을 그럴싸하게 포 장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 이유는 그의 서신을 읽 는 자들이 그 표현에 아주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고대 유대의 법과 전통에 대한 구전인 미슈나(Mishna)는 바울 시대에 여자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주부는 밀가루를 빻고, 빵을 굽고, 빨래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을 돌보며, 잠자리를 준비하고, 옷감을 짜며, 아이들을 학교에 가도록 준비해서 학교에 데려다 주었

103 GTY.org

다. 많은 여자들이 남편과 함께 들에서 일도 하고 또는 물건을 사고 팔았지만 그래도 가정을 부양하는 책임은 남편들에게 있었다. 여자 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것은 수치였 다. 아내는 집에서 여러 가지 수예품 또는 공예품을 만들거나 원예를 가꾸는 일을 했으며 과일을 키워 팔았다. 그렇게 번 돈은 남편이 벌 어오는 수입과 함께 가정을 부양하는데 사용되거나, 아니면 다른 곳 에 쓰기도 하였다. 집안일 외에도 아내들은 손님들을 환대하고 돌보 며, 이웃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유대법은 명확했 다. 여자들에게 우선순위는 집에 있으면서 집안을 돌보는 것이었다. 여자는 가정, 자녀, 남편, 나그네, 가난한 자, 도움이 필요한자, 손님 들의 모든 필요를 돌봐야 했다. 자기의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아 내는 가정에서, 회당에서, 공동체에서 존경을 받았다. 신약성경이 여성들에게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요구하는 것은 디 모데전서 5장 9~10, 14절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한 남편의 아 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 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 시집가 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오늘날 우리는 고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편리함을 가정에서 누 리고 있다. 우리는 곡식을 직접 타작할 필요가 없고, 옷감을 짤 필요 가 없으며, 강가에서 옷을 빨 필요가 없다. 그것은 집안을 돌보는 주 부들이 과거에 비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10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부들은 그 시간을 분별력 있게 사용하기 위 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주부들이 가정에 유익을 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또는 잠언 31장에 나오는 여자 처럼 물건을 사고팔아서 어느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는 활동 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가정은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 어야 한다. 나는 요 몇 년에 걸쳐 이런 일들이 매우 심하게 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은 주로 페미니스트 운동 때문이다. 어떤 젊은 남 편이자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아내에게 감사하는 것을 배웠다.

나는 집안을 꾸려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지 전 혀 알지 못했다. 집에서 지냈던 첫 몇 주 동안 나는 시장보기, 요리 하기, 하루 세 번 설거지 하는 것으로 하루를 다 보냈다. 집안의 잔 일들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들과 놀아주고, 교육하며, 훈련하는 일 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짐이었다. 아들과의“단란한 시간” 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아들 데렉(Derek)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마음 먹으면 몇 시간을 그렇게 보내게 되고, 아니면 아들과 전혀 무관하 게 지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지만 가장 큰 보상을 가져 다주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 남자가 말하는 것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다. 아내가 몇 년 전에 사고로 목뼈가 부러졌을 때 갑자기 나는 그동안 아내가 나대신

105 GTY.org

해주었던 모든 일들을 떠맡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어린 자 녀들은 없었다. 그래서 사실은 집안일을 돌보기가 훨씬 쉬웠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안일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깊이 느 꼈다. 아니 때로는“집에서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야 하는”엄청난 짐 으로 인해 마음에 크게 부담을 느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당신은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여자에게 맞는 장소는 집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은“여자에게 맞는 장소는 집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집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미덕은 없고, 집 에 머물러 있으면서 당신이 하는 일들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 서 집에 있는 주부들이 전부 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녀가 집에 있으면서 드라마를 보고, 쓸데없는 이런저런 것들을 하는데 시 간을 많이 쓴다면 그녀는 자녀들을 소홀히 한다는 점에서 직장을 다 니는 여자 못지않게 나쁜 영향력을 준다. 주부가 밖에서 일을 하고 자녀들을 보육시설에 맡기는 것은 가정 에 대한 그녀의 의무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남편의 역할이 가 정을 부양하는 가정부양자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다. 예를 들면, 자녀들을 기독교 사립학교에 보낼 돈을 벌기 위해 직 장을 다니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 자녀양육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자녀들을 경건하게 양육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신앙심 깊은 자녀들을 키우는 여자가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기독교 학교라도 그만한 것은 없 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가장 큰 책임이 부모에게 있

10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다는 사실을 성경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신 6:6~9, 잠 6:20). 나는 자녀를 둔 어떤 어머니들의 경우 밖에 나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이 시대에 남편들이 해고를 당해서 한동안 가정을 먹여 살 릴 수 없을 때가 있다. 또 이혼의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고 또 미혼모 들은 가정부양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런 여성들의 숫 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여성들이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밖에 나 가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여자들은 커리어우먼으로 사는 것이 사랑하 는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더 만족을 준다는 거 짓말을 믿고 있다. 어떤 여자들은 삶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해 필요 이 상의 돈을 벌려고 일한다. 그리고 그들의 남편들은 그렇게 하라고 노 골적으로 명령하지는 않지만, 속으로 좋아하면서 그것을 승인한다. 이제 겨우 석 달 또는 넉 달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들을 보모들(베 이비시터들)에게 맡기는 것은 아내와 어머니를 만드신 하나님의 디 자인을 외면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역할을 인정하고 수용할 경우 현재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면, 그 삶의 질이 과연 하나님이 받 으시기에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다시 한 번 깊이 재고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집을 사는 대신 전세 또는 월세를 살더라도 조금 덜 가지 고, 덜 누리고 사는 편이 낫다. 맞벌이로 인한 경제적인 유익이 하나 님의 축복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짓지 말라. 여성들이 하나님의 디자인하신 영역에서 빠져나오면 그들은 어려

107 GTY.org

움 투성이의 환경을 만나게 된다. 두 명의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그러 한 잠재적 위험을 경고해주고 있다.

통계를 볼 때 주부로 사는 여성들보다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외도에 훨씬 더 많이 빠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취약한가? 한 가지 이유는 그저 외간 남자들과 만날 수 있는 더 많 은 기회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직장동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직업상 갖게 되는 관심이나 우리가 직장에서 이룬 공헌에 감사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우리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남자들 중에 우리의 직업적인 관심과 공헌에 감사하는 남자 들에게 마음이 더 끌리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가정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너무 많은 책임들로 인해 부담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런 부 담감을 16살 때에나 느꼈던 일종의 달콤한 로맨스와 가슴 두근거림 을 통해 풀어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직장 에 다니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직장에서 함께 보낸다. 또한 우리는 직장에서 가장 예쁘게 단장하고 또 가장 센스 있게 행동하게 된다.

디도서 2장 5절은 아내들에게“남편에게 복종하라” (엡 5:22 참 조)고 말하고 있다. 나는 남성우월적인 환경에 있는 여자들에게도 마 음이 쓰인다. 왜냐하면 그런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함부로 대우 받기

10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최근에 터져 나오는 성추행에 대한 항 의들에 대해 놀라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직장 여 성들이 가볍게는 성적인 농담이나 심하게는 성추행에 노출되어 있 다. 크리스천 직장 여성들에게 주는 아래의 경고는 그 문제를 잘 지 적해주고 있다.

처음부터 그런 것에 연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다. R 문제가 생기기 전에 배우자 또는 친구들과 서로를 돌아봐주고 책임져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 R 그런 기회가 오기 전에“싫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연습하라. R 판타지를 꿈꾸지 말라. R 남자 동료와 단 둘이만 너무 자주 함께 있는 것을 피하라. R 남자동료와 친밀해지는 것을 피하라.“만약 내가 … 한다면”식 으로 대화를 하는 것을 피하라.

부부관계가“멀어지면”도움을 청하라. R 하나님과 생명력 있는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다른 믿는 자 들과도 꾸준한 교제를 나누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도에 빠지지 않는다고 장담할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항상 경 계의 마음을 늦추지 말라.

하나님은 여자들을 경건한 남편과 가정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109 GTY.org

만드셨다. 남자들이여, 아내를 위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은 우리에 게 달려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아내들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 에게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다. 장성한 자녀를 둔 여자들이나 또는 자녀가 없는 여자들은“집안을 돌보는 자” 라는 우선적인 책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그러나 집 밖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는 지혜롭게 주의하여 선택해야 한다. 그 렇게 해서 집을 남편을 위한 안식처로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환대 하는 장소로 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삼고 그 우선순위를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여성들이 주일학교교사로서 가르 치거나, 선교에 동참하거나, 구치소사역, 병원 사역 등 크리스천 사 역들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 아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 밖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으면 주님과 남편 앞 에서 행하고, 가정생활을 풍성하게 하고 더 강화시켜줄 수 있는 그리 고 영적인 목표들을 달성해줄 수 있는 것들과 관련된 일을 하라.

탁월한 아내 잠언 31장은“집안일을 보살피는”여자의 모델을 잘 보여준다. 여 기에서 우리는 단지 집안을 보살피는 아내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하나님의 디자인에 완벽하게 맞는 여자를 볼 수 있다. 잠언 31장을 쓴 르무엘왕은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말해준 아내를

11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선택하는 지혜들을 기록했다. 10~31절은 어떤 특정한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말씀은 모든 여자들이 본받아야 할 성품과 자 질을 보여주고 있다. 왕은“누가 현숙한(탁월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 보다 더 하니라” 고 기록하고 있다.‘탁월한’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 어로는‘힘’또는‘장점’ 을 의미한다. 이 말씀에서는 영적으로, 도덕 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장점을 가진 여자로서 아내를 말하 고 있다. 이 여성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가치는 무한하다.“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는 말은 그녀가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외모, 성취, 스타일, 성공, 돈, 교육과 같이 여러 가지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기준으로 아내 될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아내 될 사람을 찾을 때는 미덕, 성품적인 장점, 영적인 탁월 함, 내면적인 경건함을 갖춘 여성을 찾아야 한다. 아래에는 탁월한 아내의 특징들인 여섯 가지 구체적인 성품들이 나와 있다.

아내로서 특징

르무엘왕은 그런 여자의 남편이 아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하고 있다.“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11절). 이 남 편은 그의 아내를 신뢰해서 안심하고 집을 멀리 떠나있으며, 그녀의 신실함, 고결함, 분별력을 신뢰하며 또 그녀가 남편의 모든 일들에 신경을 써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말씀의 전후 문맥을 볼 때 그녀

111 GTY.org

가 대 식구의 필요를 풍성하게 채우는 책임을 떠맡고 있다는 것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그런 책임을 맡기고 집을 떠날 때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남편은 아내의 관심이 오직 남 편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며, 아내의 열정이 남편을 편안하게 해주 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남편의 짐을 덜어줄까 하는 것임을 알고 있 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녀의 사려 깊은 청지기적인 자세로 인해“산업이 핍절 하지 아니한다” (11절). 아내로서 그리고 그 집을 성실하게 다스리는 자로서 그녀는 자산을 관리하고 모든 집안 활동들을 관리한다. 모든 집안 문제들을 다루는 그녀의 능력은 남편이 잔걱정 없이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개인적으로“그녀는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한다” (12절). 남편이 관심을 두는 것들을 마음에 담고 남편을 격려하고 사 기를 돋워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녀가 함께 하는 한 그의 돈, 소유, 재산은 안전하다. 그녀는 절대로 남편을 험담하거 나 또는 남편의 성격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또는 식구들 앞에서 흉보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일생동안”행동을 단정하게 한다. 남편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가정을 돌보는 헌신은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변함이 없다. 우리는 결혼할 때 추호의 의심 없이 아플 때 나 건강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검은 머 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녀의 헌신의 순결함과 열정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남편의 편안, 성공, 명성, 기쁨은 항상 그녀의 기쁨이다.

11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남편은 그녀의 그러한 성실함에서 유익을 얻는다.“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23 절). 그것은 그가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존경받는다는 뜻이 며, 그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내가 주변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 줘서 남편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 다. 그녀의 삶은 이기심이 없는 삶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이다. 남 편이 그녀를 선하게 대하기 때문에 그녀는 기꺼이 그렇게 하게 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남편을 섬기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 이다.

집안을 돌보는 자로서 그녀의 헌신

이 적극적인 여인의 집안을 돌보는 능력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첫 번째 특징은 13절에 나와 있다.“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 히 손으로 일하며.”가족의 옷을 준비하는 것은 그녀가 가장 중요하 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단지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는 양질의 옷감을 만들기 위해 양털과 아마를 찾는다. 양털로는 추운 계절에 입는 옷을 만들고,아마로는 따뜻한 계절에 입는 가벼운 옷을 만든다. 아마는 특히 아름다운 옷을 만들기에 좋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 옷을 만드는 것은 그녀의 기쁨이다. 14절은 가족을 위해 좋은 음식을 준비하는 그녀의 능력에 대해 말 하고 있다.“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그녀는 늘 동네 가까운 시장에 가서 평범한 물건을 보통 가격으로 사오는 일

113 GTY.org

은 하지 않는다. 그녀는 먼 곳까지 가서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음식 을 사온다. 그녀는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그냥 버리지 않고, 가족들 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하려면 계획하 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는 이런 여자는 잠을 별로 많이 갖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15절에 보면“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라고 말하고 있 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은 밤에는 작은 등불을 켜 놓았다. 그 램프에는 기름을 조금밖에 채울 수 없었기 때문에 밤에는 누군가가 깨어서 그 등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탈 수 있도록 기름을 채워 넣어야 했다. 이 여자는 가족들이 잠을 자도록 해주기 위해 그 책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등불에 기름을 채워 넣은 후에는 다시 자러 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때부터 깨어서 그날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녀가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또한“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이 부지런한 아내는 일찍 일어나서 자기가 할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집안 여종들에게 각각 할 일들을 맡긴다. 그녀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여자가 집안일을 돌보는 것이 품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잠언 31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가 정을 돌보는 사람은 어떤 산물을 얻을 것인지를 분석하고, 지혜를 짜 며, 사려 깊게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통찰력이 있어야 하며, 그 집안 의 일꾼들에게 할 일들을 할당해주기 위해 경제, 행정, 비즈니스의

11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요소들을 골고루 생각해야 한다. 동시에 그녀는 아내로서 남편에 대 한 책임을 다 해야 하며 사랑과 배려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이런 모든 의무들을 행할 뿐만 아니라 잠언에 나오는 이 탁월한 아 내에게는 기업가적인 기질도 있다.“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 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6절). 남편이 밭을 사라고 그 녀에게 돈을 준 것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기가 번 돈으로 그 밭을 사서 포도원을 일구었다. 24절은 이러한 수입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가족들과 집안일들을 돌보는 것 외에도 그녀는 유용한 물건 들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의 돈을 이런저런 집안일에 써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라. 그녀는 그것을 따로 모 았다가 요긴하게 썼다. 이 여자가 이 모든 역할들을 해낸 것을 볼 때 그녀는 틀림없이 엄 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7절). 이 말은“강한 힘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으 며” 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녀는 자기절제, 가족들에 대한 헌신, 남편 에 대한 사랑이라는 면에서 아주 강한 여자이다.“자기의 팔을 강하 게 하며” 라는 것은 그녀의 신체적인 강인함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녀가 매일 열심히 일한 결과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 동기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동기가 불붙어 있었다.“자기의 장사가 잘되는 줄을 깨닫고” (18절) 밭을 사 서 포도원을 가꾸었을 때 그녀는 단지 재정적인 이익만 얻는 것이 아 니라 그녀의 수고로 인해 가정이 풍성해지는 것을 보면서 영적인 축

115 GTY.org

복을 누렸다. 그 결과“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18절) 자기의 수 고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유익을 얻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만족감을 누렸고, 그런 만족감 때문에 그녀는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비 록 그것이 또 다른 일을 위해 밤을 꼬박 새우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말이다.

그녀는 아마도“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을 때” (19절) 밤을 꼬박 새웠을 것이다. 물레를 돌려서 양털과 아마를 실로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낮에는 너무 바빠서 한 밤중에 가족들을 위해 옷을 만들었을 것이다. “추운 겨울날 눈이 와도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았 다” (21절)는 것은 그녀가 가족들을 위해 밤에 열심히 바느질을 해서 겨울에는 밤에 따뜻한 이불을, 낮에는 따뜻한 옷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냥 옷의 기능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가족들이 옷을 멋있게 입기를 바랐다.“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 을 입었으므로”그녀는 옷을 좀 더 멋있게 만들기 위해 염색을 했다. 이 여자가 했던 것 중에 자기 자신을 위한 것도 있었다는 것이 또 한 가지 인정할 만한 점이다.“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2절).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부 여해준 자신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감사하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자기 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옷을 입었다. 그렇다고 비단, 금, 진주 로 지나치게 화려하게 장식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지나치게 비싸지 않는 리넨을 택했다. 그래도 그것은 그녀가 가장 좋은 마를

11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취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옷이었을 것이 다. 그리고 보라색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처럼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단순한 것을 택함으로서 지나치게 화려하게 보 이기를 피했다. 그녀의 모든 결정들에는 그런 특징이 있다. 그 이유 는 그녀의 목표가 남편과 자녀들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좋은 이웃으로서 자선을 베푸는 삶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0절). 지금까지 이 여자의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자선을 베푸는데 도 적극적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자기 가족을 사랑으 로 잘 돌본 만치 그 여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어려움을 돌아보았고 긍휼을 베풀어주었다. 그녀는 손을 펴서 그들의 상처를 다독거려주었고 먹 을 것과 입을 것도 주었을 것이다. 그녀가 손의 폈다는 말은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 와서 도와달라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먼저 다가갔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자기 식구가 잘 지내는 것에 늘 마음을 썼 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식구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사람은 아니 었다.

117 GTY.org

교사로서 그녀의 영향력

가르침은 성품과 함께 시작된다.“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 을 웃으며” (25절). 여기‘존귀’ 는 그녀의 삶의 특징을 말해주는 반 면,‘능력’ 은 그녀의 영적인 특징을 말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교 사로서 그녀의 고결함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녀는 진정으로 영적이 다. 만약 그녀가 영적이지 않았다면 자녀들이 그녀의 말을 듣거나 그 녀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 기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 으면 그의 가르침은 단지 위선자의 거짓에 불과할 것이다. “후일을 웃으며” 라는 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는 그녀가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녀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녀의 가정의 앞날도 밝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잘 돌 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녀들의 앞날도 밝을 것이다. 왜냐하 면 그녀는 자녀들을 끊임없이“주의 교훈과 훈계” 로 양육하기 때문이 다(엡 6:4). 그리고 그녀의 남편의 앞날도 밝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 안을 잘 관리함으로서 남편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환경을 만들 어주기 때문이다. 성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교훈과 가르침이다.“입을 열어 지혜 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잠 31:26). 성경은 아버지 를 한 가정의 교사요,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들이 매일

11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매일 자녀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삶으로 진리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 이다. 잠언 6장 20절은“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 의 법을 떠나지 말고”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녀가 가르칠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랑과 온유함이다.“입 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잠 31:26). 은혜와 친절한 말로 그녀는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자들에게 덕을 세우며 은혜를 끼친다(엡 4:29).

어머니로서의 능력

잠언 31장 27절은 가정에서의 그녀의 리더십을“자기의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라고 요약해주고 있 다. 그녀는 온 집안을 끊임없이 탁월하게 감독하면서, 절대로 게으름 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녀는 진정한 만족은 최고의 노력을 통 해서만 온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심는 만큼 거둔다” 라는 옛날 속담이 틀리지 않다. 어머니들이여, 만약 당신의 인생의 전반부를 자녀들에게 투자한다면 남은 후반부에 는 그로 인한 배당수익을 거두어들이게 될 것이다. 탁월한 아내이자 어머니인 여성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배려로 자녀들을 키운 다. 그렇게 키운 자녀들이 스스로 살아갈 만큼 충분히 성장해서 자립 하고 나면 그 자녀들은 자기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어머니에게 감사 하고 그 어머니를 복되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디자인이 다. 늙은 사람들이 받는 보상은 장성한 자녀들의 헌신과 섬김이다.

119 GTY.org

당신이 자녀들을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키울 때 자녀들이 어른 이 되어서 당신에게 베풀어줄 축복을 통해 그동안 당신이 쏟았던 헌 신과 희생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또 다른 유익이 있다. 당신의 자녀들이 부모가 되어 자기 자녀들을 키울 때 당신이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하게 될 것이다. 이 런 이유 때문에 온유한 인도, 지혜로운 상담, 사랑의 훈계, 거룩한 본, 열심히 일하는 것, 풍성하게 베푸는 삶이 자녀양육에서 아주 중 요하다. 자녀들이 커서 자기 자식들을 키울 때 당신이 삶으로 보여준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끊임없이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탁월한 아내가 얻는 또 다른 배당수익이 있다.“그의 자식들은 일 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 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28~29절). 남편이 아내에 게 이 세상 모든 여자들 중에 최고라고 말하는 것이야 말로 그녀의 최고의 상급이다.

사람으로서 그녀의 탁월함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탁월함은 영적인 면부터 시작되지만, 그러 나 이 대목에서는“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30 절)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이것은 외모와 생김새를 말하고 있고 그 것이 거짓되다는 것이다. 외적으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많은 시 간을 소모하는 여자들은 영구적인 가치를 놓치게 된다.“오직 여호와 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

12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30~31절). 르무엘왕의 어머니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여성상은 이 두 가지 말씀에 들어 있다. 남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를 인 생의 동반자로 얻을 때 그는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아내를 처음 봤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면 분명 해가 갈수록 그는 그의 아내가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케더린 비처(Catharine Beecher)는 미국 역사상 아주 유력한 가 정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녀의 여동생들 중에 한 명은『엉클 톰스 캐 빈』 (Uncle Tom’ s Cabin)의 작가인 소설가 해리엇 비쳐 스토우 (Harriet Beecher Stowe)이다. 그들은 둘 다 어린 시절에 많은 사랑 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고 키우 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캐더린은 스물세 살에 하트포드 여성신학교 를 설립했다. 여성들을 남편들과 자녀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로 훈련해주고 가정을 잘 돌보도록 훈련해주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 녀와 해리엇(Harriet)은 그로부터 몇 년 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또 다른 신학교를 설립했다. 1869년 그들은『미국 여성의 집』 (The American Woman’ s Home)이라는 책을 공동 저술했다. 그 책에서 그들은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성의 일에는 아주 어린 유아들이나 또는 어린이들이 아플 때처 럼 아주 중요한 시기에 그들을 돌봐주고 보살펴주는 것들, 인격과 사고가 형성되는 시기에 그 마음을 훈련해주는 것… 그리고 가정 내 에서의 대부분의 통치와 경제를 관리하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여성

121 GTY.org

들이 맡은 이러한 의무들은 남자들에게 맡겨진 임무들만큼 신성하 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그런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나 또는 그런 가르침을 베풀만한 준비가 되었 다는 것을 공인해주는 기관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두 사람이 여성들을 훈련하는 학교를 두 군데 설립 했던 이유였다. 여성들이“집에서 모든 집안일들을 잘 수행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무들을 명예롭게 여기고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 었다.”여성들이 하고 있는 고귀한 일들이 합당한 방법으로 존중받거 나 또는 감사받지 못하고 있다. 혼자 사는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결혼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이“집안일을 돌보며” (딛 2:5), 필요한 때에 희생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다른 여성들에게도 그 렇게 하도록 권유하는 하나님의 여성상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보다 그것을 수용할 때 여성들이 하는 고귀한 일들이 다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12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5장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다음에 나오는 간단한 수학은 우리에게 명확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만약 미국의 전체 세대들 중에 26%가 결혼한 부부들로 이루어 져 있다면 그 말은 74%는 이혼했거나, 사별했거나, 혼자 사는 독신 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교회에서는 이 수치가 다르게 나올 수가 있 다. 당연히 세속 사회보다는 교회 내의 결혼의 불가침성의 정도가 훨 씬 더 높을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과 결혼한 사람들까지 포 함해서 고려하면 교회 내의 많은 사람들도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결혼의 이상향과는 맞지 않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5장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결혼한 신자들, 과부, 이혼녀, 독신 자를 위한 하나님의 디자인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들을 향한 하나 님 뜻도 풍성하고 복되다.

123 GTY.org

당신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했는가?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선택할 때 차별을 두지 않으신다. 어 떤 상황이나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든 상관하지 않고 부르신다. 그러 므로 결혼한 부부 중에 한 사람만이 그리스도에게로 부르심을 받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처럼 1세기 교회도 새로 신 자가 된 사람들에게 배우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그 런 경우 남편들은 세상에서 하던 방식으로 아내들을 계속 대해야 하 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아내들은 더 높으신 권세인 그리스도에게 충성 하기 위해 비그리스도인인 남편의 권위를 거부해야 하는지 알고 싶 어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바뀐 그들의 신분은 그들에게 주어 진 육적, 영적 권리들을 주장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사도 바울(고전 7:12~16)과 사도 베드로(벧전 3:1~7)는 둘 다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와 결혼했을 때 따라야 할 시대를 초월한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공해주고 있다.

하지 말아야 할 것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한 사람들, 특히 사도 시대에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한 아내들은 부부관계를 접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크 리스천의 관점은 그와 반대이어야 한다. 바울은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12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 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 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 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 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고전 7:12~14)

남녀관계에서‘버리다’ 라는 말은 이혼을 의미한다. 앞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이혼을 금하시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이 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전 7:10~11). 여기서 그는 믿지 않 는 자와 결혼한 믿는 남자 또는 믿는 여자는 배우자가 부부관계를 유 지하기 원한다면 그 배우자와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결혼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몇 가지 유익이 있다. 배우자가 믿지 않는 사람일 때 사기가 떨어지고 낙심할 수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치러야 할 대가가 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것이 영적으로 더럽혀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가 믿지 않 는 자로 인해 타락하기보다 오히려 가정을 지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화는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선을 위해 구 분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믿는 배우자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축복 들과 은혜가 구원받지 못한 배우자와 가족들에게까지 미쳐서 그들을 부요하게 해줄 수가 있다. 그 외에도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지

125 GTY.org

만 그의 간증의 힘으로 말미암아 온 가족이 그리스도를 믿게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가족을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보신다. 가정이 영적으로 서로 분열되어 있고, 대부분의 식구들이 믿지 않고 부도덕 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가족 중에 있는 믿는 자들을 통해 그 가 족 전체를 축복하신다. 그러므로 만약 믿지 않는 배우자가 당신과 함 께 살기를 원한다면 이혼하려고 하지 말라. 그 배우자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더 좋은 환경에 있는 것이 다. 그러나 만약 믿지 않는 배우자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 동의 하지 않는다면 바울은 다음과 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다.“혹 믿지 아 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 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고전 7:15~16). 그것은 간단하다. 만약 당신의 남편 또는 아내가 부부관 계를 끝내고 싶어 한다면 그를 보내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오직 죽음(롬 7:2)과 간음(마 19:9), 그리고 믿지 않는 배우자가 가정을 버리고 떠나는 것만이 그들을 갈라놓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부부관계가 종료되었다면 그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재혼을 할 수 있다(롬 7:3). 또 믿는 남편 또는 믿는 아내가 배우자와 사별을 해서 과부나 홀아비가 된 경우 다시 재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12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롬 7:3)은 오늘날에도 해당될 수가 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가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그런 경우에는 이 혼을 허용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이다(고전 7:15). 만약 당신의 아내 또는 남편이 당신이 신앙생 활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부부관계를 끊고자 한다면 당신이 평화 롭게 신앙생활하기 위해 결혼관계를 끝내는 것이 더 좋다. 싸우고, 소동이 일어나고, 언쟁이 일어나고, 비판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조화와 평화를 깨뜨린다. 그리고 만약 배우자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전도해보려는 마음에서 결 혼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 말라. 그런 불편하고, 혼란스럽고, 혼돈된 환경 속에서 배우자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주의사항을 더 추가하고 싶다. 믿지 않는 배 우자에게 복음으로 인한 짐을 너무 많이 지우거나 너무 지나치게 복 음을 강조함으로 배우자가 부부관계를 끊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지 말라. 당신이 아무리 괴로울 정도로 배우자를 닦달을 해도 그를 하나 님의 나라로 데려갈 수는 없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영향 력을 주는 삶을 삶으로서 배우자를 쫓아 보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께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2천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 도 주변에 심각한 소동을 일으킬 수가 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127 GTY.org

바와 같이 바울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여자들이 아주 무시를 받았다. 여자들이 아버지 집에서 살 때는‘patria potestas’ (아버지 의 힘)이라는 로마법아래 있었는데, 그 법은 아버지에게 딸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주었다. 그리고 일단 여자가 결혼을 하고 나면 그와 동일한 법적인 권한이 남편에게 주어졌다. 그 당시에 는 여자들이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하는 것은 때로 믿지 않는 남편들 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 구하고 믿는 아내는 아내로서의 여러 가지 책임들을 다함으로서 남 편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었다.

순종적이 되라 베드로는“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벧전 3:1)라고 말했다. 아내는 남편이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남편에게 순종할 책임이 있다.‘이와 같이’ 라는 말은 국민들이 정부의 권위에, 피고용인들이 고용주들에 게(벧전 2:13) 순종해야 하는 것과 같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벧 전 2:18). 2장에서 우리가 배웠던 바와 같이 하나님은 결혼을 포함 한 모든 사회적인 제도가 잘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러한 체계를 정 해주신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자” 란 복음을 거부하는 남편을 말한다. 그 리스 원문에서는 이것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다. 그만큼 그것이 절

12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박한 현실이었다. 그 말은“남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이 라고 번역될 수 있다. 믿는 아내는 남편에게 말로 가르쳐서가 아니라 순종함으로서 남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다. 그리고“말로 말 미암지 않고” 에서‘말’ 은 사람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님 의 말씀이 아니라(벧전 1:23) 아내가 하는 말이다. 아내는 말로서가 아니라 행실로 남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한다. 그녀가 남편을 전도할 때 꼭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랑으로 은혜롭게, 온유 하게, 순종적인 태도로 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 있다.

신실하라 남편들은“아내들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으로서” (벧전 3:2) 그리스도께로 인도될 수 있다. 아내들은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내들은 하나님과 남편 둘 다에게 신실하고 나무랄 데 없이 행동해야 한다. 자신이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허용하지 말고 남편을 존경하라.

겸손하라 특히 미국사회의 아내들은 베드로전서 3장 3절에서 베드로가 경 고한 것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로마사회에서 여 성들은 외모를 꾸미는 것에만 치중했다. 그들은 머리를 기이한 색깔 로 염색했으며, 아주 공교하게 머리를 땋았고, 비싼 장신구들을 달 고, 화려한 옷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하기를 좋아했다. 베드로는 여

129 GTY.org

자들이 머리스타일을 멋있게 하고, 보석장신구들을 하며, 좋은 옷 입 는 것을 금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그들이 그런 것들에 마음 이 온통 뺐기지 않기를 바랐다. 여성들이여, 아름다운 태도를 무시한 채 외모만 꾸며서는 남편의 마음을 절대로 사로잡을 수 없을 것이다.“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는 것” 에 우선적인 초 점을 두어야 한다(4절). 겸손하고 조용한 성격은 내면의 아름다움의 특징이며“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다” (4절). 덕을 추구하라. 그 러면 남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가 훨씬 더 좋을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내면의 경건한 아름다움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은 사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지저분하고 꾸미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외모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지나 치게 신경을 쓰는 것만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내면의 아름다움을 반영할 수 있을 만큼 외모를 꾸밀 때 단정하 게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5~6절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전 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 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 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여기‘거룩한 부녀들’ 이라는 말은 구 약에 나오는 믿음의 여자들을 일컫는 것이다. 6절은 사라를 구체적 인 순종의 예로 들고 있다. 그 이유는 사라가 남편인 아브라함을 존 중했기 때문이다. 모든 믿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롬

13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4:5~16, 갈 3:7~29). 그와 마찬가지로 사라의 본을 따르는 모든 믿는 여자들은 사라의 영적인 자손들이다.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이 성경구절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권위와 순종에 대한 성경의 원리를 논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 려워서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 이다. 데이비드 파우슨(J. David Pawson)은“베드로의 말은 바울의 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사라가 아브라함을‘주’ 라고 불렀 고 그런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순종을 보였다” 라 고 말하고 있다.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벧 전 3:6)는 말은 두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죄로 인한 타락으로 인 해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순종적인 것이 마치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인 것처럼 아내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아내들이 남편에게 불순종 하는 모습들을 세상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기 보다 아내는 순종적이고, 재치 있게, 겸손하게, 온유하게 처신함으로 서“합당하게”행해야 한다.

남편들이 해야 하는 것

베드로전서 3장 7절은“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 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고 말하고 있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131 GTY.org

싶다면 아래의 것들을 신실하게 따르라.

사려 깊게 행하라 “지식을 따라(이해하라)” 는 말은 아내의 육체적인, 감정적인 필요 들에 민감해지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내의 그런 필요들에 사려 깊게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기억하라, 남편들은 아내를 보살피고, 돌봐줘야 한다(엡 5:25~28). 많은 여자들이 나에게 찾아 와“내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우리는 대화가 안통해요. 남편 은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라 고 말한다. 그러한 둔감함은 부부관계에 벽을 쌓는다.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라는 말은“사려 깊게 행동하 라” 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편들은 결혼을 통 한 유익을 누림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 아니라 부부관계 를 위해 노력을 쏟아 붓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당신은 아내에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가? 아내와 한 자 리에 앉아 그 필요들에 대해 말해본 적이 있는가? 아내에게 당신이 어떤 남편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가?

신사답게 행동하라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바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의 특별한 사랑과 돌봄을 받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더 연약한 그릇” 이란 영적으로 또 는 지적으로 더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 으로 더 연약하다는 뜻이다. 성경은 몇 군데에서 그것을 말해주고 있

13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 51장 30절에서“바벨론의 용사는 싸움을 그 치고 그들의 요새에 머무르나 기력이 쇠하여 여인 같이 되며 그들의 거처는 불타고 그 문빗장은 부러졌으며” (사 19:16, 렘 50:37, 나 3:13)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 바벨론의 군대가 힘이 없고 방어력이 없어서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에 비교되고 있다. 여자들이 더 약하다는 것은 부정적인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남자 들을 더 강하게 만듦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환상적인 파트너가 되도 록 한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보호해주고,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신사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아내를 위해 자 동차 문을 열어주던 관습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어떤 남편들은 외출할 때 아내가 문 밖으로 한 쪽 발을 채 내밀기도 전에 벌써 골목 밖에 나가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아내에게 공손하려고 노 력하라. 그러면 아내는 그것에 감사할 것이다.

동반자가 되라 “생명의 은혜” 는 결혼을 말하는 것이며,“귀히 여기라” 는 말은“아 내를 존중해주라” 는 뜻이다.“은혜” 는“선물” 을 의미하며, 생명(인 생)이 주는 가장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결혼이라는 의미이다. 따라 서 베드로가“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 로서 아내를 존중하라 고 말한 것은 아내를 동등한 파트너로 여기고 존중하라고 남편들에 게 명령하는 것이다. 아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아내와 동료관계 또는 우정을 깊이 맺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 면 당신의 삶을 아내와 함께 나누며 아내와 함께 공동의 관심사를 개

133 GTY.org

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라. 부부의 행복의 비결 중에 하나는 공통적인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그저 한 번 제안해보는 것들이 아니다. 베드 로는 당신이 위의 것들을 삶에 잘 적용하면 바로 기도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기도들에는 아내의 구원을 위한 간 구도 들어 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아내에게 사려 깊은 것, 신사 답게 행동하는 것, 아내의 동료가 되어주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당신이 과부 또는 이혼녀라면 미국사회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과부들과 이혼녀들이 다. 사도 바울은 결혼한 남자여자들, 그리고 독신 남자여자들을 교회 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 지침을 주고 있다. 그는“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딤전 5:3)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어로‘과부’ 란‘빼앗긴’ 이라는 뜻이며, 사랑하는 자를 잃어 버림으로 말미암아 또는 홀로 남은 것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는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울의 가르침에서는 어떻게 과부가 되었는지 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반드시 남편의 죽음만이 그 원인은 아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과부는 이혼, 버림받음, 감옥에 갇힘, 특히 죽음을 통해 남편을 잃어버린 딸, 어머니, 자매, 조카, 또 는 이모, 고모가 될 수 있다. 그런 여자를 돌보는 것은 특권이며 하나

13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님의 긍휼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미국사회 내에 그런 긍휼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점점 더 늘어나 고 있다. 조지 그랜트(George Grant)는 그의 저서『소외된 자들: 미 국 내의 노숙자들』 (The Dispossessed: Homelessness in America) 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이 여성의 복지와 행복에 얼마나 큰 해를 입혔 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페미니스트 운동의 부정적인 결과를 묘사하기 위해‘가난의 여성화’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페 미니즘은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무너뜨렸다. 그것은 남자들의 무책 임을 전염병처럼 퍼지게 했다. 그것은 여자들에 대한 예의, 존중, 헌 신을 감소시켰다. 그것은 그 운동이 자유롭게 해줘야 할 바로 그 여 성들을 점점 더 가난해지게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적 질병 들로 가득한 판도라 상자를 열어준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랜트는 레노 웨이츠맨(Lenore J. Weitzman)이『이혼혁명』 (The Divorce Revolution)에서 여성들은 이혼 후에 삶의 질이 크게 떨어졌지만, 반면에 그들의 전 남편들은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그는 또한 킴 호퍼(Kim Hopper)와 질 햄버그(Jill Hamberg)가 그들의 저서『미국의 노숙자들을 만드는 것』 (The Making of America’ s Homeless)에서 여성이 세대주인 가 정들은 세 가정 중 한 가정이 가난을 겪고 있는 반면, 남자들이 세대 주인 가정은 열 가정 중에 한 가정만 가난을 겪고 있으며, 양부모가 다 있는 가정들은 열아홉 가정 중에 한 가정만 가난할 뿐이라고 기록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매기 겔러허(Maggie Gallagher)는 이러한 통계수치가 의미하는

135 GTY.org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남편들에게서 버림받은 여성들은 자녀들을 혼자서 키워야 하며, 가난으로 내몰려야 하며, 그 결과 삶의 질이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것을 경험해야 하며, 위험한 도심지역에 위치한 밀집된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며, 건강이 나빠지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며, 매를 맞으며, 칼에 찔리며, 강간당하고, 강도를 당한다. … 세상은 점점 더 편해지고 있지만 오늘날 여자들은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과거 우 리의 어머니들이 했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더 힘들게 스트레스를 받 으며 일하고 있다. 신경쇠약으로 거의 기절할 지경이다. 적절한 결 혼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여성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며, 결혼을 한 많은 사람들은 자녀를 간절히 원하지만 절대 자녀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비극적인 흐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하나님의 디자인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의 특별한 사랑과 돌봄 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여자들이 남편을 잃는다면 그녀 는 재정적으로 삶을 지탱해갈 수 있는 아무 수단이 없이 혼자 남게 된다. 그러한 여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 아래 있게 된다. 야 고보서는 과부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요약해주고 있다.“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약 1:27). 바울은 전체 교회가 그런 식으로 믿음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바울

13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은 과부들에 대한 그의 설교에서 몇 가지 실용적인 원리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딤전 5:3~16). 디모데전서 5장 3절은“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고 말하고 있다. 홀로 남겨진 크리스천 과부들은 자격이 되 는 경우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다.“존대하라” 는 말은 십 계명 중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출 20:12). 모세 시대의 유대 백성들은 그 계명에는 부모에게 재정 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마 15:1~6 참조).

필요를 평가해 보라

“참 과부들” 은 생계수단이 있는 과부들과는 달리 생계수단이 없는 과부들을 말한다. 어떤 과부들은 남편이 죽을 때 집이나 기타 재산을 남겨 놓고 죽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그 교회는 모든 가능 한 방법으로 과부에게 격려와 사랑을 베풀어주며 영적인 필요들을 채워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부들의 복지를 위해 기초생활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연구해본 바에 의하면 그들의 필요들이 엄청나게 늘 어나고 있으며, 그 여성들의 나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지원해줘야 할 것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과부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크리스천 교육을 해주고 싶어 할 수도 있고, 교회는 그 필요를 채우 기 위해 장학기금을 만들 수도 있다. 과부들 중에 어떤 이들은 아주 적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고, 반면 어떤 이들은 수입이 더 많아서 좀 더 여유 있게 살 수도 있다. 교회는 어떤 필요를

137 GTY.org

먼저 채워줄 것인지를 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것은 중요한 헌신이다. 그렇게 하려면 때로 다른 교회 프로그램 들에서 돈을 끌어와야 할 수도 있다. 물론 교회가 모든 과부들에게 똑같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성경은 누가 교회 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지침 을 제공해주고 있다.

가족이 그 과부를 돌보는 것이 가능할 때 디모데전서 5장 4절은“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 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 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고 말하고 있다. 가족들에게는 과부들을 돌봐야 할 가장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 가족 공동체가 서로에게 경건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모든 가족구성 원의 필요를 제대로 공급해주는 것이다. 8절은“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고 말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되어버린 부모세대에게 이러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 세대와 그 손자손녀들에게 이러한 책임이 있다는 것에 주의하라. 경건한 젊은이들은 가족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를 맺 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가족을 돌보는 것이 진정한 영성의 지표가 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쏟은 것 중에서“얼마를 돌려주는 것” 이 자녀들의 기본적인 책임이 되어야 하며, 거기에는 재정적인 책

13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임도 포함된다. 자녀들이여,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 등 부모들이 공급해주는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들과 그 외에 부모가 베풀어주는 사랑과 격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가족이 그 과부를 돌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그러나 어떤 가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 때도 있다. 5절은“홀로 된”사람들 중에 어떤 과부들을“참”과 부들이라고 정의했다. 참 과부들은 부도덕, 이혼, 자녀들에게 버림받 음, 자녀들의 죽음 등과 같은 이유 때문에 그들을 기꺼이 돌봐줄 자 녀나 손자들이 없는 과부들이다. 교회가 과부를 도와줄 때 가장 첫 번째로 고려하는 조건은 그 과부 가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음과 같다.“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 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5절). 이것은 성숙한 그리 스도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의 기도생활은 그녀가 주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반영해주고 있다. 그것은 6절에 묘사 된 과부와는 아주 대조적이다.“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 느니라.”육체적으로는 살았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이 여자는 옳은 것 에 무관심한 채 하나님을 향한 아무런 헌신 없이 살고 있다. 이 말에 는 그녀가 회개하기 바라는 마음이 함축되어 있으며, 만일 회개하지 않을 경우 자기 죄의 값을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는 의미도 함축되 어 있다. 교회는 죄악된 라이프스타일을 고집하는 그런 과부를 도와 줘야 할 책임이 없다.

139 GTY.org

가족 중에 과부가 된 자들을 돌봐주지 않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 지는 다음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 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 라” (8절).‘돌본다’ 는 뜻은 주의 깊게 고려하고 계획해서 도움을 줘 야한다는 뜻으로서‘미리 생각하다’또는‘공급해주다’ 는 의미를 가 지고 있다.‘자기 친족’ 이라는 말은 친구들, 이웃들, 알고지내는 사 람들, 특히 친척들로서 그 사람의 인간관계 영역을 말하고 있다.‘누 구든지’ 는 모든 믿는 자들은 자기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와 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믿는 자는 교회에 그 짐을 돌리지 말고 가능한 그런 과부의 필요를 채워줘야 한다. 믿는 자로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베풀고, 좋은 본을 보이지 않는 죄 를 범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도 대부분 자기 친족을 돌본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 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마 7:9~11). 믿지 않 는 자들도 알고 이행하는 책임을 믿는 자들이 이행하지 않을 때 그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못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하물며 이교도들도 자기들 가운데 노인들과 조상들을 존중한다.

기준을 높게 정하라

그리스도인들의 기준은 높아야 한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격으로 교회를 섬겼던 경건한 과부들에 대한 자격에 그러한 높은 기준이 반 영되어야 한다.

14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 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 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딤전 5:9~10)

이 말씀에서는 과부들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에서 과부들의 공식적 인 자격에 대한 것으로 그 강조점이 전환된다. 초대 교회에는 장로들 과 남자 집사들과 여자 집사들이 있었다(딤전 3:1~13). 여기서 경 건한 과부들은 당연히 교회 일꾼들로 간주되었다. 그들의 봉사와 섬 김에는 교회의 젊은 여자들을 가르치고 상담해주는 것과 아픈 자들 을 병문안 하는 것, 순회 선교사들과 같은 여행자들을 대접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외에 어린이들을 사역하는 일도 그들에게 맡겨 져 있었다. 바울 시대에는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기를 원치 않아 서 시장에 버리는 사례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 남자아이들 은 검투사들로, 여자아이들은 창녀로 훈련받으며 자랐다. 교회 과부 들은 그러한 버려진 아이들을 찾아서 그들을 좋은 가정에 맡겼다. 그 렇게 해서 아이들이 적절하게 양육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오늘 날의 교회에 그러한 일을 하는 경건한 과부들이 있다면 도움이 필요 한 수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여자 교회 과부들이 갖춰야 할 자격으로서 바울이 첫 번째로 꼽은 것은

141 GTY.org

최소한 육십 살이 넘어야 하는 것이다(딤전 5:9). 거의 모든 나라에 서 일반적으로 사람이 나이가 육십이 넘으면 성숙하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제한은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교회 일 꾼으로서의 자격과 관련이 있다(여기서 주된 고려사항은 나이가 아 니라 어떤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신된 아내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9절)라는 말은 말 그대로‘한 남자 의 아내’ 를 말한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결혼을 한 번만 한 여 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14절에서 그는“젊은 과부들은 재혼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으며,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하라고 했다” (고전 7:39). 바울은 그 과부가 남편이 살아있을 때 남편에게 했던 헌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녀는 남편에게 신실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야 하며 그들의 결혼 생활에 아무 흠잡을 것이 없어야 했다.

헌신된 엄마 “자녀를 양육하며” (10절)라는 말은 자녀들이 그녀의 경건한 영향 력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유익을 얻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녀들이 영적인 환경 속에서 양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머 니가 된다는 것은 여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특권 중에 하나 이다. 그 이유는 어머니는 자녀의 성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 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자식 없는 여자를 자식 있는 여

14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자들보다 덜 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키우 는 것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하는 일이며,“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으로 행하는”어머니의 모습은 많은 여자들이 따를 수 있는 좋은 본이다.

환대하기를 좋아하는 “나그네를 대접하며” (10절)라는 말은 선교사들, 부흥사들, 그 외 에 여행 중인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섬긴다는 뜻이 다. 그런 선교사들, 부흥사들은 핍박 때문에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거 처를 찾을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 다. 성경은 뵈뵈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여행 중 인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주는“여러 사람의 보호자” 라는 말도 포함되 어 있다(롬 16:1~2).

겸손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10절)라는 말에서 발을 씻어주는 것은 노 예들이나 하는 천한 일이었다. 고대에는 길에 먼지나 진흙이 많았기 때문에 방문자들에게 발 씻을 물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였다. 그 리스도인들 사이에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겸손의 상징 이었다(요 13:15). 경건한 과부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아 무리 천한 일이라도 그 사람을 도와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준비하고 있으라.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봉사와 섬김은 종종 개 인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일 수가 있으며 아무런 개인적

143 GTY.org

인 유익을 얻지 못하는 일일 수가 있다.

이기적이지 않았다 “환난 당한다” (10절)라는 말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혹은 감 정적으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구제한다” 는 말은 10절과 16절에서만 나온다. 16절에서는 돈, 식사대접, 숙소를 마련해주는 것, 다른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상담을 해주는 것 등을 포함해서 도움을 베풀어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자기 자 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친절하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10절)라는 말은 과부들 을 위해 옷을 만들어 주었던 도르가를 떠올리게 한다. 도르가가 죽었 을 때 과부들은 자기들을 헌신적으로 돌봐주었던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에 슬피 울었다(행 9:39). 이와 같이 여기에 언급된 과부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친절하게 대해야 했다.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재혼을 하도록 권하라

배우자와 자녀들을 돌봐야 할 의무에서 자유해진 나이 많은 과부 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사역들에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풍성한 열매 를 맺는 삶을 살 수 있다. 교회는 그런 과부들이 그렇게 하도록 적극 권장해야 한다. 특히 도움이 필요한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옆에서

14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젊은 과부들에게는 이와는 다른 조언 을 해주어야 한다.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 라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 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딤전 5:11~14)

이혼을 해서 혼자된 젊은 이혼녀를 마음에 떠올려보라. 그녀는 마 음에 상처를 입고 상한 심정이 되었을 수가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녀는“다시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남은 인생을 주 님을 섬기는데 헌신하기로 맹세합니다. 교회 사역을 섬길 수 있도록 해주세요. 다른 여자들과 함께 사역을 섬길 수 있도록 말이에요” 라고 교회에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슬픔 중에 맹세했던 것은 계속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교회는 그러한 요청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좌절을 피하도록 하라 그러한 요청을 거절해야 할 더 실제적인 이유는 젊은 과부 또는 이 혼녀는 초기에 느꼈던 슬픔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재혼하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히며 또 재혼하는 것이 오히려 유

145 GTY.org

익할 수가 있다. 젊은 과부는 전에 결혼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녀에 게 혼자 사는 은사가 없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 젊은 과부에게 돌봐야 할 자녀들이 있으면 특히 더 그렇다.“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 다” (고전 7:9). 그러므로 젊은 과부들이 재혼하는 것이 비영적인 것 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떤 젊은 과부가 그렇게 생각한다 면 그녀는 좌절하게 될 것이며, 주님에 대해 쓴 뿌리를 품을 수도 있 다. 사역을 위해 이집 저집을 방문해서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거나 상 담해주는 젊은 과부는 그 여자들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젊은 과부가 주님과 교회에 대한 쓴 뿌리로 말 미암아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사역에서 그녀가 처했던 위치로 말미암아 사역에 많은 손상을 줄 수가 있다.

만족을 찾으라 지금까지 우리는 젊은 여자들이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결 혼해서, 아이를 기르며, 집안일을 하는 것” 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말 씀을 통해 배웠다(딤전 5:14). 교회는 젊은 여자들에게 그렇게 하도 록 권유함으로서“원수에게 훼방할 거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늙은 여자들이 다양한 사역에서 섬기며, 직장이 있는 엄마들의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돌봐주는 책임을 맡는다면 젊은 여자들과 그들의 자녀들 의 필요가 좀 더 잘 채워질 것이며, 젊은 남자들과 나이든 남자들은 이 사회에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정말 효과적인 방법으

14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로 도와주면서 내면에 만족을 누릴 것이다. 젊은 과부를 돕는 것에 관한 교회의 방침은 과부들에 대한 주님의 긍휼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남편을 잃은 후 재혼을 하지 않는 젊은 여자들이 전부 말썽을 일으키거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고린도전서 7장 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외적인 경우들도 있다. 그러나 경건한 새 남편 은 젊은 과부가 필요로 하는 사랑과 보호를 공급해줄 수 있다.

이 외에도 여자들이 과부들을 돌봐주도록 하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바울은“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 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 (딤전 5:16)고 말하고 있다. 크리스천 여자들 은 교회를 과부들을 보살피는 짐에서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친척관 계에 있는 과부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 여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 은 자기 자신도 과부일 수가 있다. 그들이 꼭 돈으로 도움을 줘야 하 는 것은 아니다. 먹을 것, 거할 곳, 입을 것으로 도와줄 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여자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에 게 기쁨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있는“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그리하면 하 나님 여호와께서 범사에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신 14:29).

147 GTY.org

독신인 경우 결혼은 큰 축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혼의 여부에 상관없이 누 구나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신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이다. 사도 바울은 “결혼은 하나님의 축복” 이라는 진리와는 맞지 않지만, 그래도 인생에 서의 축복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 말 하고 있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 니” (28절)라고 했다. 이때 바울이 사용했던 말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시련” 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결혼한 사람은 마음이 나뉘게 될 것이다(32~35절). 그렇다면 결혼이 정말 나쁜 것 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바울의 말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바울 이 제시한 결혼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살펴보자.

혼자 사는 것을 감사하라

사도 바울은 1절에서“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라 고 말하고 있다. 여기“여자를 가까이 한다” 는 것은 유대인들이 성관 계 맺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 당시 일반적으로 널리 쓰 이던 표현이다. 바울은 성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 다. 그것은 혼자 사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특정 그룹의 사람들이, 혹은 하물며 교회조차도 혼자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생각하거나, 또

14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는 그들이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독신자들에게 무신 경하며, 그들에게 뭔가 대단히 베풀어주는 듯이 행동하며, 무례하게 대한다. 혼자 독신으로 사는 것이 바울 시대에는 더 힘들었다. 비성경적인 유대인들은 아내를 두지 않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가르쳤다. 랍비들에 따르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일곱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아내가 없는 유대인이었다. 두 번째는 자식 없는 아내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창 1:28)고 명령했기 때문에 독신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 순종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이론화 했다. 하나님은“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 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 2:18)고 하셨다. 모든 사람들에게 배 우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독신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독신으로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혈혈단신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사람에게는 친구들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이 다른 동역 자들을 보내셔서 동료에 대한 그 사람의 필요들을 채워주신다. 하나 님 앞에 혼자 사는 것은 좋은 것이며, 명예로운 것이다.

혼자 독신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

독신으로 산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바울 은“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 7:2)고 말하고 있다. 성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

149 GTY.org

하면 성적인 충동에 사로잡힐 수가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은 사 람들은 성적인 유혹 때문에 크게 고통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우리 사회처럼 성적으로 자유롭고 그것을 명예롭게까지 생각하는 곳에서 는 더욱 그렇다. 사람이 짓는 죄 중에 성적인 죄보다 더 깊은 함정은 없다. 성적인 죄보다 결혼과 가정을 더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은 없으며, 그보다 더 마음에 고통과 병을 가져오는 것도 없으며, 그것은 마약과 알코올을 합친 것만큼이나 파괴력이 크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는“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살전 4:3~4)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자기 몸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바울이 독신생활의 위험에 대해 말할 때 결혼이 성적인 욕 구를 분출시킬 수 있는 밸브라는 말로 결혼이라는 제도의 품격을 떨 어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육체적인 욕구 가 있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독신의 은사

바울은 자기가 말하려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말 하고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

15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 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전 7:7~9)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독신이라는 특별한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혼자 독신으로 살도록 준비되었기 때문에 결 혼을 하지 않는다.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것을 즐 기며, 성적인 죄에 유혹을 받지 않으며, 결혼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 주 가끔 예외적으로 유혹을 받는 경우 그들은 그것을 재빨리 통제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은사에 대해“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 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 19:12)라고 말했다. 이 말씀 에서 예수님이 가장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독신 그룹은 주님과 하나 님의 나라를 온전히 섬기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 이다. 고린도전서 7장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성령으로부 터 온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난다. 특히 결혼과 가정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분위기를 고려해볼 때 특히 더 그렇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 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휴가철에 심해지며, 특히 편부 또는 편모 가정 들의 경우에 더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느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에게 독신의 은사를 주셨다면 당신의 인 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라. 그는 사랑이 많으시고 지혜 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최고의 관심사들을 마음에

151 GTY.org

담고 계신다.

만약 그런 은사가 당신에게 없다고 생각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린도전서 7장 8절에서 바울은“결혼하지 않는 사람” 에 대해 말 하고 있다(여기서“결혼하지 않은 사람” 이란 이혼한 후에 결혼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적합하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그는 그런 사람들 을“처녀” (25절, 전혀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와 구분해서 말하고 있 다. 바울은 홀아비였을 가능성이 있다. 9절에서 그는 이전에 결혼한 적이 있든지 없든 지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혼자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 라.” 독신의 은사가 없는 사람들이 결혼 대상자를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느낄 때 좌절할 수가 있다. 만약 당신이 그런 상황에 있다면 문제에 빠져있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라. 그 이 유는 다음과 같다.“좋은(의로운) 대상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 법은 당신이 먼저 그런(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만약 당신이 그런(의로운) 사람이고, 당신에게 독신의 은사가 없다면 그렇다면 결 론은 명확하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배필을 보내주실 것이다. 하나님 이 당신에게 배필을 보내주시지 않으면서 어떻게 당신이 결혼하기를

15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바라겠는가? 일단 당신이 적당한 사람을 찾았고, 그래서 결혼을 하려고 작정을 한다면 성적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오래 끌지 말고 되도 록이면 빠른 시일 내에 결혼을 하도록 하라. 바울도“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다” 고 하였다. 결혼은 성적인 욕구를 채워주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일찍 결혼을 한 것 때문에 생기는 문제 들은 도덕적인 위험에 빠지는 문제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나는 성적 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결혼을 서둘러 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약혼기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이 없다. 아래에는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건 아니건 혼자 사는 사람들 이 성적인 욕구를 절제할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와 있다.

생각을 다스리라 생각은 감정과 행동을 주관한다(잠 23:7). 부도덕한 행동이나 태 도에 관한 음악, 영화, 책, TV프로, 광고들에 당신을 노출시키는 대 신 성경공부에 헌신함으로서 거룩한 진리로 생각을 채우라.

유혹이 있는 상황을 피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유혹에 직접 맞서서 싸우지 말고 유혹을 피해 도 망치라고 말하고 있다(고전 6:18, 딤후 2:22). 가까운 그리스도인 친구와 서로를 책임져 주는 관계를 맺으라. 혼 자 사는 것이나 또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 다. 신뢰할만한, 성숙한, 이해심이 있는 사람에게 정직하게 속마음을

153 GTY.org

자주 털어놓으라.

자족하라 하나님이 당신을 성과 무관하게 살도록 하셨다고 지금부터 인식하 라.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에게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유혹을 허락하 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고전 10:13). 그것을 알 때 당신도 바울처 럼“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빌 4:11).

결혼과 상관없는 사랑을 하라 주안에서 형제자매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이라. 그리고 하나 님의 뜻이라면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주시도록 하라. 결혼 자체를 목표로 삼는 사람들은 종종 적절하지 않는 사람과 서둘러 결 혼하는 실수를 범한다. 적당한 짝을 찾으려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그 대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친히 예비하신 사람에게로 당신 을 인도해줄 것이다.

혼자 독신으로 사는 삶의 유익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서적들과 프로그램들 중에 많은 것 들이 단지 결혼을 할 때까지“참고”기다리라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 다. 그런 책들이 제안하는 것은 마치 독신으로 혼자 사는 것이 정상

15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이 아니라는 식이며, 아무도 독신으로 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천 부모들도 아들 또는 딸들 이 결혼적령기가 되어서도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걱정하고 충 격을 받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녀를 독신자로 디자인하신 것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7장 25~40절은 독 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말이다. 바울은 혼자 독신으로 사는 여러 가지 유익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세상에서 압박을 덜 받는 것 바울이 언급했던 첫 번째 유익은 다음과 같다.“곧 임박한 환난으 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6절). 새로 신자가 되면 불신세상과 어느 정도의 갈등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독신 으로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 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이 힘들고, 결혼한 사람의 경우에는 여러 가 지 문제들과 그로 인한 고통이 늘어난다. 만약 바울이 결혼을 했다면 그의 고통은 몇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가족들을 염려했을 것이고 또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얼마나 염 려하는지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바울의 가족들은 바울 이 매를 맞고, 돌에 맞으며,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들을 때마다 고통 했을 것이며 그에게 혹시 무슨 큰일이나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하였 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집을 떠나있을 때는 누가 그의 가족들을 돌 봐주겠는가? 문제들이 더 늘어났을 것이고, 그가 섬기는 사역의 효 율성은 떨어졌을 것이다. 세파를 거칠 때 결혼한 사람들은 독신으로

155 GTY.org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인생의 짐을 져야한다는 것은 기정사 실이다.

육신의 문제들이 비교적 적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결혼 할 수가 있지 만,“결혼을 하면 육체의 고난이 있다” (28절). 우리에게는 너나 할 것 없이 육체적인 한계가 있다. 죄인이 혼자서 사는 것은 어려운 일 이므로, 다른 죄인과 함께 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간본성의 문제들은 결혼을 하면 두 배로 늘어난다. 자녀들도 태어날 때부터 본 성이 죄악되기 때문에 자녀들이 태어나면 가정 내부에 그러한 갈등 구조가 더 복잡해지며 자녀들 서로 간에, 그리고 부모와 자녀 간에 많은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부관계가 완벽하다 하더라도 어떤 부부든지 어느 정도는 서로에 대해 분노, 이기심, 부정직, 교만, 건망, 무심함이 있 기 마련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독신의 은사를 주셨다면 결혼을 해 서 인간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그로 인한 문제들을 겪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낫다. 결혼은 단순히 도피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인생의 동 반자를 찾았다고 해서 외로움과 성적인 유혹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 다. 결혼을 해야 하는 한 가지 타당한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서이다.

15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이 세상에 대해 좀 더 초연할 수 있다 언젠가 때가 되어 세상이 사라질 때가 오면 이 세상의 슬픈 것들, 즐거운 것들, 사고파는 행위들이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결혼도 사라 질 것이다(29~32절). 신앙 안에서의 결혼은“하나님의 나라 안에 서”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혼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들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부부간에 저절로 결합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은 영원하지 않다. 예수님은“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 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 22:30)고 하셨다. 비록 천사들이 자 손을 낳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는 대개 천사들을 남자로 묘사하 고 있다. 그리고 천사들은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 이유 때 문에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남자라는 성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 문에 우리는 남녀 성별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다 면 왜 하늘나라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없을까?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결혼을 만드신 것은 남자에게 돕 는 배필이 필요했고, 여자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며, 두 사람이 함께 할 때 자녀들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남자에게 여자가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완 벽해지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에서는 여자에게 보호자가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도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구원받 은 자들만이 하늘나라에 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57 GTY.org

어떤 사람들은‘그러나 나는 결혼생활이 행복해. 나는 아내를 사 랑해. 아내는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고 내 인생에 가장 귀한 동반 자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당신은 하늘나라 에서도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며, 그 뿐만 아니라 하 늘나라의 모든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는 누구를 더 사랑하고 누구를 덜 사랑하는 것이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독신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를 어느 정도 맛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 혼을 한 사람이든 독신이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초점을 둬야 할 것 은“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골 3:2). 사도 요한은 모든 신자들에게“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 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 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5, 17)고 경고했다. 그러나 당신은 배우자를 사랑하면서도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둘 수 있다.

결혼에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짐 결혼을 하게 되면 마음을 빼앗기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 바울은 그런 상태를“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 쁘게 할까 하여” (고전 7:33)라고 표현하고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우리에게는 생명보험이 필요하다. 갑자기 죽을 경우 가족들이 살아 갈 수 있도록 말이다. 가족 숫자가 점점 늘면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

15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차가 필요하다. 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돈을 저축하는 것이 필요하 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감정적인, 영적인 필요들에 민감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은“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고전 7:32)라는 생각을 주로 한다. 물론 이 말씀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전부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더 헌신적일 가능성이 더 많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모든 관심사가 하나에 집중될 가능성이 더 많다. 즉, 하나님께 중요한 문제가 그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될 가 능성이 더 많다. 반면 결혼한 사람은 주님을 위한 일과 가족들을 위 한 일 사이에서 마음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마음이 두 갈래로 나눠 진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디 자인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결혼은 그 특성상 사람이 한 마음으로 주님의 일만을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에쿠아도르 키도에 있었을 때 레이철 세인트(Rachel Saint) 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오카 인디언들을 영적으로 훈련해주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녀는 그녀와 동일한 마음을 가진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양가족 없이 독신으로 주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했다. 나는 종종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야말로 가 장 온전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 에게는 그들을 온전하게 해주는 다른 반쪽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159 GTY.org

평생에 걸친 관계에 매이지 말라 바울은 마지막으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 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 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 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 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고전 7:39~40). 다른 말로 하면, 일단 한 번 결혼을 하면 평생에 걸쳐 서 로에게 헌신해야 하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믿는 자들 중에 과부가 된 사람들이 반드시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재혼을 한다면 재혼 상대는 반드시 믿는 자이어 야 한다. 믿지 않는 자와 사귀어서 그를 믿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 의 관점에서 볼 때 타당하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자들 중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전 9:5, 고후 6:14, 신 7:1~4). 바울은 독신으로 살 것을 권하면서,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자기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의 개인적인 생각을 깊 이 고려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고전 1:1)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신과 결혼, 그리고 그 외에 다른 문제들에 대한 그 의 신념과 조언은 주님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고린도전서 7장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특 별히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독신으로 살면 더 행복하고 또 그 렇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결혼이 사람

16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을 그리스도께 깊이 헌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또 혼 자 독신으로 산다고 해서 반드시 그리스도께 헌신적이 된다고 보장 할 수도 없지만, 그러나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당연히 주님의 일에 몰두하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이“생명의 은혜” 를경 험하도록 당신을 부르셨거나 또는 앞으로 부르실 수가 있다(벧전 3:7). 아니면 하나님이“결혼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들” 을 겪지 않 는 삶으로 당신을 부르셨거나 부르실 수도 있다(고전 7:28).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그 상황에 만족하라. 그것이 고린도전서 7장 에서 바울이 네 번에 걸쳐 말하려고 했던 핵심이다(17, 20, 24, 26 절). 또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데 최선을 다하라. 당신이 지금 가꿔가고 있는 사랑 의 관계는 하늘나라에서의 온전한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161 GTY.org

GTY.org

3부 교회를만드신하나님의디자인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남자들 여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섬김의 성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GTY.org

God’s complementary Roles for men & women

6장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남자들

당신이 주일아침에 동네 교회들 중에 아무 교회나 선택해서 예배 를 드리러 나가게 된다면 25년 전과는 다른 점들을 많이 보게 될 것 이다. 당신이 어떤 교파인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여자가 예 배시간에 성도들을 이끄는 모습, 즉 성경말씀을 읽든지 또는 설교를 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적어도 12%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 퍼센 트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줄어들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흐름을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남성위주의 성차별주의는 지옥으로: 기독교 내의 여자들』(To Hell With Sexism: Women in Religion)이라는 책의 한 단원이 여자들의 이러 한 리더십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16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20세기 말의 여성들이 남성우월적인 성차별적 제도에 대해 역사 상 가장 획기적인 혁명을 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조직으 로서의 종교에 혁명을 가하고 있다. 수세기에 걸친 전통을 뒤집고 그들은 권위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들에게 도전하고 있으며, 성경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봉사와 섬김을 창조하며, 신학교로 대거 몰려가 고 있으며, 성직자로서 임명받을 권리를 얻으며, 종교적인 전례문에 서 남성우월주의에 근거한 성차별주의적 언어들을 제거하고 있으 며, 여성으로서의 가치체계를 집대성하고 있으며, 리더십의 지위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여러 가지 활동들 각각을 문서화하고 있다. 아래에는 그 중에 주목해볼만한 내용들이 나와 있다.

R1993년 3월 29일자‘USA 투데이 스냅(USA Today snapshot)’ 에 따르면 가톨릭 주교들, 장로교 사역자들, 개혁 유대 교 랍비들 중에 여성의 수가 12%에 달하고, 감리교 사역자들 중에 여성의 수는 11%에 달한다. 여성 침례교 목사들 중에 여성의 수는 9%, 보수 유대교 랍비들 중에 여성의 수는 2%에 달한다. R 사역자로 서품을 받은 미국 여성들이 1977년에서 1986년 사이 에 두 배인 21,000명으로 늘어났고, 오늘날에는 30,000명 이상의 여성 사역자들이 있다. 21,000명의 수치가 1990년 말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또 다시 두 배인 42,000을 기록했다. R 1987년에 여성들은 여러 가지 직종들 중에 10% 이하에 해당하

165 GTY.org

는 직종에만 종사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미래에는 그 비율이 25~30%라는 폭넓은 수치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신학 을 공부한 여성들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R 신학교 협의회에 의해 정식 인가를 받은 신학교들에 몸담고 있 는 56,000명의 학생들 중에 삼분의 1/3이 여자들이다. 10년 전에 는 그 수치의 1/8에 불과했으며, 20년 전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 었다.

이 통계수치에 더하여 이러한 흐름, 즉 새롭게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 페미니스트 신학은 하나님이 남성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 으며, 하나님은 삼위일체가 아니며, 예수님이 페미니스트였고, 여성 들에 대한 진정한 역사가 성경에서 삭제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성성의 가치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접근하고 있다.‘여성들을 위 한 메가트랜드(Megatrends for Women)’ 의 편집자인 에버딘 (Aburdene)과 나이스비트(Naisbitt)는 여성들은“더 큰 힘을 얻는 것” 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교회 정책들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신호탄이 되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는 성경 해석에서 남성적인 용어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물밀듯하는 것을 보았다. 비단 자유주의 교회들과 그 교파들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에버 딘과 나이스비트는‘성경적인 평등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1 장에서 언급했던 단체)이“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예언자적인, 제사장적인, 중요한 역할들” 을 수행했다고 말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16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인용하고 있다. 복음주의 교회들이 페미니스트들의 맹공격을 속수무 책으로 허용함으로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확고한 발판을 다지게 되었고,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20년 동안에는 복음주의 공동체 안에 그와 비슷한 경향들이 커지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에 두신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즉 사회와 가정의 운 영체계인 권위와 순종의 원리들이 아주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 그 리스도 안에서 일반 신도인 남자들과 여자들이 평등하다는 것에는 아무 이의를 달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특히 지도자 자격을 갖춘 남 자들에게 교회를 이끌도록 하셨다. 여자들에게는 교회에서 섬김과 봉사를 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부여하셨다. 그러나 교회를 이끄는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가장 기본적으로 디자인하신 것은 남자가 권위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남자들과 여자들의 역할을 교 회 안에서 어떻게 정하셨는지를 알아보려면 신약을 펼쳐야 한다. 바 울이 디모데에게 보냈던 서신인 디모데전서에는 그것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디모데서는 전체적으로 교회생활에서의 질서와 관련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도 디모데전서 2장 8절에서 바울은 남자들에게 부과된 의무부터 언 급하고 있다.“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 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이 말씀은 기도하라고 할 때 그

167 GTY.org

명령의 배경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그러므로” 는 디모데전서 2장 1~7절까지 말씀을 받고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 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비그리스도인으로서 권세 있 는 자리에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 고 있다. 공적인 예배 장소에서 잃어버린바 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 는 것은 남자들에게 부과된 특별한 의무이다.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 면 이 말씀에서 구원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 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 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 니라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 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딤전 2:1~7)

8절에서“남자들” 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남자라는 생물학적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대조되는 존재로서의 남자를 말 하는 것이다. 교회 전체가 모여 예배를 드릴 때 남자들은 지도자들이

16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되어야 한다. 유대인 회당에서는 오직 남자들에게만이 기도하는 것 이 허락이 되었고 그러한 관습은 교회에서도 지속되었다.“각처에서” 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 교회의 공식적인 회중 모임을 의미한다(고 전 1:2, 고후 2:14, 살전 1:8). 바울은 교회가 공적인 모임 장소에서 는 어디서든지 남자들을 세워서 대표 기도를 인도하도록 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이 바울이 여자들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 을 선포해도 된다고 했던 고린도전서 11장 5절과 반대라고 주장한 다. 그러나 그 말씀은 고린도전서 14장 34절에 비추어서 해석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은 여자들이 전체 회중이 모인 공공의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 책의 2장에서 우리가 알아보 았던 것처럼 여자들에게도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공식적으로 예배를 위해 모이는 곳에 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성들이 영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갈 3:28 참조). 남자들이라고 해서 전부 무리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런 은사를 받았고, 그런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이 그렇게 했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는 말은 남자 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기도를 할 때 마치 위에 계신 하나님께 바쳐 올리는 것처럼, 그리고 응답받을 준비 를 하는 것처럼 손을 위로 들고 기도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 습이었다(시 134:2). 이 명령에서 강조하는 점은 손을 들어 올리는 동작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예배가 반드시 거룩함으로 드려져야 한

169 GTY.org

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것은 삶의 순결을 표현하는 상징으로서 의미 가 있다. 대중 예배에서 기도를 인도하도록 남자들을 선택할 때 구체 적인 자격들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내적 으로는 화를 내거나 불화를 일으키지 않고 사랑하고, 화평 하는 마음 을 가져야 한다. 전체 회중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은 제사장적인 직 무이다. 구약에서는 회중 모임에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모 든 제사장은 남자들이었다(출 28:1, 32:26~29, 레 8:2, 민 8:16~26).

리더십 교회에서 남자들이라고 해서 전부 지도자의 자리에 앉는 것은 아 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1~7절에서 교회 리더 십의 범주와 자격을 언급하면서 남자들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 고 있다. 바울은 교회 여자들에게 몇 가지 가르침을 준 후에 (우리는 이것에 대해 다음 장에서 배울 것이다)“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 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1절)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은 남자이어야 한다는 것 이다. 부정 대명사인‘tis’ (아무 남자)는 남성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서 2~6절에 나와 있는 남성적인 형태의 형용사들에 맞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여자는“한 아내의 남편” 이 될 수 없으며, 그 시대에는 자기

17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집을 다스리는 자가 될 수도 없었다(5~6절). 여자들은 교회에서, 가 정에서,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역할에는 하 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력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바울은 남자 들과 여자들이 집사라는 직책을 받아 일반적인 영역들에서 광범위하 고 다양한 방법으로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지만(8~13절), 교회의 리 더 직분은 남자만 맡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감독” 은 하나님이 교회를 이끄는 일을 하도록 부르신 남자들을 말한다. 신약에서“감독” “목사” “장로” 라는 말들은 전부 동일한 직 책을 의미한다(행 20:28, 딛 1:5~9, 벧전 5:1~2). 그들이 맡고 있 는 책임들 중에는 다스리는 것, 설교하는 것, 가르치는 것(딤전 5:17)과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약 5:14), 교회를 돌보고, 사 람들에게 본을 보이고(벧전 5:1~2), 교회 정책들을 정하고(행 15:22), 다른 지도자들을 임명해서 세우는 일(딤전 4:14)이 포함되 어 있다. 어떤 교회든지 교회의 특성과 효율성은 그 교회 리더십의 특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 지도자들의 자격의 중요 성을 강조하며 거룩한 직책을 맡아 섬길 만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세 계 각처의 교회들이 그런 기준들을 철저히 지키지 못함으로 말미암 아 많은 문제들을 겪고 있다. 바울이 감독의 자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때 감독의 역할보다 감독의 성품에 더 비중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 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을 감독으로 임명할 때 그가 행한 일보다 그

171 GTY.org

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감독으로서의 자질유무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그가 죄를 짓는다면 그는 전체 회중들 앞에서 책망과 훈계를 받아야 한다(딤전 5:20). 교회는 반드시 주의를 기울 여 리더십의 고결함을 지켜야 한다. 영적인 리더십의 자격은 엄중하게 지켜져야 하며 절대로 양보하거 나 타협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것이 정말 사역을 섬기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보는 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바이블 대학과 신학교들은 사역을 섬길 수 있도록 사람을 무장시킬 수 있고, 교회 제직회와 설교 위원회는 사역을 섬기 는 장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러나 사역을 섬기도록 사람을 부르시고 그 사역에 적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 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르심은 그 사람이 가진 재능들을 잘 분석해서 가장 적절한 직무와 일자리를 제공해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 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섬기게 되는 것 은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 은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왜 감독의 기준이 그렇게 높은가? 그 이유는 사람들은 지도자를 배우고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장차는 백 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호 4:9)고 말했다. 예수님은“제자 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 리라” (눅 6:40)고 하셨다. 성경의 역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지도자의 영적인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한 번

17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도자에게 필요한 이러한 자격들이 자 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로의 자 격과 집사의 자격 사이에 유일한 차이점은 장로에게는 교사로서 가 르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딤전 3:1~7, 8~13 참조). 그 외에 다른 서신들에서도 바울은 성품과 관련된 이러한 자격들 중 대 부분을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의미에서 남 녀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자격들을 갖출 것을 삶 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리더십의 직위를 얻으려는 남자는 필 요한 자격을 이미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바울은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면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1절). 그러나 그런 사모함만으로는 교회 지도자로 임 명될 수는 없다. 2~7절에서 나와 있는 리더십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 에 비추어볼 때 교회에서 사역을 섬길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인지 아 닌지를 정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다.

책망할 것이 없는

감독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조건은“책망할 것 이 없어야 하는 것” (2절)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스 원문에서는 그 사람의 현재 상태가 책망할 것이 없는 상태여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그는 책망할 것이 없을 만큼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에게는 비난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러 나 그것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지었던 죄를 말하는 것은

173 GTY.org

아니다. 과거에 지은 죄가 그의 현재의 삶에 아직도 해를 끼치지 않 는 이상 말이다. 교회 지도자의 삶은 죄나 부도덕으로 인한 흠이 없어야 하며, 그것 은 태도에서, 습관에서, 우연한 행동들에서를 다 포함한 것이다. 그 렇다고 그것이 그가 완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성품에 조금 이라도 결함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경건한 삶의 본이 됨으로서 성도들이 그의 본을 따르도록 해줄 수 있 어야 한다(빌 3:17). 이 자격 기준은 높지만 이중 잣대는 아니다. 왜 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도 지도자이지만 자기 위에도 지도자 들이 있어 그 경건한 지도자들의 본을 따라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 다(히 13:7, 17).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특정한 죄의 경우 그런 죄를 짓는 사람은 교회 지도자가 될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에서 좀 덜 중 요한 역할들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신자들이 책망할 것이 없게 행동하기를 바라신다(엡 1:4, 빌 1:10, 골 1:22, 벧후 3:14, 유 24절). 어떤 사람이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 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죄를 지어도 여전히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 지도자는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악한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를 깎아내리려고 한다. 죄악된 지도자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들의 믿음 이 부족한 것을 합리화할 기회를 줌으로서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 나게 된다.

17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많은 목사들이 죄에 빠지고 사역을 섬길 자격을 잃는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사탄은 영적인 지 도자들의 고결함을 파괴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 로서 사탄은 사역을 파괴하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비난하게 만든 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자들은 주의하여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올 바르게 해야 하며, 성도들은 지도자들이 강건하도록 열심히 기도해 야 한다. 거룩하지 않은 목사는 마치 얼룩이 묻은 유리창과 같다. 그 런 유리창은 밝은 빛을 가린다. 그렇기 때문에‘책망할 것이 없는 것’ 이 영적 지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첫 번째 자격이 되어야 하는 것 이다. 바울은 감독에 대한 다른 자격들을 좀 더 추가해서 언급함으로 서‘책망할 것이 없는 것’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덕적인 자격

바울은 먼저 감독으로서의 몇 가지 도덕적 자격들에 대해 열거하 고 있다.“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 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딤전 3:2~3).

성적인 순결 지도자는 먼저“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그리스 원문에도 동

175 GTY.org

일하다. 그 문구는 기혼자라는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성적인 것과 관련된 도덕적 성품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결혼을 했다면 그는 자기 아내에게만 충실한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딤전 5:9 참조). 그러나 어떤 남자들은 한 여자와 결혼했으면서도 한 여자의 남편 으로서 행동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은“나는 너희에게 이르노 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고 하셨다. 결혼한 또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로서 여자를 향한 음욕에 사로잡힌 남자는 사역에 적합하지 않다. 감독은 반드시 하나 님께서 그에게 주신 아내만을 사랑하고, 원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 자격은 성적인 죄가 만연했던 에베소에서는 특히 중요했다. 성 도들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성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한두 번 정도 는 성적인 죄의 먹잇감이 된 경험이 있었다. 만약 그것이 그 남자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경험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후 5:17). 그러나 회심을 하고 난 후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지 도자가 되는데 문제가 되었다. 만약 지도자가 되고 난 후에 그런 일 이 일어났다면 단연코 지도자가 될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다(고전 9:24~27). 그러한 기준들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영적인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성적인 순결은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 도 바울은 그것을 감독의 자격 중에서 가정 먼저 제시하고 있다. 그 것은 또한 지도자들이 가장 타락하기 쉬운 영역이기도 하다. 한 아내 의 남편이 될 능력이 없는 것은 사역을 섬길 자격이 없는 조건으로서

17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다른 문제들보다 가장 먼저 고려되었다.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는“절제하는”사람이어야 한다.‘절제 (nephalios)’ 라는 말은 그리스 원어로는‘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며’ 라는 뜻이다. 그것은‘정신이 온전한’ 이라는 뜻이며‘취한’ 이라는 말 과 반대되는 의미이다. 팔레스타인은 너무 덥고 건조해서 포도주를 일반 음료수처럼 마셨다. 비록 그런 포도주는 많은 양의 물을 타서 희석한 것이기는 했지만 냉장 보관할 수가 없고 발효성이 있어서 취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줄 수 있고(삿 9:13), 소화불량 시에는 약 대신 사용하기도(딤전 5:23) 했고, 또 죽음의 문턱에 이른 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지만(잠 31:6), 그 당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포도주를 그릇되게 즐기고 있었다. 잠언 20장 1절은“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고 말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지도자라는 위치 때문에 원하던 원하지 않던 다른 사 람들에게 본이 되고 영향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어떤 유대인 지도자 들은 포도주를 절제했다. 제사장들은 포도주를 마신 후에는 하나님 의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레 10:9). 왕들은 포도주를 많이 마시지 않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서였다(잠 31:4~5). 구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영적인 서원 인 나실인의 서원에는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는 내용이 들어 있다(민

177 GTY.org

6:3). 그와 동일하게 오늘날 영적인 지도자들은 술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고, 영적으로 절제 하는 모습으로 본이 되어야 한다. 바울이 성품 중에‘nephalios’ 를 가장 먼저 말한 것은 단순히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을 넘어서서 깨어있으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일 수가 있다. 장로는 분별력과 판단력을 흐리는 것들을 지나치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성경해설자인 윌리암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은“사람의 기쁨은 감각적인 것과 관련되기보다 영혼이 기뻐하는 것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라고 말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지나치게 빠지게 되거나 중독되는 것들 중 하나 에 불과하다. 과식도 설교를 하는 자에게는 죄가 되며, 비판을 받을 여지가 될 수 있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하고 적절하게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훈련 “절제하는”지도자 바로 다음에는“신중하며” 란 말이 나온다.‘신 중하며’ 라는 말은 자기 스스로를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절제하는 남 자는 지나친 것을 피하며 삶의 질서를 유지하고, 자기훈련을 통해 스 스로를 통제할만한 지혜롭고 명확한 분별력을 가지고 사고하는 사람 이다. 그는 삶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신중한”남자는 영적인 것들에 신중하다. 그것은 그 사람이 차갑 고 유머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유머를 절제한다는 것 이다. 잃어버린바 된 이 세상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지옥을 향해 가

17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고 있다. 이런 세상을 대상으로 사역을 섬길 때 경박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확신 있고 일관성 있는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매사를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신중하고, 열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판단한다. 그는 빌립보서 4장 8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을 따른 다.“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 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의 다스림을 받으며, 일시적인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다.

단정하며 “신중하며”다음에 나오는 것은“단정하며” 이다.“단정하다는 것” 은 질서정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삶의 모든 영역들을 체계 적이고 질서 있게 다룬다는 의미이다. 그는 마음이 잘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생활면에서도 잘 훈련되어 있다. ‘단정하며’ 의 그리스 원어는‘kosmios’ 로서‘kosmos’ 라는 어원 을 가지고 있다.‘kosmos’ 의 반대말은‘chaos’ 로서 혼돈을 의미한 다. 영적인 지도자는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생활을 해서는 안 되며 질서 있게 생활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의 일이 주로 행정, 감독, 일정계획, 우선순위 설정에 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계획만 하고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며 이

179 GTY.org

런 저런 것들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에 게 사역을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나는 주어진 임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목표를 체계적으로 달성하지 못함으로서 효과적으로 사역 을 섬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한 무질서는 지도자로 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한다.

환대 “환대” 는 그리스어‘xenos’ (나그네)와‘phileo’ (사랑하다 또는 사 랑을 보이다)의 합성어이다. 그 의미는‘나그네를 사랑한다’ 는 뜻이 다. 이처럼 성경적인 환대는 친구를 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에 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12~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 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 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나그네들을 섬기려면 사생활을 공개해야 하므로 자신의 개인적인 허물과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 방이 당신의 호의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나그네들을 대접할

18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때는 지혜와 분별력을 가질 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마 10:16 참 조). 주님은 나그네를 환대하고 섬김으로서 사랑을 나타내 보이라고 말하고 있다(롬 12:13, 히 13:2, 벧전 4:9). 나는 나그네를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책임에 대해 깊이 묵상하면 서 하나님이“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외인이었으며, 세상에서 아무 소망 없이 살아가던 우리들을 하나님 의 가족으로 받아주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엡 2:12). 하나님 이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을 환영해주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우리 집 에 오는 나그네들을 영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에게 있 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아닌가? 우리는 그저 하나님 의 청지기일 뿐이다.

숙련된 교사 “가르치기를 잘하며” 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인‘daktikos’ 는 신약 성경에 두 번 나온다(딤전 3:2, 딤후 2:24). 감독은 숙련된 교사이어 야 한다. 그것이 감독이 집사들, 그리고 다른 성도들과 다른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바울이 도덕적인 자격들 중간에 이 자격을 끼워 넣었는지 궁금하게 여긴다. 바울이 그렇게 한 이유는 교사에게 도덕 적 성품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의 가르침이 별 효과를 거둘 수 없 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사람의 말과 인격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는“사람이 마음에 품 은 대로 말하며 또 그 말한 대로 행동한다” 라고 말했다. 바울은 가르치는 일의 중요성을 디모데에게 거듭 상기시켰다(딤

181 GTY.org

전 5:17, 딤후 2:2, 15).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진리들을 다 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은 모든 신자들에게 있지만, 그렇다 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전 12:29). 그러나 교회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런 은 사가 있어야 한다. 어떤 점을 살펴봐야 그 사람이 숙련된 교사인 것을 알 수 있는가? 아래에 몇 가지를 소개한다.

R 신뢰할만하며 자기가 가르치는 대로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딤 전 4:12). R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야 한다(딤전 4:14, 딤후 1:6). R 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딤전 4:6). R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딤후 2:24~25). R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딤전 4:7, 6:11). R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딤후 2:15). R 망령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딤전 4:7, 6:20, 딤후 2:16). R 용기가 있어야 하며 신념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딤전 1:18~19, 4:11, 13 참조).

술을 즐기는 자가 아니어야 한다 “술을 즐기는 자” 의 그리스 원어인‘paronios’ 는‘술을 마시는 자’ 라는 뜻이다. 이것은 술고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술고래는 당연히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여기서 문제는 그 사람에 대한 평

18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판이다. 사람들이 그를“술을 즐기는 자”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절제하다’ 는 말의 그리스 원어에는‘술에 취하지’않은 사람이라 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우리는 앞서 배웠다. 반면에‘Paronios’ 는사 람의 행실에 관한 말이다. 술집, 선술집, 여관 등에 자주 출입하는 사 람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집에 없을 때가 많고 술과 연관이 있는 시 끄럽고 소란스러운 환경에 자주 가는가 하는 것이다. 술을 즐기는 사 람은 사역에 적합하지 않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들과 어울 리기보다 악한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림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 은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는 논란을 잠재울 때 주먹으로 또는 다른 폭력적인 방법으로 잠재워서는 안 된다.“구타하지 않으 며” 의 그리스 원어는‘일격을 가하는 자’또는‘한 대 치는 자’ 라는 뜻이다. 감독은 쉽게 혈기를 내서는 안 되며 주먹 등으로 폭력을 쉽 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혈기나 폭력과 관련된 이 자격은“술을 즐기 는 것” 과 깊이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폭력은 일반적으로 술을 지나 치게 마시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지도자는 차분한 태도로 온유한 마음으로 모든 일들을 처 리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딤후 2:24)라고 말했다.

183 GTY.org

관용하며 지도자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온유” 해야 한다.‘온유하다’ 의 그리스 원어는‘신중하고, 다정하고, 삼가며, 은혜로우며, 인간적인 허물과 실수를 쉽게 용서한다’ 는 뜻을 담고 있다. 온유한 지도자는 선한 것을 기억하고 악한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저지른 잘못을 쉽게 잊어버린다(고전 13:5 참조). 나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과 그로 인한 불쾌한 기분을 참지 못해 결국 사역을 떠난 사람들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저지른 잘못들을 말하지 않고 또 생각조 차 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연습하라. 그런 생각은 사역을 생산적으로 섬기지 못하게 하고, 따라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런 생각은 당신의 마음을 분노와 상처로 채울 뿐이다.

다투지 않으며 “다투지 않으며” 의 그리스 원어는 그 의미가‘평화로운’또는‘싸 우기를 거리끼는’ 이다. 그것은 육체를 사용한 폭력적인 싸움과는 크 게 관련이 없다. 리더십에서 싸움을 잘 일으키는 사람은 조화롭게 연 합하는 분위기를 깨뜨린다.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역을 부패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돈을 사랑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자기를 부자로 만들어줄 수 단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나 자

18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신을 지키기 위해 한 때 사용했던 간단한 원리가 있다. 그것은 당신 이 섬기는 사역에 값을 매기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구하지도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재정적인 선물을 준다면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함으로 받아도 된다. 그 러나 만약 당신 스스로 돈을 추구한다면 그 돈이 하나님께로부터 오 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노력으로 번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을 것 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앗아갈 것이다.

가정에서의 리더십

디모데전서 3장 4~5절에는 감독이“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 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라고 말씀하 고 있다. 감독이 될 사람을 뽑을 때는 그 사람의 가정생활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그가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기 전에 먼저 가정에 서 영적인 리더십을 잘 발휘하는지를 봐야 한다. ‘manage(다스려)’ 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에는‘감독하다’또는 ‘~에 대한 권위를 가지다’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서는 감독이 교회를 이끄는 것에 대해 그 동일한 그리스어가 ‘rule(다스리다)’ 는 말로 나와 있다. 감독이 교회를 다스릴만한 능력 이 있는지는 가정을 다스리는 모습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러므로 그는 교회 지도자가 되기 전에 먼저 가정에서 강력한 영적인

185 GTY.org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많은 남자들이 집안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지만 사실은 집안을 제 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바라는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 고 있다. 한 남자가 가정을 잘 다스린다는 것에는 가정을 부양하는 책임을 잘 이행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어떤 남자가 영적으로 그리 고 도덕적으로 감독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일 수 있고, 잘 가르 치기도 하며, 믿는 아내를 두고 있고 자녀들도 그의 지도력을 잘 따 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만약 그가 재정적으로 가정을 제대로 부양하 지 못하면 영적인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청지 기 자세는 남자에게 리더십이 있는지 없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테 스트이다. 그의 가정은 그가 리더십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 는 장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 지도자는“자녀들이 공손하게 복종하도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자격은 아직 슬하에 자녀가 없는 남자들은 지도자로 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자녀들이 앞으로 생길 것이라는 가정 하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복종하게 하는’ 이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 의 의미는 군사용어로서 계급이 높은 상관들에게 적절하게 복종하는 자세를 말한다.‘공손함’ 이라는 말에는 예절, 겸손, 역량이라는 의미 가 들어있다. 그 말은 또한‘존경’또는‘당당함’ ‘품위 있음’ 이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 감독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의 존경받을 만하게 처신을 해야 하며, 성품이 잘 훈련되어서 부모에게 영예로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디도서 1장 6절에서 바울은“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

18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믿는’ 이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 그 전후문맥상 복음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감독의 자녀들은 감독이 설교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믿 어야 한다. 만약 감독의 자녀들이 불신자라면 사람들은 그 감독이 섬 기는 사역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사람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집에서 식구들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 사람은 자기 가족을 잘 돌보는가? 그는 가족구 성원들 각각에게 마음을 쏟는가? 그는 가정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가? 그는 자기의 믿는 바대로 살아가는가?

영적인 성숙

바울은 이 말씀에서 겸손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래도 영적인 교만을 주의하라고 하였다.“감독은 새로 입교 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 이요” (딤전 3:6). “새로 입교한 자” 라는 말은 그리스 원어로는‘새로 심겨진’ 이라는 뜻이다. 새로 신자가 된 자이거나 또는 세례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자를 감독으로 세워서는 안 된다. 감독은 신앙이 성숙한 자라야 한 다. 성숙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성숙의 기준은 교회별로 다양 하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감독은 자기가 이끄는 다른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더 성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187 GTY.org

“교만하여져서” 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연기에 둘러싸여서’또 는‘부풀어서’ 라는 의미이다. 그것은‘교만으로 가득해졌다는’뜻이 다. 새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거짓 영성으로 교만을 포장할 수 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새로 신자가 된 사람들을 지도자로 앉히지 말라고 할 때 그의 가르 치는 능력, 리더십 자질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부족한 것을 문제 삼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을 영적으로 성숙한 다른 경건한 사람들과 함께 영적인 지도자로 높이는 것은 그를 교만 에 빠지게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영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할 수 있 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말을 교만에 빠진 지도자들이 비효율적이 되거나 죄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 나 바울은 교만에 빠진 지도자들이“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 것이라” 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마귀 루시퍼에게 내렸던 심 판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교만에 빠진 지도자는 정죄를 받아 높은 지 위로부터 강등당하는 결과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 미숙한 상태에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는 바람에 자기 자신의 영성을 지나치게 높게 여기고 교만으로 마음이 가득해진 자들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똑같이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한 교만을 제거해줄 수 있는 해독제는 영적으로 성숙한 지도 자라는 표시인 겸손이다(마 23:11~12). 교회는 주님이 나중에 잘라 내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서는 안 된다.

18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공적인 평판

감독의 경건한 성품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딤전 3:7).“평판” 의 그리스 원어는‘marturia’ 로서 이 말에서‘matyr(순교)’ 라는 말이 파생되 었으며, 그것은 분명한 간증을 말한다. 교회를 이끄는 일을 하도록 선택받은 사람은 지역공동체 내에서 의로움, 사랑, 친절, 관용, 선한 일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신앙철학에 동의하며, 그가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 며, 그는 교회 밖의 외부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고 있어야 한 다. 지역공동체가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가 어떻게 지역공동체 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는가? 지역공동체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비난과 욕만 돌아가게 할 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욕되게 하는지 가 히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을 뽑을 때는 평판에 아 무 흠이 없는 자를 세워야 한다. 이것은 장로가 된 후에 지은 죄만 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지은 죄로서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을 나쁘 게 하는 모든 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 사람을 영적인 지도자로 앉히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지역사회의 평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 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

189 GTY.org

게 비쳐주고 있는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지역사회 사람들은 그 사람 의 삶이 아무 비난할 것이 없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사람에게서 경건한 성품을 반드시 볼 수 있어야 한다. 감독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사탄의 함정” 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탄은 영적인 지도자들을 함정에 빠뜨려서 그들의 신용과 고결함을 파괴시키려고 애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처럼 감독들도 약점과 허물 이 있고 때로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 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약 3:2). 감독들은 원수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주의해야 하며 분별력 있게 행동해야 한 다. 그렇게 함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 수 있다.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음 오늘날의 여러 교회 지도자들은 사업가, 행정가, 연예공연자, 심리 학자, 철학자, 회장, 변호사와 같은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다니지만 막상 그런 역할들은 성경이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과 목사들이 갖 춰야 할 특징들이라고 말했던 것들과는 대조적이다. 예를 들면, 디모 데후서 2장에서 바울은 영적인 지도자들을 묘사하기 위해 일곱 가지 비유들을 사용했다. 그는 사역자를 교사로(2절), 군인으로(3절), 운

19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동선수로(5절), 농부로(6절), 일꾼으로(15절), 그릇으로(20~21절) 로, 노예(24절)로 비유했다. 그 각각의 이미지들은 희생, 수고, 섬김, 힘든 일을 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한다. 그런 비유들은 영적 지도자들이 가진 다양하고 복잡한 책임들을 웅변해주고 있다. 그런 말들 중에 지도자의 위치를 화려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 다. 그 이유는 지도자의 자리는 화려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회 리 더십은 교회 귀족이라는 신분을 부여해주는 망토가 되어서는 안 된 다. 그것은 서열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도 아니고, 가문에서 이어받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성공적인 사업가 나 재정적으로 부유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식, 교육, 재능을 어느 정도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성품적으로 흠이 없고, 영적으로 성숙하며, 가르치는 기술이 있고, 겸손한 자세 로 기꺼이 섬기려는 마음이 요구된다. 하나님은 리더십이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는 역할이 되도록 만드셨 다. 교회 리더십은 사역이지 경영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들이 절 대군주처럼 통치할 것이 아니라 겸손한 종으로서, 화려한 옷을 걸친 유명인사들이 아니라 힘든 일도 마다않는 하인들로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목자들로서 다스리라고 부르셨다. 하 나님의 백성들을 이끄는 사람은 무엇보다 희생, 헌신, 순종, 겸손에 서 본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은 여러 가지 최신경향들을 추구하지만 성경적인 리 더십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것보다 더 절실한

191 GTY.org

것은 없다. 속이 깊은 사람은 오늘날 리더십의 현실이 전에 없는 바 닥 수준이며, 페미니즘적인 가치들의 가차 없는 행진을 중단시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미국 대통령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s)의 말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비판을 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아서는 안 된다. 강한 사람이 어떻 게 실족하는지 또는 위업을 달성한 사람이 어떤 점에서 좀 더 잘할 수 있었는지를 지적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아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 영역에 속해서 수고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고 신뢰를 얻어야 한 다. 그 사람의 얼굴은 피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다. 그 사람은 노 력하며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실수를 하기도 하고 또 허물을 자주 드러내기도 한다.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는다면 허물 과 실수가 드러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실제로 뭔가 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 사람은 열정이 있고, 헌신이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최악의 경우 설사 그가 실패를 하더라도 그는 최소한 도전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실패하 는 것이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과 도토리 키 재기만 하는 것보다 비록 실 패 하더라도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기 위해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이 훨씬 낫다.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크게 즐거워하지도 크게 고통 받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은 승리도 퇴각도 없는 회색지대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19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7장 여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페미니스트들이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주장할 때 디모데 전서 2장 9~15절만큼 자주 도마에 오르는 성경말씀도 없을 것이다. 어떤 페미니스트 책들은 이 중요한 말씀에 대한 역사적, 전통적 해석 을 반박하는데 책 전체를 전부 할애하고 있다(예를 들면, 크로거(R. C. Kroeger)와 크로거(C. C. Kroeger)의『I Suffer Not a Woman)』 ). 데이비드 파우슨(J. David Pawson)은 복음주의적, 은사주의 페 미니스트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해석들을 아래와 같이 압축하여 제시 하고 있다.

11절 : 당신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그들도 선생들이 될 수 있도록

193 GTY.org

해야 한다.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낼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서 는 안 된다. 12절 : 나는 여자들에게 성경을 배울 교육적인 기회가 지금까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맡기 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이 권위주의적인 태 도로 다소 무지한 생각을 주장하면 그것이 남편을 깎아내 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13절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자마자, 아담 에게 절친한 동료이자 동등한 동역자인 여자를 즉각 공급 해줘서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세상을 다스리 는 이 두 가지 역할을 아담과 함께 짊어질 뿐만 아니라 아 담을 보완해줘서 아담이 좀 더 완전한 존재가 되게 하게 했다. 14절 : 사탄은 이브를 속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아담 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으며, 단지 아 담을 통해서 그것을 들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 문에 그의 죄는 그녀의 죄보다 더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 는 죄였다. 15절 :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여자를 좀 더 부드럽게 대하며 말했던 이유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 을 물리칠 특별한 아기를 여자의 후손 중에 보냄으로서

19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이브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 가운데서 죄를 지었다는 사 실을 인정하고 밝혀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서 그녀의 부당한 불명예와 수치를 벗겨주며 동시에 모든 사랑과 믿음의 거룩한 여인들을 부당한 불명예와 수치로 부터 구원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레첸 게블라인 훌(Gretchen Gaebelein Hull)과 같은 사람들은 이 말씀과 고린도전서 11장 2~16절과 14장 33~35절과 같은 말씀 들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런 말 씀들이 해석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훌은 하물며 에베소서 5 장 22~24, 골로새서 3장 18절, 베드로전서 3장 1~6절도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들로 분류한다. 그녀는 성경이 남자들에게 머리가 되라 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다 보니, 남자들이 머 리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그런 말씀들을 사실상 외면해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훌은“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우리는 의 미가 분명하지 않은 말씀들에 무리하게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이유 때문 에 우리가 그 성경말씀들에 대한 해석을 일단 뒤로 밀어놓는 것은 얼 마든지 타당한 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모든 신학자들이 그러한 방식의 해석을 따른다면 사탄은 성 경의 진리를 공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탄은 그런 말씀들에 혼돈 을 불러일으켜서 학자들이 그런 말씀들을“해석하기 어려운 성경말 씀들” 로 분류하도록 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존 로빈슨(John W.

195 GTY.org

Robbins)은 그러한 방법이 초래하는 비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성직을 임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 의 주권에 대한 반발이며, 아주 심각한 질병이다. 여성들에게 성직 을 임명하는 것은 교회를 훼손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질병과 질병으로 인한 증상들을 신속히 진단을 하고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 으면 그 여자를 죽게 할 수도 있다. 그 질병은… 성경의 완전함을 거 부하는 것이다. [어떤 신학교 교수는] 바울이 자기가 했던 말에 반대 되는 말을 했을 가능성을 수용하고 있다. [또 어떤 교수는] 성경에“자가당착 적인 면” 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어떤 교수는] 감독의 자격에 대한 성경의 요구들 중에 자기가 앞으로 별로 유념하지 않을 것들을 선택해서 골라내고 있다. … 그렇다면 성경의 다른 말씀들, 예를 들면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 것에도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 말씀에 대한 해석에 가해진 것과 같은 똑같은 해석상의 공격이 가해진다면 우리의 신학에서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떤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바울이 단순히 문화적인 문제만을 다루고 있으며, 바울은 그 가르침 을 단순히 문화적인 것 이상으로 적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크로거(R. C. Kroeger)와 크 로거(C. C. Kroger)가 있다. 피터 존스(Peter Jones)는 그들의 책

19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다』 (I Suffer Not a Woman)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지주의의 오류를 드러내는 바울의 명확한 성경적인 답은 R. C. 크로거와 C. C. 크로거가 바울의 답을 거부하고 바울의 답이 1세기 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아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작가들은 이 동일한 영지주의 이단 이 뉴에이지 가르침을 통해 현대 교회와 현대 사회에 스며들면서 복 수를 꾀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바울의 그 가르침이 과 거 어느 때보다 오늘날에 더 맞는 것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성경은 시대를 초월한다. 따라서 성경은 오늘날에도 잘 통한다. 하 나님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2천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운동력이 있고 살아있다(히 4:12). 페미니스트들이 뭐라고 주장하든지 간에 나는 디모데전서 2장 9~15절만큼 여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며, 여 자들에게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말해주는 성경말씀은 없다고 생각 한다. 바울이 에베소교회 여자들에 대해 디모데에게 했던 말을 쭉 살 펴보면 바울의 명령들과 규례들이 여자들을 남자들보다 더 열등하다 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축복을 주려는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베소교회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여자들의 역할이었다. 교회가 거짓 교리와 거짓 지도자들에 전염되는 것은 놀

197 GTY.org

라운 일이 아니다. 어떤 여자들은 순결하지 못한 삶을 주도하며(딤전 5:6, 11~15, 딤후 3:6 참조), 외설적인 것들을 예배에까지 끌어들 였다. 어떤 여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것처럼 하면서 부유함 과 자기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성적이고 유혹적인 외모로 예배드리 는 사람들의 마음을 뺏고 집중력을 흩뜨렸다. 또 어떤 여자들은 공식 적인 선생이 되고 싶은 갈망으로 교회 내에 남자들의 역할을 강탈해 갔다. 그와 같은 행동들은 그들의 악한 의도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예배가 교회생활의 중심이기 때문에 예배는 디모데가 에베소교회에 서 관리해야 할 것들 중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1~8절에서 전도를 위한 기도에 대해 말 하면서 전체 예배에 대한 주제로 돌아간다. 그는 전체 예배와 관련해 서 두 가지 잘못된 점들을 바로 잡고 있으며, 교회가 전체 예배를 위 해 모일 때 여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시대를 초월한 지침을 주고 있다.

옷을 입는 것에 대한 교정 바울은 먼저 디모데에게“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 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 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 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딤전 2:9~10)고 말하고 있다. 이 원리는 바울 시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적용가능하다.

19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몇몇 고대 작가들은 바울 시대에 로마 문화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옷을 입었는지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그런 옷차림은 에베소교회 여자들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세기 풍자시인인 유베 날리스(Juvenal)의 시에는 로마제국 사람들의 일상이 잘 나와 있다. 그의 여섯 번째 풍자 시에는 여자들이 외모에 집착한다는 말이 나와 있다.“그런 여자들은 자기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으며, 아무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녹색의 에메랄드 목걸이를 목 에 걸고, 큰 진주를 귀에 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과시하려고 할 때 아 주 중요했다. 그럴 때 그녀는 속으로 다른 남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끝없는 헛생각들과 망상을 즐긴다. 자기 남편은 안중에도 없다.” 감독인 플리니(Pliny)는 한 때 로마황제 칼리귤라(Caligula)의 아 내였던 롤리아 폴리나(Lollia Paulina)에 대해 적고 있는데, 그녀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백만 달러가 넘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 은 에메랄드와 진주로 덮여있었고, 그녀는 그 옷의 값어치를 입증하 기 위해 영수증을 들고 다녔다. 고대에 부요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흉낼 수 없 는 옷을 입고 다녔다. 오늘날의 서구사회에서는 괜찮은 옷들이 일반 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만한 적정가격인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 다. 바울 시대에 부유한 여자들이 입었던 값비싼 옷들은 칠천 데나리 온에 달하기도 했다(일 데나리온은 평균 노동자 한 사람의 임금에 해 당하는 것이었다). 만약 어떤 여자가 그런 비싼 옷을 입고 예배에 참 석한다면 그 여자는 전체 예배 분위기를 망칠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 을 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9 GTY.org

부유한 여자들은 옷뿐만 아니라 머리도 값비싼 보석을 사이사이에 넣어 화려하게 꾸몄다. 그래서 바울이“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하지 말고” (딤전 2:9)라고 말했던 것이다. 성경은 여자들이 단순히 머리를 땋는 것이나, 금, 진주, 또는 어느 정도 비싼 옷 등을 입지 말 라고 금한 것이 아니다. 솔로몬의 신부(아 1:10)도, 잠언 31장 22절 에 나오는 덕망 있는 여자도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을 했었다. 그러나 성경은 잘못된 동기로 그렇게 치장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금으로 외모를 치장하는 것

값비싼 옷들과 보석으로 치장하는 것은 교회에 나올 때 여자들의 복장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한 옷차림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약하게는 교회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며, 심하게는 남자들을 유혹하 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모든 마음을 쏟게 하려는 예배의 목 적을 파괴하는 것이다. 크리스천 여성은 화려한 외모로가 아니라 경 건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디모데는 여자들이“옷을 단정하게 입도록”가르쳐야 했다.‘단정 하게’ 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kosmio’ 로서 이 말에서‘cosmetic’ 라는 영어단어가 유래되었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배열하다, 질서 정연하게 배치하다, 준비되게 하다’ 이다. 여자들은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준비에는“단정한 옷 차림” 이 포함된다.‘단정한’ 이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kosmeo’ 의 형용사 형태로서‘질서정연한’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옷을 입

20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는다’ 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 옷을 입는 것뿐만 아니라 품행과 행동까 지 전부 포함한 포괄적인 의미이다. 여성들은 예배에 올 때 단정하지 못한 품행이나 옷차림으로 올 것이 아니라 온전히 준비된 상태로 예 배에 와야 한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옷차림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실제 말하려고 하는 것은 태도이다. 단정한 외모는 마음의 자 세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준다. 그렇다면 옷을 단정하게 입는 것과 관심을 끌기 위해 옷을 입는 것 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답은 당신의 마음이 무엇을 의도하는 가에 달려있다. 당신은 옷을 입는 방식과 관련해서 자신의 동기와 목 표를 살펴봐야 한다. 당신은 여성으로서의 은혜로움과 아름다움을 반영하려는 마음으로 옷을 입는가? 남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나타 내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가? 당신의 옷차림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겸손한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는가, 아니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 려고 하는 것인가? 부유함과 아름다움을 과시하려는 것인가? 한 술 더 떠서, 남자들을 성적으로 유혹하려는 것인가? 적지 않은 목사들 이 성적인 죄에 빠지는 비극은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모든 여자들이 전부 순수한 동기로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는다면 당신은 옷차림 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예배에 헌신되어 있 다면 그 마음은 자연히 옷차림에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201 GTY.org

경건한 태도

당신은 예배에 대해 두 가지 경건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소박함과 정절” (딤전 2:9)이다. 9절에 나오는‘소박함’ 이라는 말은 겸손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소박함이다. 그 말에는 부끄럽게 여긴 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여자라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이 아 니라 어떤 방식으로건 정욕을 부채질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이 하 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경건 한 여자는 그러한 유혹의 근원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 다. 그 말은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 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혹자는 그 말이“그런 것으로 인해 죄의 식을 느끼는 것조차 슬퍼하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경건한 여자는 죄를 아주 미워한다. 그러므로 경건한 여자는 다른 사 람들을 죄짓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피하려고 할 것이다. ‘정절로’ 라는 말은 자기절제를 말한다, 특히 성적인 욕구에 대한 자기절제를 말한다. 여자들은 성적인 욕구를 절제해야 하며 특히 예 배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 어떤 실용 소책자는 아래와 같은 사전적 정의들을 생각해보도록 함으로서 이 두 가지 말에 대한 이해 를 돕고 있다.

R 소박한(Modest) : 단정한 행동과 단정한 옷차림에 유의하는 것, 조용하고 겸손한 외모와 스타일 등, 신체를 노출하지 않는 것, 과시하거나 또는 허영심에 차지 않은, 주제넘게 행동하지 않는, 덕

20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이 있는, 부끄러움을 타는, 삼가는, 정숙한. R 단정한(Proper) : 특별히 잘 맞는, 적당한, 기준에 잘 맞는, 정 확한, 딱 맞는, 단정한. R 정절한(Discreet) : 겉치레로 과시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는 것, 판단력 있어 보이는 것, 말과 행동에 있어서 신중한, 주의하는, 조심 하는.

그 소책자는 아래와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몸은 하나님께서 그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을만한 매력이 있다(그리고 만약 우리 가 결혼을 한다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배우자도 기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의 몸을 과시하라고 한 적이 없다(롬 12:1).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 치는 영향을 깨닫지 못하거나 또는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도 주님에 대한 사랑과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경건한 간증

바울은 여성들의 간증이 일관성이 있는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203 GTY.org

있었다. 그러한 간증들은“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여자들)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선행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딤전 2:10).‘경외 한다 하는’ 에서‘하는’ 이라는 그리스 원어는‘epangello’ 라는 말로 서‘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이라는 의미이다.‘하나님을 경외한다’ 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한다는 기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 다.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모든 여자들은 태 도, 외모, 행동이 그 헌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 한 여자는 9절에 나와 있는 외모를 꾸미는 것으로가 아니라 선행으 로 단장을 해야 한다.‘선행’ 은 겉모양만 좋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선행’ 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화롭게 하며, 두려워한다. 그 러므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는 누구든지 경건하 게 행동해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 여성들이 펼치는 교회 내의 자유주 의 운동이 가진 큰 문제를 지적해주고 있다. 여자라면 누구를 막론하 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주장하면서 여자의 역할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하에 교회에 주신 하 나님의 질서를 파괴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거짓 경외심은 하나님을 예배드리러 오는 그들의 태도에서 드러날 것이다.

권위와 관련된 오류들을 고침 다음으로 바울은 에베소교회 여자들 중에 가르치는 역할을 강탈하

20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려는 여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2장 11~14절에서 그 는“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 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고 말한다.

여자들은 배우는 자들이다

바울은 여자들을 예배시간에는 조용히 배우는 자들로 정의함으로 서 잘못된 점을 고쳐주고 있다. 여자들은 예배시간에 교사가 되어서 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차단 된 것도 아니다. 11절에 나오는 동사는 그리스 원어 ‘manthano’ 의 명령형으로 이 말에서‘제자(disciple)’ 라는 말이 파 생되었다. 바울은 여자들이 배워야 하며 또 제자로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디모데전서에서 이 부분은 교회 운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딤전 3:15 참조),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배운다 는 것은 교회 전체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행 4:42). 어떤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가르침과 예배는 서로 배타적 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지식과 그의 말씀은 예배를 촉진시 켜준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여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 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바울 당시 유대적인 배경을 가진 사 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에베소교회의 어떤 사람들의 경우, 딤

205 GTY.org

전 1:7 참조). 1세기 유다이즘은 여자들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여자들이 회당에 나아가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에게 배울 것을 장려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고대 종교들도 (오늘날에 존재하는 일부 종교들도) 여자들이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불행히도 과거에 여자들을 그렇게 대우했 던 것이 오늘날 페미니즘을 계속 선동하는 근거와 원인이 되고 있다. 왜 에베소교회의 어떤 여자들이 다스리는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 하면서 자기들이 억압받는다며 지나치게 반응을 했는지 그 이유를 에베소의 문화가 전통적으로 여자들을 대우했던 방식에서 부분적으 로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여자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을 꾸짖었다. 그러나 바울은 여자들을 꾸짖기에 앞서 먼저 여자들에게도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성경적인 설문조사

사실, 여자들과 관련된 유대 고유의 전통들은 구약에서 온 것이 아 니다. 사실 구약은 여자들이 남자와 영적으로 동등하다고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R 여자들에게도 남자들에게 주어진 것과 똑같은 책임들이 주어졌 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출 20장, 십계명은 남자들과 여자들 둘 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는 것(신 6:6~7)이었다. 잠언 6장 20절은 남자와 여자 둘 다 자녀들에게 하

20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나님의 법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그것은 남자 와 여자 둘 다 하나님의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남 자들과 여자들은 둘 다 종교 활동에 참여해야 했다(예를 들면, 출 12장과 유월절). R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보호를 받았다. 어떤 사람이 여자에 게 죄를 지었을 때 받는 벌은 남자에게 죄를 지었을 때 받는 벌과 동 일했다(출 21:28~32 참조). 하나님은 남자의 생명과 여자의 생명 을 똑같이 존귀하게 여기셨다. R 여자들은 남자들과 똑 같은 서원을 했다. 구약에서는 나실인의 서원을 가장 고귀한 헌신으로 여겼다. 그것은 세상과 구분되어 하나 님께 일생을 온전히 바친다는 서원이었다. 그런데 남자들뿐만 아니 라 여자들도 나실인의 서원을 할 수 있었다(민 6:2). R 여자들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다. 하 나님은 구약에서 여자들과 직접 만나셨다. 하나님은 여자들과 대화 할 때 남자를 통해서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주의 천사(성육신 이 전의 그리스도)가 하갈과(창 16:8~13) 삼손의 어머니(삿 13:2~5)에게 나타났다.

비록 구약에서 여자들이 남자들과 영적으로 동등하기는 했지만 그 렇다고 해서 역할이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R 여자들이 지도자로서 섬기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또는 유다에는 여왕이 없었다(아달랴의 경우는 지도자의 자리를 강탈한 것이었

207 GTY.org

다). 드보라가 사사로서 섬겼던 것은 사실이지만(삿 4:4~5:31), 그녀의 경우는 좀 특이했다. 로버트 소시(Dr. Robert L. Sancy)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특이한 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일반적인 질서에서 벗어난 예 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남편과 아버지가 가정에 없을 때 그 집 안의 여자가 그 가정의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 로 인해 남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특이한 경우에 여자 가 머리의 역할을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드보라를 사용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여자들을 사용하실 수가 있다.”

드보라는 지도자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중재자의 역할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가나안 군대를 치기 위해 군사 지도자가 필요했을 때 바락을 불렀다(삿 4~5장). 구약에는 여자 제사장이 있 었다는 말이 없다. 구약의 어떤 부분에도 여자 제사장에 대한 기록은 없다.

R 여자들은 예언사역을 섬기지 않았다. 구약에는 엘리사나 엘리야 와 같이 예언사역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섬긴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미리암(출 15:20), 드보라(삿 4:4), 훌 다(왕하 22:14), 이사야의 아내(사 8:3)는 여선지자들이었지만, 아

20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무도 지속적으로 예언사역을 섬기지 않았다. 미리암, 드보라, 훌다 의 예언은 성경에 단지 한 번 기록되었을 뿐이고, 이사야의 아내는 예언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예언적인 이름을 가진 아이를 낳 았기 때문에 여선지자가 되었다. 성경에 여선지자라고 기록되어 있 는 다섯 번째 여자는 노아댜는 거짓 선지자였다(느 6:14). 하나님 은 아주 한정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자를 통해 말하지 않았으 며, 여자들 중에 지속적으로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한 사람은 없었다.

구약성경처럼 신약성경도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며 역할만 다를 뿐 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갈라디아 서 3장 28절은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동등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신약은 여자들을 영적으로 열등하다고 하지 않는다.

R 여자들에게도 남자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동일한 책임이 주어졌 다. 신약의 모든 명령, 약속, 축복들은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하게 주 어진다. 남자와 여자에게는 동일한 영적인 자원들과 동일한 영적인 책임들이 있다. R 여자들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복음 서에 보면 예수님이 자신이 메시아이신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 은 여자였다(요 4장). 예수님은 남자들에게 긍휼을 보였던 것처럼 여자들에게도 긍휼을 보이시면서 여자들을 치료해주셨다(마 8:14~15). 예수님은 여자들을 가르치셨다(눅 10:38~42). 예수

209 GTY.org

님은 여자들이 자기를 돕는 것을 허락하셨다(눅 8:3). 부활하신 예 수님을 처음으로 본 사람도 여자였다(막 16:9, 요 20:11~18).

그러나 남자와 여자 사이의 역할의 차이는 계속 유지되었다. 신약 성경에 여자 사도, 여자 목사, 여자 부흥사, 여자 감독이 없다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다. 신약성경에 어디에도 여자가 설교를 했다는 기록 은 없다. 빌립의 딸들이 예언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행 21:9), 그들의 임무나 역할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들이 예언사역을 지속적 으로 섬겼다고 추정하거나 그들이 교회 예배 시간에 예언을 했다고 추정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눅 1:46 이후), 안나(눅 2:36~38)처럼 여자들은 예배시간이 아닌 다 른 장소에서 예언을 했을 것이다.

배울 수 있는 자격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린도전서 11장 5절은 여자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여자들이 교회의 공식적인 모 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울 은 디모데전서 2장 11절에서 여자들이 배우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 다.“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여기‘순종함으로’ 의 그리스 원어는‘hupotage’ 로서 명사형은‘hupotasso’ 이다. 그것은 우리가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어떤 사람)의 하위 계급이 되

21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다’ 는 뜻이다. 예배를 드릴 때는 여자들은 조용해야 하며, 교회 지도 자에게 순종해야 한다. 혹자는‘조용히’ 라는 말은 여자들의 온순하고 조용한 정신을 말한 다고 주장함으로서 이 성경말씀에 명확한 의미를 빗겨가려고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여자들이 적절한 태도를 유지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고 또 설교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와는 정반대로 주장한다. 그들은 이 말씀을 사용해서 여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건 절대로 교회에서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주장들은 둘 다 타당하지 않다. 전후문맥을 볼 때‘조용히’ 라는 말은 그 뜻이 명확하다. 12절에서 바울은 그가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정 리해준다.“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 니하노니.”여자들은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조용히 있 어야 하며, 권위를 강탈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며, 순종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허락하다’ 의 그리스 원어인‘epitrepo’ 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 하는 것을 하도록 허락해주는 것을 말할 때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 하는 표현이다. 바울이 이 말을 선택했다는 것은 에베소교회의 어떤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과 권위를 가지기를 갈망했다는 의미를 함축하 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에베소교회와 마찬가지로 어떤 여자들 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남 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포함하여 높은 지위를 원한다. 모든 사람들

211 GTY.org

의 유익을 고려하면서 그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성경적인 방 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여자들은 교회에서 목사나 교사처럼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고 솔 직하고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가르치는 것’ 이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 현재형 부정사로서 ‘didaskein’ 이며, 그 뜻은‘가르치는 것’ 이라기보다는‘교사가 되는 것’ 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바울은 과거형 부정사를 사용하는 대 신 현재형 부정사를 사용함으로서 모든 상황에서 여자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한 것이 아니라 전체 예배 시에 교사로서 말씀을 가르치는 공 적인 자리를 취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또한 여자들이“남자들을 주관하는 것” 을 금하고 있다.‘남 자를 주관하는 것’ 이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authentein’ 으로서 신약성경 전체에서 오직 여기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authentein’ 이 권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서 바울이 금지시킨 것을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 사람들 의 관점에 따르면 여자들이 권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지만 않으면 남자들을 가르칠 수도 있고 다스릴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이‘만든 자, 생산한 자’ 라는 뜻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바울은“내가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만든 자라고 주장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I do not allow a woman to teach or proclaim herself author of man)”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죠 지 나이트(Dr. George Knight)는 성경 다른 곳에서‘authentein’ 이 사용된 예를 보면 그 일반적인 의미가‘~를 다스리는 권위를 갖는’

21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이라는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가르치는 것을 포함해 서 여자들이 남자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금하 고 있다. 바울은 일찍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명령했던 것을 디모데에게 다시 반복해서 가르치고 있다.“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 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고전 14:33~35).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바울이 단지 고린도교회 문화에 대한 문 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현대 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원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놓치고 있 다.“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33~24절). 그것은 문화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교회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이다. 전후문맥을 보면 바울이 명령하는 침묵이 여자들에게 말을 한마디 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회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 과 설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에베소교회에서와 같이 고린도교회의 어떤 여자들은 교회에서 높은 지위에 앉고 싶어 했다. 특히 방언과 예언하는 은사를 오용 내지는 남용하는 것을 통해 그렇 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무질서한 자기 과시욕 때문에 바울의 정죄를 받았던 이 여자들은 절대로 말을 하지 말아야 했다. 교회를 향한 하 나님의 질서 안에서 여자들은“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해야

213 GTY.org

한다” (34절). 물론 여자들 중에서도 가르치는 능력이 뛰어난 교사들과 지도자들 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은사들을 교회 예배 때 남자들을 주 관하는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영적으로 열등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이 그렇게 명령하고 있기 때문 이다. 하나님은 피조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셨다. 그리고 그 질서는 하 나님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에 반드시 반 영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 든지 교회를 약하게 하고 또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다. 혼 돈과 무질서가 있는 교회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실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남자들에게만 허락하신 역할을 강탈하는 여자와 함께 하실 수 없다. 바울은“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35절)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어떤 여자들이 예배시간에 질문을 함으로서 교회 예배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만약 그 여자들이 배우고 싶은 갈망이 있다면 교회 예배를 혼란에 빠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바울의 이 말에는 그리스도 인 남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야 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여자들이 자기 남편을 포함해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리더십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남자들에게 실망했을 때 성경이 여자들에게 정해준 역할의 선을 넘어가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회 안에 남자 여자 간에 적절한 질서와 관계를 세 우셨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라도 그것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남자

21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가 자기의 책임을 소홀히 한다고 해서 여자가 남자의 역할을 대신한 다는 것은 문제만 복잡하게 할 뿐이다. 물론 남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를 거부할 때 하나님은 그 일을 여자들에게 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남자들에게만 허락하신 역할을 여자들에게 맡김으로써 그런 일들을 달성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R 바울은 선교여행 중에 여러 교회들과 회당에서 가르쳤고, 또 남 자들은 물론 여자들로부터도 여러 가지 질문들을 받고 답해주었다 (행 17:2~4). 나는 여자들이 비공식적인 성경공부 시간과 교제시 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깨닫게 해주신 말씀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 는 것에는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교회에는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 이 있는데 그때 나는 누구든지 질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그렇게 하도록 정 해진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예배 시간은 사람들의 질문으 로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나는 예배시간 외에 여자들이 공 식적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간증하기 위한 시간과 장소가 별도로 있 다고 생각한다. R 나는 또한 선교지에서 많은 여자들이 여러 가지 공식적인 방법 으로 섬기는 일을 많이 하지만, 교회를 리드하는 일만은 삼가는 것 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바울 시대처럼 선교지에 많은 지도자 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에

215 GTY.org

게 리더십 역할을 맡김으로서 어느 정도 타협안을 찾을 수도 있었 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선교지에 남자들이 부족할 때 성경원리들을 파괴하지 말고 추수할 일꾼들을 더 많이 보 내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하라(마 9:38). 엘리자베스 엘리어트(Elisabeth Elliot)는 에쿠아도르에서 남편 과 다른 몇몇 선교사들이 살해되었기 때문에 오카 인디안 언어로 말 할 줄 아는 유일한 선교사가 되었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기보다 오카 인디언 남자들 중에 한 사람을 가르쳐서 매주 설 교를 전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는 적절한 남자 지도자가 나타날 때 까지 그런 식으로 계속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R 여자들은 교회 전체 예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말씀을 전파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는“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 자들은 큰 무리라” (시 68:11)고 기록되어 있다. 신약에서는 마리아, 안나, 브리스길라가 남자와 여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는 예가 있다(눅 1:46~55, 2:36~38, 행 18:24~26). R 여자들은 공적인 장소에서 기도할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13~14절은 예수님의 사도들을 포함하여 남자들과 여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 모임을 가졌던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공식적인 모임에서 앞에 서서 기도를 인도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 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남자들에게 주어진 역할이다(딤전 2:8).

남자들과 여자들이 질문들과 통찰한 것들을 서로 동등하게 나눌 수 있는 적절한 때가 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21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전체적으로 모이는 곳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명확하다. 그런 곳에 서는 리더십의 역할은 오직 남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창조의 질서

오늘날 성경을 보는 일반적인 관점은 타락의 결과로 말미암아 여 자들이 보조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저주를 깨뜨리셨기 때문에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 역할구분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여자의 보조 역할 에 대한 근거를 타락에 두지 않고 창조의 질서에 두고 있다.“이는 아 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딤전 3:13).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브는 아담이 창조된 후에 아담의 돕는 배필로 창 조되었다(창 2:18). 이브는 아담의 지도력을 따르도록, 그리고 아담 이 공급해주는 것을 의존해서 살도록, 아담의 힘 안에서 안전을 누리 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창조 때부터 모든 여자들에게 그러한 성 향들이 있었으며, 그 후에 죄와 타락으로 인해 남녀 간에 갈등이 새 롭게 생겨난 것뿐이다. 바울은 에베소의 특정 문화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이 가르침을 베푼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바울의 가르침 이 오늘날에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 게도 동일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전 11:8~9). 바울은 여자들의 역할을 타락의 결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여자들의 역할이 저평가 되고 있다고 여긴다.

217 GTY.org

그리고 그는“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 라” (딤전 2:14)는 점을 지적해주고 있다. 로마서 5장 12~21절에서 는 죄와 죽음을 이 세상에 가져온 한 사람(아담)에 대해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담을 떠올릴 때 그를 인류의 타락과 관련시켜 생각하게 된다. 비록 아담은 이브처럼 사탄에게 속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담 역시 하나님께 불순종했다. 사실 가정의 머리로서 아담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먼저 죄에 빠 지지 않았고 이브가 먼저 죄에 빠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창 3:1~6). 이브가 아담의 리더십 안에서 보호받으려고 하지 않고 혼 자 독립적으로 원수와 직접 접촉했기 때문에 이브는 속아 넘어간 것 이었다. 이브는 너무나 쉽게 속아 넘어감으로서 그녀에게 리더십 능력이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그녀에게는 사탄이라는 존재가 너무 벅찼던 것이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 나와 있는‘속는다’ 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 특히 아주 강한 표현이다. 그것은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는 뜻 이다. 여자가 자기를 보호해주는 자의 안식처를 벗어났을 때 아주 취 약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타락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불순종의 결과일 뿐만 아 니라 하나님이 남녀에게 정해준 역할을 깨뜨린 결과이다. 이브는 독 립적으로 행동했고 리더십의 역할을 취하려고 했다. 아담은 그의 리 더십을 양도했고 이브의 리더십을 따랐다. 그것은 아담이 이브보다 죄를 덜 지었다는 뜻도 아니며, 이브가 아담보다 더 부족하다는 뜻도 아니다. 둘 다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남녀는 취약점이 서로 다를 뿐

21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의 남자의 리더십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이유는 창조 때부터 남자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며, 타락이 그 사실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머리가 되는 것은 태초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타락이라는 비극적인 경험은 그 디자인이 지혜롭다는 것을 확인해주었을 뿐이다. 이브의 딸들은 아 무도 이브가 갔던 길로 가서는 안 되며, 여자들은 남자들만을 위한 리더십이라는 금지된 영역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여자들의 공헌 하나님은 인생을 관계중심이 되도록 하셨으며, 그러한 관계들 안 에는 서로 다른 역할들이 존재한다. 불행히도 미국사회는 관계보다 개인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사회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 들을 어떻게 잘 섬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보다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자기 권리에 비중을 두며 산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교회에서, 가정에 서, 지역사회공동체에서 하나님이 그들 각각에게 주신 역할들을 받 아들이지 않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역할과 관련된 모든 제도들과 모든 관계들의 기초적인 토대를 파괴시키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사회적 안정도 바람 앞에 등불이 된다. 만약 우리가 예의주시 하는 사회적인 실험들 중에 그 결과가 입증된 실험이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219 GTY.org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열등하지 않다. 여자들은 단순히 남자와 역 할이 다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종자가 되는 것보다 지도자가 될 때 더 큰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사회의 힘과 영향력 의 유일한 근원은 지도자라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드 하는 입장이 아닌 역할들도 사회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 또한 지 도자는 항상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지도자의 위치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약 3:1).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은 꼭대기에 서 모든 것들을 주관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테넨 매 기 갤러허(Dr. Tannen Maggie Gallagher)와 마릴린 퀘일(Marilyn Quayle)이 이 책의 서론에서 말 한 것처럼 그러한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여자들이다. 그로 말미암아 여 자들이 그들의 장점이 아닌 것을 추구하면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되었으며, 사회도 여자들을 잘못 대우한 대가로 여자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노력으로 인한 유익을 얻지 못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해산함으로서

디모데전서 2장 15절은 여자들이 장점을 추구함으로서 사회에 영 향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그러나 여 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 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전후문맥을 살펴보면 좀 더 이해를 잘 할 수 있다. 14절은 여자들이 죄를 지은 것에 대해, 15절은 여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대조법을 사용하

22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고 있다.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sozo’ 로서 신약에서 일 반적으로 구원을 말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물론 바울이“아이를 낳 음으로서”여자들이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 다. 그것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반 대가 되기 때문이다. 미래시제와 복수대명사‘그들의(영어로는 그들 을 뜻하는 they를 사용하고 있음)’ 을 사용한 것은 바울이 이브를 두 고 한 말도 아니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두고 한 말도 아니라 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생각 하기에는 전후문맥과의 관련성이 많이 부족하다. 바울은 비록 여자가 타락을 부추기기는 했지만 여자들이 해산을 통해 그러한 불명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 이다. 여자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에 빠졌지만, 그러나 여 자들이 아이를 낳아 자손을 번성시킴으로서 인류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자들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침으로 서 인류를 경건함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한 등급 낮은 존재가 아니라 경건한 자녀들을 길러야 하 는 아주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다. 어머니의 성품은 자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다. 어머니들은 일 반적으로 아버지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녀들과 함께 보내기 때문 에 자녀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여자들은 경건한 씨를 키우 는 그들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믿음과 사랑, 그리고 자기를 절제 하는 고결함을 유지해야 한다.”여자들이 경건한 자녀들을 키우려면

221 GTY.org

먼저 자기 자신부터 경건해져야 한다. 물론 하나님이 여자들이 전부 어머니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 다. 하나님은 어떤 여자들에게는 독신의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그런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전 7장). 또 어떤 여자들에 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자녀를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일 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여자들이 인류에게 이 바지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공헌이다. 아이를 해산하는 고통은 원죄 로 인한 징벌이다. 그러나 아이를 해산하는 것은 여자들을 죄로 인한 수치에서 구원해준다.

영적인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바울은] 비록 여자들이 남자들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여자들을 여러 가지 형태로 사역에 참여하도록 했다. 로마서 16장 전체는 바울이 여자들을 비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바 울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그가 명령하고 있는 대상은 여자들이다. 바울은 여자들에게“동료” 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었다(빌 4:2에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경우처럼). 그것은 여자들이 바울의 전도사역과 교회설립의 사명을 함께 섬겼다는 것을 의미한 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원 받는 순간 하나님께로부터 영적 인 은사들을 받는데, 그 은사들은 교회의 전체적인 기능을 원활하게

22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하기 위한 보완의 관계에 있는 은사들이라고 말한다(롬 12:3~14, 고전 12:4~30, 엡 4:1~13). 교회의 덕을 세우는 영구적인 은사들 은‘말하는 은사와 섬기는 은사’이 두 가지에 해당하는 은사들이다 (벧전 4:10~11).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가르치는 것, 지혜 (실제적인 조언을 해주는 것), 지식(학자적인 정보를 나누는 것)’이 세 가지 것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탁월하다. 책망, 리더십, 섬김 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다음의 것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탁월 하다. 자비를 보이는 것, 강한 믿음을 보이는 것(특히 기도에서 드러 난다), 구제(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 오류와 진리를 분별 하는 것, 도와주는 것(드러내지 않고 하는 것), 행정하거나 조직하는 것. 성경에서는 영적인 은사들(교회의 지도부 직위에 반대되는 개념 으로서)에 남녀를 구분 짓지 않는다. 교회 지도부에 속하는 남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말하는 은사건 섬기는 은사 건 그들의 영적 은사들을 진실 되게 사용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섬 기도록 격려하고 또 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여자들에게는 리더십의 능력과 가르치는 능력을 은 사로 주셨다. 그런 여자들은 교회 전체 예배가 아닌 다른 환경에서 그런 은사들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매 성경공부모임, 교제 그룹, 기도모임, 성경공부반 등이다. 여자들이 하나님의 디자인에 맞 게 가르치는 은사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수도 없이 많다. 디모데전서 2장의 성경말씀은 여자들의 지성을 무시하는 것과는

223 GTY.org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어떻게 여자들이 그들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실제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여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역할을 받 아들이도록 가르치고 있다. 여자들은 교회에서 리더십 역할을 차지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남자들과 동일한 역할을 맡을 수 없 어서 자기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다고 느끼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회에 주는 가장 큰 영향은 경건한 자녀들을 키우는 것이다. 만약 여자들이 경건하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그 여자들에게“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들을 키우게 해주신다면(엡 6:4), 그 여자들은 새 세대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남자들에게 주신 것은 외적으로 분 명하게 눈에 드러나 보이는 리더십이지만, 여자들도 간접적이지만 남자들만큼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22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8장 섬김의 성품

오래 전, 내가 그레이스 커뮤니티교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디 먼쓸리(Moody Monthly)는 우리 교회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 심했다. 그때 우리는 자그마한 우리 교회 건물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그곳은 성도들로 대만원을 이루었다. 무디 먼쓸리는 여러 성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난 후에 그의 글에‘구백 명의 사역자들이 있는 교회’ 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우리 교회에 9백 명이 나오고 있었고, 그 모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섬기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교회에는 공식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지 않 았다. 그러나 각 사람이 각각 주어진 은사들을 가지고 사역을 섬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교회로 전화를 걸어 도와줄 것이 없는지 꾸준히 물 어왔다. 그들은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심방하고, 유아들을 돌보며,

225 GTY.org

교회건물을 청소하고, 전도를 하며, 또 여러 가지 성경공부 반에서 가르쳤다. 사람들은 사역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이 그 사역들을 얼마나 축복하는지를 끊임 없이 서로 나누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교회를 디자인하신 방식 이다. 섬길 준비가 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 말이다. 그리스 원어들 중에 몇 가지는 종의 태도를 묘사해주고 있다. 고린 도전서 4장 1절에서 바울은 천한 신분의 종들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Gk., huperetes, 배 밑바닥 노예들]이요.”그 시대에는 노예들이 사슬로 묶인 채 삼층으로 된 큰 나무 배의 선체 안에서 노를 저어 그 배를 움 직였다. 그 배의 가장 밑층에 있는 노예들은‘배 밑바닥 노예들’ 이라 고 불렸는데,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배의 제일 밑층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알려지기를 원했으며, 높임받기를 원치 않았다. 대개 사람들은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 람들이 순종하는 종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2절에서 바울은“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가 구상한 획기적인 노 젓는 방법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노 를 잘라버리는 사람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스스로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려는 신실한 노 젓는 일꾼들을 원하신다. 나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이러한 배경에서 바라보고 있다. 페미 니스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말한 겸손한 태도의 본을 보여주 기보다 교회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리더십 역할을 얻기를 원한다. 하 나님이 오직 남자들을 위해서 디자인한 그런 역할들을 말이다. 그들

22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은 하나님의 교회의 질서, 기능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전체적인 디자 인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로마서 12장 4~5절에서 바울은 사람의 몸을 상징적으로 사용해 서 하나님의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 라.”인간의 몸은 머리, 눈, 코, 입, 귀, 이,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내장기관 등 여러 가지 지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지 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한다. 이 비유는 믿는 자들 각 사람이 어떻 게 그리스도의 전체 몸을 이루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우리는 하 나의 몸을 이루고 있지만 서로를 보완해주는 각각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 인간의 몸이 서로 다른 기능을 맡은 지체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믿 는 자들은 일반적인 삶, 은사들, 사역들, 자원들, 기쁨,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교회라는 영적인 몸을 이룬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라는 것 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가 다양하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 다. 만약 우리 몸의 일부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어쩌면 입원까지 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지체는 전 체 몸의 기능이 잘 이루어지도록 다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처럼 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함께 협력해서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체 교회가 고통하게 될 것이다. 각 신자들은 교회에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 나름대로 다 다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받은 은사들 이나, 지음 받은 대로 일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은 장애를 일으키

227 GTY.org

게 될 것이다. 각 성도들이 자기의 역량에 맞게 섬길 때 교회의 기능이 제대로 돌 아가게 된다. 이때 소수의 남자들만이 교회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고 나머지 성도들은 남자들이든 여자들이든 섬기는 일을 해야 할 것이 다.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어떤 그리스 단어는 신 자들이 여러 가지 단계별로 섬기는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섬기는 단계들 ‘Diakonos’ (종),‘diakoneo’ (섬기는 것)와 관련이 있는‘diakonia’ (섬김 또는 봉사)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약 백번 정도 나온다. 그 단어 그룹의 본래의 의미는 시중들기 위해 테이블 옆에 서서 기다리 는 것과 같이 천한 머슴들이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 은 그 의미가 점점 폭넓어지면서 모든 종류의 섬김과 봉사를 다 포함 하게 되었다. ‘diakonos’ 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디모데전서 3장과 빌립보서 1장 1절에서 예외적으로 사용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대부분의 성경해석판들을 보면 성경번역가들이 오직 디모데전서 3장과 빌립보서 1장 1절 이 두 가지 경우에만 ‘diakonos’ 라는 말을 교회를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아 선택된 사람들 을 일컫는 집사(deacon)라는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경우 에는 신약의 저자들은 우리가‘종, 섬기다, 섬김’ 이라는 말을 사용할

22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때와 동일한 의미로‘diakonos, diakoneo, diakonia’ 를 사용했다. 음식을 만들어서 섬기는 것에 대한 뿌리가 되는 개념이 요한복음 2장 5절에 나와 있다. 그 말씀에는‘diakonos’ 가 결혼식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하인(웨이터)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4장 39절에도‘diakoneo’ 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 말씀에는 베드로의 장모가 음식을 만들어 섬겼다고 나와 있다. 복음서 저자들과 서신서의 저자들은 각종 영적인 섬김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의미로 그 말들을 사용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것과 그를 섬기는 것을 동등하게 여겼다. 우리 가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영적인 섬김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 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집사들이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 가지 계층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지도력을 발휘하는 감독들, 섬기는 집 사들, 그냥 섬김 받고 듣기만하는 청중들로 이루어진 나머지 사람들. 교회에 구경꾼들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부르 심을 받은 것이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12장 5절에서 말하려는 바울의 핵심이다. 고 린도전서 12장 5절에서 그는“직분은 여러 가지나” 라고 기록하고 있 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몇 가지 영적인 섬김에 참여해야 한다. 지 도자들은 신자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본을 보이는 것을 통해 신자 들이 섬기는 일을 하도록 무장시켜주어야 한다(엡 4:12). 또한 Diakonos, diakonia, diakoneo가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

229 GTY.org

는 곳은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이다. 로마서 12장 6~8절에 열거된 영적인 은사들에는 섬김도 포함된다. 섬김의 은사 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 비록 집사의 직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특히 영적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다.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들은 은사를 많이 받았다.“[그들이] 성도 섬기 기로 작정한” (고전 16:15). 그리고 또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경우는 집사의 직위를 말할 때 였다. 집사들은 교회에서 섬기는 종들로서 주어진 직무의 권한 내에 서 섬긴다. 우리는 그들을 종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비록 집사들이 섬기는 종들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모든 일들을 도 맡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체 몸을 위해 섬기며 영적인 섬김의 본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감독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책임과 그에 따른 권위가 주어진 반면, 집사들은 여러 가지 다른 면에서 장로들과 동등하다. 집사들은 성도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아주 특별히 거룩한 사람들인양 성도들과 거리를 둘 것이 아니라 감독들이 가르 쳤던 것들을 삶에 실제로 행하면서 성도들이 영성과 미덕에서 최고 의 수준에 도달하도록 돕는다.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쓸 당시 그 교회는 커지고 있었고 집사들이 영적인 덕망과 섬김에서 본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는 지점으로까지 성장하고 있었다. 바울은 집사의 직분이 가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기 위해 집사들이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자격들을 열거하고 있 다. 감독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집사가 되기 위한 자격들은 기능과

23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품과 관련된 것이다. 사실, 성경에는 집사들의 의무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아무것도 나와 있지 않다. 집 사들은 감독들이 그들에게 할당해준 직무라면 무엇이든지 수행해야 했다.

남자 집사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 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 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딤전 3:8~10, 12)

‘이와 같이’ 는 교회 지도자들이라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새로운 영역을 소개하기 위한 말이다. 바울은 3장 1~7절에서는 감독들에 관해 말했고, 이제는 집사들에 대한 말로 넘어간다. 그는 집사가 갖 추어야 할 자격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말하고 있다.

개인적인 성품

진지함 ‘정중하고’ 의 그리스 원어는‘semnos’ 로서‘진지함’ 을 의미하며,

231 GTY.org

성품적으로 진지한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진지한 것을 의미한 다.‘Semnos’ 는 그 어근인‘sebomai’ 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서‘존경하다’또는‘예배하다’ 를 의미한다.‘진지한’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라는 명령을 잘 이행한다.‘semnos’ 의 동의어는‘hieroprepes’ 로서 그 의미는‘성결한 사람처럼 행동하 라’ 는 의미이다. 집사는 심각한 문제들을 가볍게 다루거나, 경솔하거 나, 또는 어리석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일구이언 하지 아니하고 집사는‘일구이언’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가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를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하 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집사들 은 특정 개인적인 문제들과 심각한 영적인 문제들에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할 때 정직하고 고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 구이언 하는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잃게 될 것이다.

술에 인박히지 않고 바울은 집사들이“술에 중독되는 것” 을 금하고 있다.‘인 박히다’ 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마음이 ~것에게로 돌아가다’또는‘~생각 으로 마음이 가득해지다’ 는 뜻이다. 인박힌 습관이란 현재 그 사람이 적극적으로 또 깊이 빠져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집사는 술에 대한

23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생각으로 가득해서는 안 되며 술이 자기 인생에 영향을 주도록 해서 도 안 된다. 독자들 중에는 왜 주님이 우리들에게 철저한 금욕생활을 하도록 요구하지 않는지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호머 켄트(Homer A. Kent Jr.)는 다음과 같이 지 적하고 있다.

20세기 미국 사람들이 바울 시대를 이해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성경에서 집사들에게 철저한 금욕을 요구하지 않고 단지 절제만 하도록 했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어 느 정도는 술을 마셔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유 대에서는 포도주가 일반적인 음료로서 거의 물과 같은 용도로 사용 되었다. 오늘날 음주로 인한 심각한 사회적인 악과 폐해를 바울 시 대에 집에서 일반적인 음료로 사용되었던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동 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포도주가 음료수 정도로 여겨졌음 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성장하고, 크리스천 의식과 양심이 점차 눈 떠감에 따라 음주의 위험을 보다 민감하게 느끼게 되었다. 바울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 제시했던 원리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술을 마실 때 다른 형제들을 실족하게 하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몬드(Raymond)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실 때 행하는 나쁜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 들을 실족하게 만든다면 또는 다른 사람들을 유혹에 넘어가게 함으

233 GTY.org

로서 사회적인 악을 부추긴다면, 그는 술을 들이킴으로서 일시적인 기쁨을 누리려고 하는 대신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하늘나라 보화에 대한 관심을 들이킴으로서 이 땅에서 일시적인 기쁨을 누리려고 적 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사회 적인 악을 부추기고 있으며, 젊은 청년들과 연약한 자들에게 위험한 본이 되고 있다. 만약 바울이 오늘날 우리를 대상으로 말한다면“절 대로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고 했을 것이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신약시대에 교회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자들은 과부들, 고아들, 가 난한 자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할 때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은행이나 회계감사법인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 이루 어졌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돈을 허리띠에 달려있는 작은 지갑 에 넣고 다녔다. 그러므로 유다가 그랬던 것처럼(요 12:4~6) 돈을 맡은 자들은 그 돈을 훔치고 싶은 유혹이 항상 있을 수 있었다. 따라 서 집사의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 이었다.

영적인 삶

바울은 또한 집사들이“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라 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비밀’ 이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한 때는

23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숨겨져 있었지만 지금은 드러난 어떤 것’ 을 말한다.‘믿음의 비밀’ 이 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는 드러나 있지만, 구약성경에서는 밝히 드 러나 있지 않았던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에 대한 계시이다. 그것은 그 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딤전 3:16), 신자들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 심(골 1:26~27),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것(엡 1:9, 3:4~6), 구원의 복음(골 4:3), 율법의 시대가 지난 것 (살후 2:7), 교회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는 것(고전 15:51~52) 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집사의 영적인 성품은 그 사람이 신약성경의 교리를 명확하게 붙 들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믿음의 비밀’ 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깨끗한 양심’ 을가 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진리를 믿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약 2:19). 반드시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 또한 신학과 성경지식이 많을 수록 양심도 깨끗해야 한다. 모든 집사들(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 은 바울처럼“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 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 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고 후 1:12)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적인 섬김과 봉사

그 다음으로 바울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하나를 구체적으로

235 GTY.org

제시하고 있다.“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 할 것이 없으면” (딤전 3:10). 이것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시험하여 보고’ 의 그리스 원어인‘dokimazo’ 는 현재수동형시제 동 사로서 이 시험이 일회적이거나 또는 일정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것 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난 뒤 바울은 또 다른 필수적인 것을 제시하고 있다.“집사 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각 집사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는지를 교회가 꾸준히 전반적으로 평가를 함으로서 시험해봐야 한 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깨끗함

집사들은 감독과 마찬가지로“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집사들 은 교회의 가장 우선적인 교사인 감독들과 역할 면에서만 다를 뿐이 지 영적인 면에서 요구되는 것들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감독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자격들은(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제외하고) 집사들에 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집사들은“책망할 것이 없는”사람 들이어야 한다. 집사들은 삶에 아무 오점이 없어야 하며, 비난받거나 자격미달인 면이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집사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언젠가 목 사나 감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사들이 목사들과 감독들의 교훈 을 삶에 실천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점이나 경험적으로 배우는 것들 은 그들이 장차 지도자가 될 준비를 하는데 더 없이 좋은 것이며 무

23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한한 가치가 있다. 집사들은 양떼들의 개인적인 필요들을 직접 채워 줌으로서 성도들 중에 어떤 사람이 어떤 특별한 것 또는 어떤 구체적 인 것을 필요로 하는지 피부로 알 수 있다. 바울은 감독들에게 요구되는 자격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집사에게 도 그대로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집사들도“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행동으로나 마음으로나 아내에게 충 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자격은 감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혼이 냐 미혼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성품이 문제이다.

가정생활

집사들은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리더십을 잘 발휘하고 있다 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집사들은“자녀를 잘 다스리는 자” 이어야 하고, 돈, 재산, 가정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 다. 집사들은 가정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잘 다스림으로서 리더 십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여자 집사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 디모데전서 3장 11절에서 바울은 또 다른 집사 그룹에 대해 말하 고 있다.“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여기서 바울의 말에 담긴 몇 가지 내용은 바울이 남자 집

237 GTY.org

사들의 아내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 집사들에게 말하고 있다 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 바울이‘이와 같이’ 를 사용한 것은(딤전 2:9, 3:8, 딛 2:3, 6 참조) 감독들과 집사들 외에 제3의 그룹이 있다 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다. 둘째, 이 여자들과 남자 집사들이 부부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유격 대명사나 또는 명확한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바울이 장로 아내의 자격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집사 아내의 자격을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넷째, 바울이‘여 집사’ (집사의 여성형)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리스어에는 집사라는 말의 여성형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서 16장 1절에는 뵈뵈가 여집사라고 나와 있지 않고 그냥 집사라고 나와 있 다. 그 이유는‘diakonos’ 의 여성형이 없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그 말 대신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다른 말은‘diakonos’ 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 역시 여자들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여자들’ (그리스어로 gunaikeios)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만이 바울 이 여자 집사들을 남자 집사들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자 집사들의 자격은 남자 집사들의 자격과 유사했다. 바울이 소개 하는 또 다른 그룹의 집사들은 우리가 여 집사로 알고 있는 그룹이 다. 나는 그들을 집사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이유는 그것이 신약 성경에 나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정숙하고

바울은 8절에서 남자 집사들의 자격에 대해 말할 때 사용했던 말

23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과 동일한 말을 여기에서도 사용하고 있다(8절의‘정중하고’ 와 11절 의‘정숙하고’ 는 영어로는 둘 다 worthy of respect(NIV)로 되어 있 다). 여자 집사들은 남자 집사들과 마찬가지로 진지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들이 드리는 영적인 헌신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들을 깊이 존 경할 수 있어야 한다.

모함하지 않고

‘모함’ 의 그리스 원어는‘diabolog’ 로서‘중상하는 자’ 를 의미한 다. 그것은 때로 사탄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하며,‘마귀’ 로 번역 되기도 한다(마 4:1). 여 집사들은 혀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남자 집사들과 마찬가지로“일구이언” 해서는 안 되며(딤전 3:8), 사람을 중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털어놓은 사적인 비밀을 남에게 전해서 는 안 된다.

절제하며

‘절제하며’ 라는 말은 2절에서 감독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되었던 말과 동일한 말이며, 8절에 남자 집사들에 대한 세 번째 자격‘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와 유사한 것이다. 여자 집사들은 온전하고 맑은 정신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사람이 술에 젖어 있으면 온전한 정신으로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239 GTY.org

충성된 자라야 함

마지막으로 여자 집사들은“모든 일에 충성되어야 한다.”그들은 절대적으로 신뢰할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 자격은 남자 집사들에 게 요구되는“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라는 말과 동일하다. 여 자들도 남자 집사들처럼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돈을 관리했다. 그러므로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섬김과 봉사의 보상들 바울은 남자 집사들과 여자 집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함으로서 그의 가르침을 마무리 하고 있다.“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 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13절). 집사로서 섬기는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두 가지 상이 기다리 고 있다. 첫째, 그들은“아름다운 지위를 얻게 된다.”여기‘지위를 얻는다’ 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 그 의미가‘한 걸음’ 이다. 그 말은 다른 사람 들보다 한 걸음 더 앞선 사람들을 의미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은‘단상 위에 오른(존경을 받는)’ 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명예에 대한 탐심으로서 죄악 된 것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 사람의 마음이 그런 명예를 얻는데 있지 않다면 죄악된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겸손히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

24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과 사람 앞에 높임을 받는다(약 4:10, 벧전 5:6). 만약 당신이 집사 로서 충성되게 잘 섬긴다면 당신의 충성된 섬김을 목격하는 사람들 은 당신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이 땅에서 어떤 상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존경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하 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영적인 좋은 본’ 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핵 심이다. 오직 존경을 받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상은“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 것 이다.”여기‘큰 담력’ 이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담대하게 말하는 것’ 을 의미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성공은 담대함과 확신을 길러주는 원동력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면 당신의 삶에 하나님 의 능력과 은혜가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 신이 더 많은 섬기는 일을 하도록 에너지를 공급해줄 것이다. 남자 집사들과 여자 집사들은 감독 못지않게 건강한 교회에 반드 시 필요하다. 교회는 이러한 중요한 역할들을 맡길 때 충분히 자격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신중하게 뽑아서 세워야 한다.

건강한 교회의 특징들 사도 바울은 감독, 집사와 같은 교회 직분들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와는 정반대로 교회 전체가 항상 그의 관심사였다. 특히 교회의 영적인 건강과 생동감에 항상 관심을 가졌다. 바로 그것이 그

241 GTY.org

가 디도에게 편지를 쓴 이유였다. 그래서 그는“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딛 1:5)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디모데에게 그랬던 것처럼 디도에게도 장로들을 세워서 그레데교회들을 이끌 것과 그 장로들의 자격에 대해 열거하 고 있다(딛 1:6~9). 그러나 디모데에게 했던 지시와는 달리 디도에게는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이 교회들은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집사들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그곳에 세워진 여러 교회들을 이끌만한 교회 지도자들이 아직 세워지지 않 았기 때문에 먼저 교회 지도자들을 세운 후 그 지도자들이 공식적인 직위에서 섬길 집사들을 선택하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집 사의 자격을 아직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전체 성 도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에 대해서는 연령대별로 또 성별로 나누어 언급했다. 그리고 이 목록은 디도가 성도들을 대할 때 존중하는 마음 으로 대하기를 원한다는 바울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딛 2:1). 여기‘바른(sound)’ 의 그리스 원어는‘위생적인’ 이라는 뜻이며, 그것은 기본적으로‘건강 하다’ 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교회가 제대로 된 건강한 교회로서 건강한 교훈을 가르쳐서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지에 관심을 가지신다. 다음에 나오는 특징들은 그러한 교회 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4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나이 많은 남자들

첫 번째로 바울은 교회 성도들 중에 나이가 많은 남자들에게 가르 침을 주고 있다. 바울은 빌레몬서 9절에서“나이가 많은 바울” 이라는 말을 자기 자신에게도 사용하고 있으며, 그때 당시 그의 나이는 육십 대였다. 그는 이러한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 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 온전하라고 했다” (딛 2:2). 오랫동안 그 리스도와 동행한 삶을 산 사람은 영적인 경험이 풍부해서 젊은 사람 들에게 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남자라도 경건하지 않 다면 나이가 많은 것 자체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 그래서 바울은 나 이가 많은 사람들이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야 할 미덕으로서 구체적 인 세 가지 성품들을 제시하고 있다.

절제 절제라는 이 성품이 이제는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할 것이다. 절제는 바울이 감독들(딤전 3:2)과 여자 집사들(딤전 3:11)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며, 남자 집사들이 술에 인박혀 서는 안 된다는 말과 유사한 것이다(딤전 3:2, 8). 그 말 자체는“포 도주에 젖어 있으면 안 된다” 는 뜻이지만 비유적으로 볼 때 그 의미 는“삼가는”또는“포도주 마시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다. 나이가 많은 경건한 신자들은 무엇이든 너무 과도하게 해서는 안 된 다. 그들은 방종한 생활을 하면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이 정도 되면 인생에서 정말

243 GTY.org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들은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그러 한 올바른 판단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경건하며 나이가 많은 남자들은 또한“경건해야 한다.”이 말은 남자 집사와 여자 집사 둘 다에게 언급되었던 특징이다(딤전 3:8, 11). 나이가 많 은 남자들은 진지한 태도로 인생을 산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거 운 사람들이라는 뜻은 아니며, 경솔하거나 무례하지도 않다. 그들은 인생 경험이 많기 때문에 가치 없는 것들에 매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사람들은 부모들을 저 세상으로 보냈거나, 아니면 자매 또 는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거나, 또는 배우자를 저 세상으 로 떠나보낸 사람들이다. 어쩌면 자녀들이 죽음이나 또는 반발심 때 문에 그들의 곁을 떠난 경험도 했을 수가 있다. 그들은 인생을 현실성 있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웃어야 할 때와 그 렇지 않을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또한 아름다운 날, 소중한 자녀, 의미 있는 관계들 등 인생에서 누려야 할 것들을 누 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신중하며 나이 많은 남자들은 또한“신중해야 한다.”우리가 감독들에 대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중한 성품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열매로 얻는 특징이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를 훈련하며, 분별력 있게, 신중 하게 처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본능과 욕구를 다스릴 줄

24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아는 사람들이다. 바울이 로마서 12장 3절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그 들은“지혜롭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절제하고, 경건하고, 신중한 특징들은 젊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 는‘무모함, 충동적인, 신중하지 않은, 불안정한’등과 같은 좋지 않 은 특징들을 보완해준다.

믿음에서 온전하고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온전하고’ (영어로는‘Sound’ 로 서 이 책의 242쪽에 교회에 관한 내용에 나와 있으며, 우리나라 성경 에는‘바른’ 으로 번역되어 있다)는‘건강하다’ 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 하나님의 신실함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이 신뢰할 수 있 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 신 뜻을 의심하거나, 의문을 달거나, 또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진리를 의심하지 않으며 성령의 능력에 의문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복음이 사람을 구원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성숙한 믿음 은 우리에게 본이 되어주고 교회를 붙들어 준다.

사랑에서 온전하고 나이가 많고 경건한 사람은 또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다 른 사람들을 사랑한다. 다른 사람들의 짐을 져줌으로써 다른 사람들 을 사랑하는 자들이 신약성경에 나와 있다(갈 6:2). 그런 사람들은

245 GTY.org

희생적으로 사랑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사랑해야 할 것 들과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가가 돌아오지 않을 때도, 사랑이 거부당할 때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 는 자들도 사랑한다. 그들의 사랑은“오래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함부로 행하지 않으며, 자 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 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 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전 13:4~8). 그는 감정과 기분에 따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 지고 끝까지 사랑한다.

인내함에서 온전하고 나이 많고 경건한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 견뎌본 경험이 있기 때 문에 인내하는 것에서 좋은 본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실망감, 채워지지 않은 야망, 신체적인 허약함,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경건한 사람은 강한 철과 같은 기질이 있다. 그는 끝까지 인내하려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면서 육신은 약해질지라도 정 신은 더욱 강해진다.

나이 많은 여자들

다음으로 바울은 교회 내의 또 다른 그룹에 대한 몇 가지 특징들을 말하고 있다.“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24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 고” (딛 2:3).

거룩하며 ‘거룩하며’ 의 그리스 원어는 성경 전체에서 오직 여기에서만 사용 되었다. 이 말은 제사장처럼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경건해야 한다. 그들의 경건한 성품은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성전에서 밤낮으로 섬겼던 과부 안나는 제사장 처럼 처신했던 경건한 여자의 본이다(눅 2:36~38).

모함하지 말며 이 성품은 여자 집사들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되었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남자들은 행동이 거칠고 폭력적일 수 있지만, 여자들은 말에 서 거칠고 폭력적인 경향이 있다. 나이 많은 여자들은 한가하고 시간 이 남아돌아가면 남의 말을 하거나, 비판하거나, 중상하는 말을 하고 다니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이 세 번째 성품은 감독들과 남자 집사들과 여자 집사들에게 금하 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다. 여기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독한 술에 중독되는 것이다. 나이 많은 여자들은 술고래가 되어서는 안 된 다. 그레데(Crete)의 나이 많은 여자들은 그들의 지친 몸과 피곤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흥분제나 자극제 같은 것을 사용했던 것 같다.

247 GTY.org

아마도 고령에서 오는 외로움과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정신이 희미한 채로 지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경건한 여자들 이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라고 말하 고 있다.

선한 것을 가르치고 늙은 여자들은 남의 말을 하고 다니거나 술 취하는 대신 젊은 여자 들에게“선한 것, 즉 고상하고 탁월한 것을 가르치는 일” 로 바빠야 한다. 이 말에는 늙은 여자들이 분가하거나 출가한 자녀들에게 이미 그런 것들을 가르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제 그들은 교회에 나오는 젊은 세대들을 가르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다. 그러나 우리가 7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들은 전체 예배시간에 는 가르쳐서는 안 되고 비공식적인 모임, 즉 일대일, 소그룹, 자매성 경공부모임 등에서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가르칠 때 말과 본을 보이는 것 이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한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성경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경건한 늙은 여자들 이 교회에서 다음세대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두렵기도 하다. 이것은 교회의 나이 많은 여자들이 받아들어야 할 도전이다. 그들은“젊은 여자들에게 선한 것을 교훈해야 한다” (딛 2:4). 여 기‘교훈하다’ 의 그리스 원어는‘sophronizo’ 로서‘누군가를 가르칠 때 자기절제를 하면서 가르친다’ 는 것을 의미한다. 이 특징은 장로들

24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이 갖춰야 할“신중한” (딤전 3:2) 성품과 남자들의“신중하며” (딛 2:2)와 매우 유사하다. 나이 많은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이 자기절제 의 기술을 배우도록 훈련해주어야 한다. 나이 많은 여자들은 젊은 여 자들을 훈련해줄 때 책임감,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하며, 젊은 여자 들에게 도전해주고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젊은 여자들

나이 많은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이“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도 록” (딛 2:4~5) 가르쳐야 한다. 이 말씀은 미국 문화에서 젊은 여자 들이 보고 배운 것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오늘날 미국사회는 젊은 여 자들에게 마음에 원하기만 하면 아무나 사랑할 수 있으며, 자녀들을 외부 사람들에게 맡겨서 그들의 영향력 아래 방치하며, 신중함 또는 순수함 같은 것들에는 신경도 쓰지 말 것을 권장하며, 욕구를 충족시 킬 수만 있다면 또 자기 스스로를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 라고 권장하고 있다. ‘젊은 여자들’ 이란 자녀를 낳거나 또는 자녀를 키우는 연령대에 속하는 여자들을 말한다. 여자들이 40대까지는 자녀를 낳을 수 있고, 자녀양육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간이 일반적으로 20년 정도는 걸리기 때문에 60살이 안 되는 여자는 성경적인 의미에서 볼 때 젊은 여자에 속할 수 있다(딤전 5:9). 그 나이의 여자들의 삶에는 어떤 특 징이 있어야 할까?

249 GTY.org

남편을 사랑하며 ‘남편을 사랑하며’ 의 그리스 원어는‘philandros’ 이다. 바울은 경 건한 과부(딤전 5:9)에 대해 말할 때 이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한 남자의 아내이며 남편에게 온전히 헌신된 여자를 말할 때 사용되었 다. 어떤 여자들 중에는 남편이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여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 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올바른 태도를 갖도록 도우려면 남편을 사 랑한다는 것이 연애할 때처럼 항상 그렇게 감정적으로 불타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타임지는 커버스 토리에서 남녀 간의 그러한 초기 감정은 세월이 지나면서 무르익고 화학적인 변화를 거쳐 더 깊은 어떤 것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다. 결혼은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헌신으로 나아가며, 그 과정에서 서로 간에 만족을 얻는 헌신이다. 다시 말하면, 부부관계는 깊은 우 정의 단계로 나아가면서 서로에게 만족을 주게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남편을 사랑하도록 스스로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매일매일 남편을 온유하고 은혜롭게 섬기 라. 그러다보면 남편에게 아주 많은 노력을 투자하게 될 것이고, 얼 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그동안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으려고 너무 많이 노력했구나!’ 라고 속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남편 을 사랑하며” 라는 이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이다.

25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자녀들을 사랑하며 이 성품은 그리스 원어로‘philotekonos’ 이며, 자녀들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모데전서 2장 15절에서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이것은 여자들에게 주신 고귀한 부르심이다. 물론 하나 님이 모든 여자들이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없는 여자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자유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머니들이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 희생적으로 자녀들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 감정에 기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자녀들에게 당신의 삶을 온전히 쏟 아 부어서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라도록 하는 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신중하며 젊은 여자들은 신중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신중한 성품은 감 독들(딤전 3:2)과 나이 많은 남자들(딛 2:2)에게 요구되는 것이었 다. 그것은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과 일반적인 사회적 규범을 잘 알 고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것들은 누군가 본을 보여줘서 그 본을 따를 때 가장 잘 배울 수 있으며, 나이 많은 여자들은 그런 점에 서 젊은 여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순전하며 젊은 여자들은 도덕적으로 순수하며, 정숙하며, 성적으로는 남편

251 GTY.org

에게만 충실해야 한다. 그들은 몸과 마음으로 한 남자에게만 헌신해 야 한다.

집안일을 하며 디도서 2장 5절은 또한 젊은 여자들이“집안일을 해야 한다” 고말 하고 있다. 이미 6장에서 이것에 대해 깊이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 는 한 가지만 반복해서 말하겠다. 그것은 여자의 책임은 집에서 거하 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가정이 그녀가 장차 경건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될 자녀들을 잘 키움으로서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하며 젊은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온유하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 하며, 자비로워야 한다.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 가르침은 에베소서 5장 22절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을 반복 하고 있다. 경건한 여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잘 알고 그 질 서에 순종해야 한다(고전 11:5 참조).

젊은 남자

바울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주는 이 가르침

25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을 젊은 남자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말과 디도에게 주는 구체적인 몇 가지 격려의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 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 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딛 2:6~8). 7절과 8절은 바울이 디도에게 주는 말이 지만, 나는 그것이 모든 젊은 남자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디도 도 젊은이였기 때문에 젊은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이러한 자격들에서 좋은 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젊다는 것’ 은 얼마나 젊은 것을 말하는 것일까? 젊은 여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20살과 60살 사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이 시기에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남성적이고, 의욕 적이고, 야심만만하다. 인생에서 이 시기는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지 만 또 위험한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젊은 남자들은 게으른 경향이 있다. 자기중심적인 생활 방식은 우리 모두의 타락한 본성이기는 하지만, 특히 이 나이의 남자 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남자들이 젊을 때 게으른 모습은 여러 가정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근면과 성실로 자기 스스로를 훈련 하지 않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목표를 세우는 것이나 또는 그 목표 를 달성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자기 자녀들에게만 지나치게 얽매이면서 자녀 중심적으로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를 좋아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 는 삶의 가치를 가르치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섬김 받는 의존적인

253 GTY.org

삶을 살도록 만든다. 부모들이 없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돌봄, 훈 련, 근면하게 일하는 것 등을 전혀 훈련받지 못하고 방치 된다. 청년 들에게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허락해주면 그들은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무기력의 희생자가 된다. 게으름에 대해 할 말이 가장 많지만, 그러나 젊은 남자들이 보호받 아야 할 또 다른 위험들도 있다. 가족들의 관심과 보호로부터 멀어진 젊은 청년들은 금방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강력한 영향력에서 벗 어나 아무 제약 없이 마음대로 살다가 그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때는 대개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며 아무런 생산적 인 일들을 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퇴폐적인 문화에서 자란 젊은 남자들이 쉽게 익숙해지 는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사악함이다. 그리고 젊은 남자들은 그 런 사악함을 싫어하기보다 오히려 좋아한다. 악의 유혹에 희생자가 되면 젊은 남자들은 도덕성이 점점 약화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다른 위험은 세속적인 교육이다. 그런 교육을 받은 결과 젊은 청년들은 기독교를 공격하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또 는 하나님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의하는 교육은 젊은 청 년들, 특히 대학교수를 멘토로 여기는 젊은 남자들의 마음에 아주 강 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젊음이란 보증되지 않은 자신감과 막연한 상상에 근거한 자만심으 로 충만한 시기이다. 미숙함이 지배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혹이 가 장 많은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잘못 형성된 습관은 그들의 평생

25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을 망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교회의 미래는 그러한 위험한 시기를 거치며 자라나는 젊은 남자들에게 달려있다.

신중하도록(Sensible) 바울은 디도에게“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범사에” (6~7절)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감독들의 성품, 늙은 남자들의 성 품, 젊은 여자들의 성품에서 이 말을 사용했었다. 젊은 남자들은 절 제와 균형, 분별력과 판단력을 계발해야 한다(딤후 2:22, 벧전 5:5 참조). 디도서 2장 7절 첫 부분에 사용된‘범사에’ 라는 말은 사실은 6절 마지막 부분에 사용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그 말은 정 신적 균형, 자기 절제를 그리스도인의 삶에 거의 무한하게 적용시키 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열정적이고, 의욕적이고, 야심만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삶의 거의 모든 영역들에서 절제하고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다.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여기서 바울은 젊은이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말에서 디도 개인을 격려하는 말로 그 주제를 돌리고 있다.“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지 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본을 보이는 것이다. 바울은 디도가“선한 행위” 에서 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그가 본래 가지고 있는 의, 고결함, 도덕적인 탁월함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경 건한 젊은 남자는 그가 행하는 모든 것에서 선한 일의 본이 되어야 한다. 젊은 남자들이여, 하나님이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선하고 거룩

255 GTY.org

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 당신의 삶을 절제하고 잘 관리 하도록 하라.

순수한 동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7절)라는 말은 젊은 남자들이 위와 같이 행동할 때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지 를 보여준다. 이 말의 그리스 원어는 그 의미가‘교훈에서 빗나가 타 락하지 않고’ 이다. 디도와 젊은 남자들은 올바른 교리에 따라 온전하 게 살아가야 한다. 젊은 남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며 말씀 대로 살아야 한다. 시편 119편 9절은“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라고 말하고 있 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것은 우리를 부패하지 않도록 지 켜준다.

단정함 디도서 2장 7절의 마지막에서 바울은 디도와 젊은 청년들에게“단 정하라” 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남자 집사들과 여자 집사들과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도 요구되는 성품이었다. 그것은 젊은 남자들이 진 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젊다는 것은 다소 경솔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즐기는 것, 재미있는 것에 모든 열정 을 쏟아 붓는 미국 문화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물론 이 말은 젊은 남 자들이 인생을 즐길 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인생, 죽음, 시간, 영원 에 대해 좀 더 성숙하게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5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바른 말을 하게 하라 마지막으로 바울은 디도에게“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는‘바르다(Sound)’ 라는 말이‘건강하 다’또는‘온전하다’ 를 의미한다고 앞서 배웠다. 바울은“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 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 4:6)고 말하고 있다. 젊은 청년 들이여, 당신의 입에서 값어치 있는 말이 나오도록 하라. 그 말들을 듣는 사람들이“비난할 것이 없다는”생각이 들도록 덕 있는 말을 하 라. 당신의 말을 비난하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 되게 말이다. 이 말씀과 관련해서 솔로몬은 적절한 결론이 될 만한 사려 깊은 말 을 말해주고 있다.“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 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 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 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전 11:9~10). 젊은 이들이 젊음을 즐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언젠 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젊은 날 동안 행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따 져보게 될 것이다. 솔로몬의 말처럼 젊은 시절을 즐기되 죄의식과 슬 픔이 될 만한 것은 전부 피하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당신 의 창조주를 기억함으로서” (전 21:1)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나이가 들면 그때는 신실하게 보냈던 젊은 날을 기억하며 좋은 추 억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누릴

257 GTY.org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이다. 오직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 의 섬김은 교회의 건강에, 그리고 잃어버린바 된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5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9장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제2차 세계대전 때 허브 클링겐(Herb Clingen) 선교사와 루스 클 링겐(Ruth Clingen) 선교사와 당시 청년이었던 그들의 아들은 3년 동안 필리핀의 일본 수용소에서 지냈다. 허브는 일기장에 간수가 포 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고문하고, 배고픔으로 죽게 했다 고 기록하고 있다. 그 수용소 최고 지휘관인 코니시(Konishi)는 포로 들의 미움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허브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 다.

코니시는 날마다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내서 포로인 우리들을 괴 롭혔다. 그는 음식 배급량을 더 늘렸지만 포로들에게는 껍질을 벗기 지 않은 쌀을 그대로 주었다. 그런 쌀들은 겉면이 거칠고 날카로워

259 GTY.org

서 뱃속에 들어가면 장에 상처를 내서 장내출혈을 일으켰으며, 수 시간 안에 죽음에 이르게 했다. 우리에게는 그 껍질을 벗겨낼 수 있 는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곡식을 내리치거나 또는 무거운 막대기를 굴려서 껍질을 벗겨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그 쌀을 섭취해서 얻는 칼로리의 양보다 더 많은 칼로리가 소비되었다. 그것은 포로들에게 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er)가 이끄는 군대가 그들을 해방시켜주었다. 사실 코니시 는 그날 남은 포로들을 다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어느 날 코니 시는 마닐라 골프장에서 골프장 관리인으로 일하다가 붙잡혔다. 그 는 전범자로 재판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그는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 자기가 핍박했던 크리스천 선교사들의 간증에 깊은 감 동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기독교로 전향하고 싶다고 고백했다.”몇 년 이 지난 후 허브와 루스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시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 때 사람들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신뢰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 구를 구원하실지 알 수 없고 또 어떤 사람이 우리의 삶을 눈여겨보고 있는지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그들과 다르지 않으면 그들 중에 아무도 주님께 마음이 끌릴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확 실하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교회가 세상적인 아이디어들을 받아

26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들이는 것이 걱정이 된다. 내가 1장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교회는 남 녀의 역할과 관련해서 세상 방식을 따라가는 위험스러운 상황에 빠 져있다. 그런 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디자인 을 짓밟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상 기준에 불만족하는 세상 사람들에 게 대안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성경적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스스로 주 장하지만 교회의 지도자 자리를 여성들에게도 허락하라는 그들의 주 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며, 여성들을 통해 하나님이 이 루고 싶어 하시는 일들을 은밀하게 파괴시키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 쳐 교회 안에 세워진“전통적인”교회 모델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그 들은 세속 페미니스트들의 칭찬과 영예를 안을 수는 있을지도 모르 겠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인정받아야 할 곳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 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칭찬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며, 죄인들을 회개 로 인도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한다. 거룩하고 의로운 삶은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의 정수이다. 코니시 가 가했던 어떤 고문도 허브 클링겐과 루스 클링겐의 믿음과 헌신을 흔들어놓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들의 간증이 코니시를 흔들어서 하 나님을 영접하도록 했다. 코니시는 그들에게서 믿음의 실제를 보았 던 것이다. 그 믿음은 코니시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믿음 이었고, 그 믿음은 시험의 때에 더욱 빛났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이교도 사회가 그리 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또 믿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261 GTY.org

썼지만, 그런 이교도 사회에서도 그들에게 계속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라고 격려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서신서를 쓰게 된 배경 이었다. 불행히도 우리는 기독교를 아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너무 편한 세상에서 살다보니 바울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 들을 그렇게 권면했는지를 자주 잊어버린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경건한 가치들이 계속 퇴보하면서 사도 바울의 말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 이 되고 있다. 앞서 우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기혼 또는 미혼을 막론하고, 지도자들이건 종들이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 나타 나야 할 거룩한 삶의 특징인 성품적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바울의 명 령은 거룩한 삶에 요구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해준 다. 그리고 그런 명령들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축 복해주실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울의 목적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더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연령대가 다른 그룹들과 성별이 서로 다른 그룹들에 대 해 바울이 디도에게 주었던 교훈들을 보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나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이유들은 우리의 유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덕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나에게도 도움을 주 며 또 그에 못지않게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격려가 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26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것 바울은 나이 많은 남자들과 나이 많은 여자들, 젊은 여자들에 대한 가르침을 디도에게 준 후에 그들에게“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딛 2:5)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 원어로‘비방을 받지 않게’ 라는 말은‘하나님이 모독을 당하지 않게’ 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거나, 무시하거나 거부할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 의 말씀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나름대로 갖게 해주는 것은 우리의 삶 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대로 행하지 않을 때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할만한 이유와 핑계거리 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상은 신학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 은 우리의 행동으로 우리를 판단한다. 세상은 성경이 타당한지를 판 단할 때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보고 판단한 다.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의 삶이 정말 변화되었고, 세상과 구분되 었고, 확연히 달라진 것을 본다면 그들은 성경이 참되며, 강력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복음에 대한 신뢰감은 복음을 선포하는 자의 삶이 얼마나 고결한 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저명한 부흥사 들이나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부도덕과 더러운 죄를 지은 것이 발각 되면 완전히 망하게 되는 이유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자들에 게서 그런 이중성을 볼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그

263 GTY.org

들은 비웃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모독을 받게 될 것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그들에게 전할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사 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내걸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때 그들의 삶은 신앙의 신빙성, 증거와 전도의 효율성에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세상 모든 나라들에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 하도록 하셨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도록 말이 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고“[그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게 되었다.”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받는 고난을 자기들의 신들이 능력이 있어서이거나 또는 무능력해서 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나님은 모독을 당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 문에 예수님은“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 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 라” 고 하셨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삶이 그들이 볼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은 그들이 복음을 믿도록 인도 하든지, 아니면 믿지 않도록 방해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게 될 것 이다. 감독들과 집사들의 자격에 대해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책임감 있게 행 동하는 것의 중요성이 거듭거듭 언급되고 있다.“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 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딤 전 3:15). 디모데는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의 기둥이요 터라는 것을 잊을 수

264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없었을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여신 다이아나 성전 이 에베소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성전은 여러 개의 기둥들로 건축 되어 있었다. 다이아나 성전의 터와 기둥들이 이교도 거짓 종교들의 오류를 증거해주는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 다. ‘진리’ 는 복음진리로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의 진리를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선을 위한 성스러운 보물로서 우 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고 지켜야 한다. 진리를 버린 교회들은 교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를 파괴하고 있으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할 기회 를 주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 위험에 처해있 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을 잠재우기 바울이 제시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 이라” (딛 2:8). 여기‘부끄러워’ 라는 말의 그리스 원어는 상대방에게 비난할만한 것이 없어서 오히려 너무 당황스러워서‘얼굴이 빨개진 것’ 을 의미한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캔들

265 GTY.org

을 일으키는 것을 속으로 내심 즐기며 바라보기를 아주 좋아한다. 당 신 주변의 불신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실족하는 것을 간절 히 보고 싶어 하며 그것으로 그들의 불신앙을 정당화하고 싶어 한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신의 변화된 삶 자체가 그 들의 죄악된 삶을 지적하고 꾸짖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고 싶 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당신은 그들이 당신을 비판하려고 했다가 마땅히 비판할 것이 없어서 당황하기를 바랄 것이다. 문제는 전도이다. 좋은 전도 전략을 세우려고 할 때 방법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미덕, 경건함, 거룩함, 순수함의 전형이 됨으 로서 세상에 다가가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그런 것들로 인해 불신자 들은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만한 것으로 여기기 때 문이다.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 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1~12)고 말하고 있다. ‘오시는 날’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방문을 받는 것을 말한다. 구약 에서 하나님은 축복 또는 심판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사람을 찾아오 셨다. 축복은 종종 이스라엘 나라를 압제에서 구원하는 형태를 취할 때가 많았다(창 50:24, 렘 27:22).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찾

266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아오심이 특별히 구속이나 구원을 의미한다(눅 1:68). 당신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의무인지 알고 있는가?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경건한 삶을 보 일 때 그들은 처음에는 비판하기 위해서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의 행 동이 탁월하면 그들의 비판은 호기심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호기심이 바뀌어 회심이 되면 그들은 구원받게 되고 하나님 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해냄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당신은 삶에 미덕을 실천 함으로서 사람들이 기독교를 신뢰할만한 종교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회심을 하도록 도울 수가 있다. 그러므 로 육신의 정욕을 멀리하고 행실을 올바르게 하라.

사람들의 마음이 복음에 끌리게 만들라 바울은 디도서 2장 10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세 번째 이 유를 말하고 있다.“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여기‘빛나게 하다’ 의 그리스 원어는 어떤 것을 아름 답게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이 세상에 전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 지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전지하다는 것 일까? 아니면 무소부재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불변성일 까? 아니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

267 GTY.org

의 영원성일까?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또 지금도 천지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일까? 그렇다.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을 그런 분 으로 알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이 책에서 다루었던 하 나님의 주된 특징은 구주 하나님이시며,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할 특징이다. 그런데 만약 세상 사람들의 눈에 우리 자신이 마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비췬다면, 어떻게 우리가 구주되신 하나님에 대한 소식 을 아름다운 소식으로 소개할 수 있겠는가? 만약 내가 15년 동안 애 용해온 아주 멋진 레스토랑을 당신에게 소개하면서 앞으로도 혹시 외식할 기회가 있다면 죽을 때까지 그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할 것이 라고 말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내가 그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식 중독에 걸렸다면 당신은 그곳이 정말 추천할만한 곳인지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나의 인생에 아무런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 어떤 것 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내가 복음 을 아름다운 것으로 또는 정말 관심을 가져도 좋을만한 것으로 보이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이다. 그러나 무엇에서 구원을 받았단 말인가?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그들의 현 재 삶이 더 이상 그들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 다. 그러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자기들의 삶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해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울은 에 베소서에서 그것에 대해 적고 있다.

268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 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 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 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 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 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엡 5:8~13)

여기서 핵심 문구는‘책망하라(expose them)’ 이다.‘책망하라’ 는 그리스 원어는‘책망, 바로잡아줌, 체벌, 훈련의 의미이다. 즉, 책망 으로 인해 그 죄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을 못 본 척하 는 것은 악을 권장하는 것이다. 악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악을 번성 하도록 돕는 것이다. 때로 그러한 책망은 직접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간접적인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무슨 죄를 짓든지 그 죄를 짓는 순간에 바로 면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 때 그 순종의 삶 자 체가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그들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 을 증거해준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가 사람들을 이용해 먹기보다 도 와주는 것을 보고, 불경건하게 말하기보다 순수하게 말하는 것을 듣 는다면, 그리고 속이기보다 진실한 것을 본다면 우리가 보여주는 삶 자체가 그들의 이기적인 삶, 온전하지 않은 말투, 거짓된 행동을 책 망하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부정직한 거래나 사회활동에 참여하기 를 단순히 거절하는 것만으로도 때로 그들에게 강력한 책망이 될 수

269 GTY.org

가 있다. 비록 그것으로 말미암아 직장을 잃게 되거나 친구를 잃게 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 부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 은 다른 사람들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 음에 심히 찔림을 받는다. 굳이 그 사람에게 말로 그것을 지적해주지 않아도 말이다. 물론 때로 공개적으로 책망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침묵 하며 삶으로 간증하는 것은 좀 더 장기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 우에 따라 악한 것들을 담대히 책망하지 못하거나 또는 드러내고 반 대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될 수가 있 다. 믿는 자들은 가능하고 타당한 범위 내에서 그런 것들이 잘못되었 음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때 성경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불행히도 그리스도인들 중에 가정을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로서 교회에서나 또는 좀 더 규모가 큰 공동체 또는 사회에서 악을 지적하고 직언하며 도전해주는 역할을 해줄 정도로 분별력, 기질, 능력 면에서 검증된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처럼 우리 의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가 모든 종류의 악을 드러내고 책망하고 치 료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진리 안에서 그리고 순 종, 거룩함, 사랑 안에서 성숙해져야 한다. 사람들이 구원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위에서 주신 우 리의 소명이다. 그러나 죄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 다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달리 뾰족한 길이 없다. 자기는 의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책망하는 것

270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은 위선에 불과하다. 그러나 순결함, 능력, 기쁨을 특징으로 하는 삶 은 질서, 아름다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반영해줄 수 있다. 우리 가 삶을 통해 구원이 아름다운 것임을 보여줄 때 하나님을 세상 사람 들의 마음을 끄는 존재가 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능히 구원하는 분이라는 것을 세상에 분명하게 보여주려면 하나님이 구원하신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분 명하게 보여주려면 희망을 가진 사람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하 나님이 평화, 기쁨, 사랑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세상에 분명하 게 보여주려면 평화와 기쁨과 사랑이 있는 사람을 보여줘야 한다. 하 나님이 완전한, 온전한, 깊은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세 상에 보여주려면 만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을 보여줘야 한다. 세상이 거룩하며, 의롭고, 평화롭고, 기쁨에 넘치며, 만족을 누리는 사람들 을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의 증거를 확신하게 될 것이 다. 우리는 누구나 영원한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다. 그 영원한 목적지 와 관련해서 생각해볼 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은 아주 위험 한 상황에 놓여있다. 거룩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믿지 않은 자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으로 이끌지만,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은 자들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인도한다. 전도에 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한 삶이다. 강력한 교회는 전략을 바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의 미덕과 거룩한 삶을 바탕으 로 세워진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우리

271 GTY.org

의 삶은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효율성과 직접 관련이 있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하나님의 디자인에서부터 다르다. 그리고 하나 님이 남자와 여자를 그렇게 디자인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창조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 므로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이름 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만약 교회로서 우리가 페미니즘 운동을 통한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 계속 사탄의 밥이 된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교 회의 우선순위, 순결, 고결함을 파괴시키도록 허용해주는 것이다. 사 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높은 자리에서 끌어내리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원수에게 우리를 비방할 거리를 주는 것이다. 사탄이“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리어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고후 4:4) 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 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야” (빌 2:15) 하는 것이다.

272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GTY.org

GTY.org

Et:q£l OIxfE ~tqEt21 gtjg

ClXt~"'Ei Q2Q.

~ q;q'2.!~ ~~H ~~en?

01'= AIOI'I!7! 7~i!/ ilAPI 's'l-~21 ~II ~Pi'-II. ~!1 ~~~I ~~q

Ol~

~~Ol E/I..~!1~9.l~OI AI~!.~I~Ai. ~2 ..,~ Wio~ !~~ 'Iilot7~Ai ~~ ~ ~O, '
AI<JIOI2jl/tflt

.:1ot~~ t!'1li~2 .:13::'1 AI-;;;;~~ ~!lll~.i!/ tlf¥Oft>!~

rl. ~~Ol ~ovt ~!I 'eM l!21 ~211i~g~$1 o~~ 7IoPl.!i!ol:>;I3I2 ~q, ~i ;l;iS';'El »'1\;<:1 iif.i!/8 'i"'i'::!JtI. JJI ~

J~ I.IHm ~I

't\I-I'a21 @1!1 q~..18- '8t!21 ]~i!/ ~OI ~ H ~ ~II

T

'l!~ .e:J'b~ ~ 3::'o,q,

'lit !!OIQ, OI~ ,

i! ,!!!olCl21 i/oj 'll~ 5~' "

tl4'a ~klfAi ~~.i!/ ~

'iiI~OI:il ~8-~"" 71~1

Ai ~I~~ "!i4'89.! ~m q~f.L'~lot~2£I,i tiY'BOI g~JoVt

*'

~WOI ot't! ollcll!:,

~. %~ol 'll~ I 'Il~ ~I,

!I ),~5'. ~ l:.tol.2§ 'i!!c ~

"'OtT-.:I2.l~ ~lOIAi~!j!. tl'-!OIC.I:

tl4'a8- ~~~ Q

I. ~ •. '2/-;;;;11 £§- 'i!!:: ~ ~trJl ~C/ .. ,' Ar:.!. Oi't! OI~ :J.2i!l" ~ ~~ Ai Oi't! ';;/~~ ~ r, lHOfLIC/. .:12i'-/ t!t-l'a8- 'ctA~ Et:i!tI n~ol 'llotAPI OfLi 21 ~Ai2l~~@l~~'~311 'ct;>':~'?:!H 01* ;1:S' O~ ~.AI.!fAJq, ,,, · l!@iOf.'.1 ·

GTY.org

y IO,OOO-tj WNW _pe1E1tShouse _00.k.-

Related Documents

Divine
December 2019 69
Divine
November 2019 57
Divine Love
November 2019 30
Divine Mercy
April 2020 31
L'unicite Divine
November 2019 11
Divine Comedy
November 2019 29

More Documents from ""

Bible Reading Schedule Daily
December 2019 33
June 2020 11
June 2020 18
Openid Presentation
November 2019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