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Dorm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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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9

뒷북이라도 치는 게 좋다. 좋다. - 생활관 수칙 개정과 도서관 이용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

바야흐로…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 정말. 도서관 짜증나. ~ 공부할거 있어서 도서관에서 밤새고 나왔는데 ~ 새벽 5 시까지 출입통제니까. 5 시쯤 돼서 우리 팀 애들 방에서 자려고 했어. 그런데 경비아저씨가 못 들어가게 하면서, 2 호관 행정실에 간사님 계시니까. 가서 돈을 내야 된다나 어떻다나… 외부거주자들은 아침 7 시 이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도서관 개방이 외부거주자를 위한 건 아니야. 그 동안 뭘 하라는 거야. 다른 건물들도 다 문 잠겨있고, 밖에서 떨고 있어야 되나? 기숙사는 어떻고요. 여전히 축구관람은 침묵시간 면죄부고, 방돌이들 전부다 공부하고 있는데 왜 불은 꺼야 되는 거냐고 – 그렇다고 도서관 가면 무조건 밤새야 되잖아. 피곤해서 그렇게는 못하지… 그리고 그래 스탠드 켜고 공부하지. 그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나? 통제할 능력도 안되면서 규정만 만들어서 착한 애들만 괜히 손해 봐요. 너무 잠이 안 와서 앞동, 뒷동 불 얼마나 꺼졌나 보면, 군대군대 형광등 켜져 있는 거 다~ 보여요… 벌점은 주나 몰라. … 아 진짜, 형 이거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네가 해라. 에이, 그럼. 나는 외부거주자 관련된 건 문제제기 못하지. 나는 기숙사 사는데. 외부거주자 한 명은 껴야 된다니까. 그럼 이름은 대 줄게, 글은 네가 써라. 글쓰기 귀찮다. 이상. 지쳐버린 영혼들의 점심식사 대화 주요내용 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작금의 생활관 규정과 도서관 통제상황에 대해서 심한 불만을 느끼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학교리더쉽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인식은 ‘교육’의 정신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미래의 꿈나무로써 이에 적극적으로 반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번 물어보자, 물어보자, 그래서… 변한게 뭔데?? 뭔데?? ㅡ 간사들이 벌점은 주나? 주나? 배경서술 각설하고, 딱 까놓고 물어보자 생활관이 얼마나 바뀌었나? 각종 유머 프로그램과 축구, 격투 프로그램을 하는 날이면, 생활관은 여전히 시끄럽다. 침묵시간 규정은 생활관 수칙이 개정되기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학기 논란 중에 학우들의 수면권 침해 문제가 당국이

규제를 만들어놓고 규제를 실현할 수단을 강구하지 않아서 생긴 것임을 지적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수면권 침해가 이러한 이유 하나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켜지기 위한 규정이라면, 제재수단은 확보해야 옳다. 새로 생긴 소등제도 또한, 잘 지켜지지 않고 있음에도, 이를 얼마나 제재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불만 끄면 애들이 자니? 자니? 소등제도에 근원적으로 질문을 던져본다. 새로 생긴 소등제도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여전히 스탠드를 켜놓고 게임을 하는 방돌이는 시끄럽다. 방 사람들 모두가 깨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꺼져있는 형광등은 궁색하기만 하다. 이곳은, 이곳은, 법도 절차도 없는가?? 없는가?? 현재, 우리 학교 학생들은 새벽 1 시 이후의 도서관 이용에 있어서 출입통제를 받고 있다. 이는 벌점을 통한 불이익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감금에 달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에 관한 규정은 어디에 있는가? 학생처장은 규정을 만들어서라도 실행하겠다고 하였다 한다. 그런데, 규정을 아직 만들지도 않았는데, 실행하고 계시네요~. 학생을 규정 없이 징계 내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도서관 감금 5 시간 형? 상명하복 방식 학교행정의 단편을 보여주는 실례는 아닐까? 이는 철저히 규탄되어야 한다. 학교리더쉽은 생활관이 개판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를 면밀히 따져보면 어르신들의 잘못 또한 드러나지 않는가? 지난학기 야간작업 제도 하에서 보여졌던 교수들의 무분별한 야작 허가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간사들의 무신경함은 이 모든 결과가 결코 학생들만의 탓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가? 그럼에도 학교 리더쉽은 학생규제 일변도로 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현실적 실행수단을 갖추지도 못한 체로 말이다. 학생리더쉽들이 자발적 문화운동을 제안함에도, 학생들에게 기대할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 스스로가 제안하는 바도 그저 그렇다. 행정과정은 절차도 없는 개판이다. 학생들에게 기대할 바가 없다면, 학교리더쉽에는 또한 얼마나 기대할 바가 있겠는가? 우리학교 학생들을 고딩취급 흡사, 오석관 원숭이 취급 말고, 하루빨리 좀 인간으로 대해 주라~. ~~~~~~~~♫♬♩♪부타카께~부타카께~♫♬♩♪ 산처줒이안키르으~ㄹ

20000103 김인욱 20300724 전덕규

20061027 반성하지 않는 사회, 사회, 반성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학교.

필자는 지난학기 現총학생회의 정책기획국장을 맡은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생활관 수칙 개정 과정에 개입한 바 있으며, 어느 정도의 후회와 어느 정도의 자기위로를 하면서도, 현재의 실태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답함을 또한 느끼고 있다. 지난 뒷북 대자보를 접한 학우 개개인이 이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자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진 학우들의 반응은 크게 3 가지였다. ①대자보에 담겨있는 약간의 애교로 인해 귀엽다는 반응과, ②그래서 간사님들이 제대로 규제해주길 바라냐는 반응, ③내용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외에는 ‘무반응’ 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무관심일지도 모르겠으나, 너무나 뒷북인 관계로 그저 무반응으로 해석하고 싶을 뿐이다. 지난번 대자보의 표현대로 우리는 분명 젊은 꿈나무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학교에서 몇 년간 굴러먹은 짬밥으로 나도 어느 정도의 좌절과 이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회의가 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리라. 이러한 이유로, a4 한 장의 글을 쓸 때, 단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던 어린 날의 성실함은, 이제 “이 사회에 있어서 대자보란 내용적 성실함이 아니라 그저 붙이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라는 말로 정당화 되며, 내용적 정교함을 떠나 이러한 허접한 대자보에 대해 학우들이 반응하고 열띤 토론을 해주리라는 미약한 기대만을 가지고 글을 붙이게 된다. 이곳은 나만의 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대자보의 내용은 정교하지 못하다. 글 그 자체로는 여러 측면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며, 자유와 규제의 대립구도로 보았을 때, 오히려 규제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학우들의 토론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제, 이미 익히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며 어떤 결론을 내 보고자 한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해야만 한다. 한다. 지난 봄 학기 개강 이전에 이루어진 교수수련회에서는 생활관의 한 간사는 ‘2006 간사사역 소개 및 야작 관련 교수 협조 건’이라는 제목으로 교수들에게 협조를 구하였다. 간사사역과 기타 학우들의 생활실태에 관한 통계자료를 보고하였으나, 그 주된 결론은 야작의 허가 과정에 교수들의 서명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교수들에게 야작 신청 학생들에게 보다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허나, 이에 교수들은 소위 특단의 조치를 내릴 것을 결의하는 과민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의사소통과정의 오해와 교수들의 인식부족에 관해 필자는 공문에 ‘교수들의 수준 낮은 인식’이라는 표현을 썼다.(이것이 現자치회장이 생활관수칙개정과정에서의 모든 책임이 필자 탓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부분적 이해로

인해, 교수들은 인터넷을 끊으려는 어처구니없는 대안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인터넷 규제가 기술적으로 힘들기에 포기된 것이지, 결코 인터넷 규제가 옳지 않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에 무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교수들의 학생들을 향한 전적인 책임 전가와 간사의 발표 의도조차 이해 못하는 이해력 부족, 그리고 어이없는 대안 제시는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교수수련회에 참석하지 않은 교수들도 있음을 알고 있으나, 참석하지 않은 책임 또한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교수들이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인성교육에 대해 근본적으로 따져본다. 따져본다. 우리학교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성교육은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학우들에게는 이가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학교 측에서 등록금 책정 시 학생회 측에 한동대학교 교육단가가 높다는 근거로 인성교육을 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동적 구호로써 인성교육이 강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학교 측의 투자는 교육단가를 높일 정도의 수준인지 과히 의심스럽다. 학교 측에서 인성교육을 그리 중요한 학교교육의 축으로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심층적 고찰과 방법론에 대해 어떠한 대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이런 결단의 기초가 되는 인식이라는 것이 이러한 저급한 수준 이고 보면, 학교당국은 인성교육에 대해 어떤 수준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빤하다. 교육공간으로써의 생활관? 생활관? 학교 측은 우리의 생활공간이 왜 ‘생활관’으로 불리는지에 대해 강조하며, ‘기숙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생활관 생활 속에 교육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관에서 어떤 종류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필자가 생각키로 이를 선의로 해석할 경우, 생활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라는 것의 성질은 방 구성원들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이해관계의 충돌들을 서로 간에 이해하고, 절충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배려의 덕목을 익히는 기능이 거의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심야의 소등 또한 이가 적용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방 구성원간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수칙으로 규정되어야 할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 구성원들이 늦게까지 깨어 있는 경우에도 소등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할 것이다. 이가 비록, 다수에게 효과 있는 규제라 할지라도 이를 이유로 소수에게까지 요구함은 수의 논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규제수단의 한계 언제는 당시 생활관장과 수칙개정 건으로 잠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침묵시간 벌점제도에 있어서 벌점 집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 지적하자, 당시 생활관장은 현실적으로 이러한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간사충원이 절실함을 지적하였으며, 이는 생활관 재정사정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피력하였다.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 하다면, 지켜지지 않을 수칙을 만드는 것보다 다른 방법으로 방향을 바꿈이 옳지는 않은가?? 또한 도서관 이용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도서관 이용 통제에 있어서, 생활관 거주자와 외부거주자의 식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괄적인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학생처장의 말처럼 규정을 제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외부거주자 학우들도 분명한 한동대학교 학생이며, 도서관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더불어, 현재는 규정조차 두지 않고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는 범법 행위를 학교당국이 솔선수범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는 말이다. 우리의 마음. 마음. 더 큰 폭력은 작은 폭력을 정당화 시킨다. 100 대 맞을 것을 예고 받은 학생은, 그 이유를 불문하고 10 대 맞게 되었을 때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의 심리는 ‘그래도 100 대보다는 좋다.’ 라는 마음으로 안도감에 젖어든다. 그 맞아야 하는 이유가 어찌하던 간에 말이다. 처음 인터넷 규제 방안이 발표 된 후와 이가 무산된 후에의 우리의 마음은 이와 같지는 않은지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규정개정과정에서의 흠결들은 보지 못한 체, 인터넷 규제는 그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수칙은 지켜지지 않음으로 인해, 법은 지켜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소등시간 쯤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준법정신’이라는 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도덕률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았을 때, 이는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에 대한 스스로의 의식을 점검하는 반성적 태도가 우리 스스로에게도 요구됨은 명백할 것이다. 허나, 제도적 차원에서 이러한 것이 방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반성은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창조적 지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 무엇에 머물러 있는 태도가 아니라, 끊임없는 반성과 자기성찰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가?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며, 반성하는 법조차 가르치지 않고 있다. 매를 들 힘조차 없으면서 매를 들겠다고 엄포 놓는 할머니의 일그러진 얼굴과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손자의 모습을 우리 한동에서 보고 있다면, 이는 지나친 비약일까?? 20300724 전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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